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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가게 Nov 15. 2018

더 이상 착하지 않겠다.

내 낮은 자존감 도둑을 찾아서.


 약점을 드러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가족과 결부되었다면 더더욱. 그럼에도 나는 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무뎌진 상처를 이제라도 보듬기 위해. 비슷한 상황에 있는 분들에게 위로가 된다면 비난을 받아도 기꺼이 감수할 몫이다. 어차피 내 가족들은 이런 소심한 인터넷 글 따위는 찾지도, 읽지도 않을 테니.


 여름에 친정 엄마 환갑 기념으로 가족여행을 떠났다. 가족이 모두 모이는 경우는 일 년에 두 번. 함께 떠나는 여행이 왜 싫겠냐만 어쩐지 망설여졌다. 사랑하는 가족이지만, 일주일이라는 여정 안에 겪게 될 갈등, 일방적인 명령들에 또 상처 받고 싶지 않았다. 삐딱해 보이는 내 태도엔 나름 이유가 있다.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아버지. 모든 경상도 출신 남자들의 공통점은 분명 아니다. 지난겨울, 패키지로 떠난 해외여행에서 만난 부모님 또래 부부가 보여주신 배려심과 인자함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가족을 사랑하지만,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은 그런 '편안함'이었던 것 같다.  


  가족과 1박 2일 여행은 숱했지만 온 가족이 일주일 동안 24시간 붙어 '사는' 긴 여행은 처음인지라 자신이 없었다. 일이 틀어지면 막내인 내게 화풀이하는 남의 나라에선 도망갈 장소도, 시간도 없을 테니까.


가족이 되는 건 사고가 아닐까? 


 가족이기에 사랑하고, 내 사람이기에 소중히 해야 하는 당연한 이치를 나는 가족에게 설득하지 못한다. 가족을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아야 하며, 그것이 대부분 여자의 몫이라고 생각하는 집안에서 여자의 행복은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아니, 그전에 남성과 동등한 인권을 가지기나 한 걸까?


 사랑하는 가족과의 대화가 불편하게 느껴진 건 대학시절, 사람들과 교류하면서부터였다. 친구 집에 갔는데, 작은 집에서 여섯 식구가 친구처럼 지내는 모습이 어찌나 화목해 보이던지. 매일 보는데도 부모님, 동생들과 살갑게 통화하는 목소리가 어찌나 따뜻한지. 그건 비교하는 데서 오는 불행이나 질투의 감정은 아니었다. 가족과의 사이가 그럴 수 있다는 데서 오는 문화적 충격이 컸다. 아직도 제일 부러운 사람이 그 친구다. 나도 엄마와 매일 통화하지만, 그 친구가  가졌을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건 기분 탓일까.


 가족의 존재가 당연한 것은 아니기에 표현으로 서로를 감사히 여기고 아끼며 존중하자는 이상을 강요할 수는 없다. 가족을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사랑받지 않는 것도 아닌데,  왜 함께할 때 싸울까 봐 불안할까.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표현과 행동으로 느끼고 싶다. 그 충만한 표현에서 전해지는 따뜻함과 포근함을.


 우리는 기적 같은 확률로 지금의 부모와 만났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관계는 영원하고, 그 관계에 충실해야 할 책임이 존재한다. 그 의무를 이행하고자 떠난 여행에서조차 눈치 보고 있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가족이 되는 건 어쩌면 '사고'가 아닐까 하는 생각.


불행한 감정은 이제 그만.


 자존감이 높지 않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가족을 피하는 거였다. 비난받을 일일 지언정 내가 살 길은 그것뿐이었다. 비판이나 충고가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때가 있었다. 자존심이 아닌 자존감의 문제였다. 어느 정도 나를 돌아볼 여유가 생겼을 때, 얼마 전 가족여행에서 좋지 않게 헤어졌을 때, 내 자존감 도둑의 실체는 가족일지도 모른다는 냉정한 생각도 들었다.


 어릴 적 존재조차 부정당하며 살아온 나는, 아무도 사랑해주지 않는다는 생각에 스스로 만든 어두운 터널을 오래도 걸었다. 그 오랜 고민의 정답은, 상대의 만족을 위해 눈치를 살피지 말고 가족을 벗어나 스스로를 사랑하자는 것이었다.


 사랑이 없어서 사랑을 찾는 것은 아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사랑의 방식은 사람 수만큼 다양한 거니까. 좋아 보이는 것들과 비교하면서 굳이 불행한 감정을 끌어올리지 말자. 내 자존감은 내가 지키는 것이고, 행복도 내가 만드는 거니까. 남을 만족시키기 위해, 타인의 행복을 위해 눈치 보지 말자. 이제 더 이상 착하지도 않겠다.


'연애'를 주제로 한 예능프로에서 칼럼니스트 곽정은 씨는 "내 정답이 남에게도 정답이지는 않더군요"라고 똑 부러지게 말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고민이 깊어진 근래에 깊은 울림을 줬다. 과연 연애뿐만이 아닌 인간관계, 배우자, 가족들을 힘들게 했던 건 아닌가 돌아보게 하는 말이다. 이런, 또 눈치를 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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