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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가게 Jul 22. 2021

이혼을 하고 결심한 딱 한 가지.

 따뜻한 말 한마디 듣기 힘든 가족의 품을 떠나, 누가 코 베어갈까 경계하며 전철을 타던 상경 첫 날을 잊지 못한다. 너무 외로워 누군가의 어깨가 필요했던 난, 늘 곁에 있어주는 그 사람을 떠나지 못했다.     


 내부에서 찾아야 하는 자존감을 그에게서 찾으려던 지질한 사람이라서, 너밖에 없다는 말을 해주는 그 사람이 없으면 정말로 쓸모없는 존재가 될 것 같아서, 행동이 아닌 말로만 사랑했던 그 사람을 참 오래도 만났다.   

  

 제대로 된 직장이나 직업 없이 그저 먹고사는 데 바빠 지지리 궁상이던 우리가, 숙제하듯 결혼해서 정착한 곳은 고개가 끝없이 이어지는, 그 사람의 고향인 어느  오지. 먹을 거 입을 거 덮을 거를 바리바리 싸들고 그 집에 처음 온 엄마는 “가 왜 이런 곳에 살아야 하냐”며 그렇게도 서글퍼했지만, 나는 불안정한 몸과 마음이 한 곳에 정착하면 다 괜찮아질 거라 믿었다.     


 젊은 시절 함께 했던 약속을 지키고 싶어서, 그 사람과 끝까지 가고 싶어 결혼했는데, 그를  안다고 믿었던 게 오이었다. 서울 선 그렇게나 다정했던 사람이 그곳에선 남들에게만 친절하고 집에선 무심했다. 결혼하면 그런 건지, 원래 그런 사람인지, 내게 문제가 있는 건지 속 시원히 대화하고 싶어도 늘 바쁘다며 밖으로만 다니던 그에게 나는 어떤 존재였을까.


 집에서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있으면 창문을 발칵 열고 그런 옷 입지 말라며 혀를 끌끌 차는 동네 할머니가 사방에 있고, 장을 보면 일주일 뒤 “그 집 며느리가 열무 사들고 가더라”며 우리 집 냉장고 사정이 공유되고, 부부여도 보는 눈 때문에 멀찍이 떨어져 걸어야 하는 그곳. 모두가 나를 알지만 내 편 하나 없는 그곳. 보는 눈은 많지만, 진심 어린 눈길은 없는 그곳. 외지에서 온 나를 외계인처럼 보는 그 동네에 적응하는 것도 버거웠지만, 제일 힘든 건 믿음 하나로 거기까지 가게 만든 그 사람의 무심함이었다.


  그에게 바라는 건 오직 일과를 마친 후, 같이 저녁을 먹고 동네를 산책하며 하루를 마무리하고, 함께 잠드는 거였지만 그마저도 사치였을까. 사업 핑계로 연일 술자리를 쫓아다니던 그의 전화는 새벽마다 불통이었고, 만취해 들어와 쏟아내는 언어폭력, 이어지는 정서학대. 매일같이 싸우며 상담도 받았지만, 돌아오는 답은 결국 내가 변해야 한다는 거였다. 내 고통이 제일 컸던 당시의 난 상담사에게  되물었다. 왜 나만 변해야 하고, 왜 나만 그 사람을 이해해야 하며, 왜 나만 이렇게 힘들어야 하냐고. 그는 내게 공부도 하고, 바쁘게 살면서 정체성을 가지란다. 일과에 지쳐 숨 돌릴 틈이 없으면 그가 뭘 하든 관심이 없어질 거고, 잔소리를 안 하게 되니 자연히 사이도 좋아질 거란다.


 남편에게 나는 '지친 몸 이끌고 돌아와도 구박만 하고 잔소리하는 집사람'이었던 걸까. 상담 이후에도 여전히 다툼은 잦았고, 그 생활이 3년쯤 이어질 때는 깨달았다. 여기서는 영원히 불행하리란 것을. 지난  년간 단 한 번도 좋은 일이 없었다는 것도. 그리고 전날 밤 폭력적인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다음날의  그에게서 봐버렸다. 이곳에서 게 남은 것은 절망밖에 없다는 것을.


결혼 생활의 유일한 낙이었던 반려묘.

 이게 인생의 전부가 아닐 텐데. 밖에는 좀 더 괜찮은 삶이 분명 있을 텐데. 원래 그런 사람이었든 아니면 여기서 이런 사람으로 변했든 간에, 평생 바뀌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생기니 판결 날까지도 구질구질하던 그에게 냉정할 수 있었고, 나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로부터 1년이 훌쩍 지났다. 가끔 고독하지만, 같이 있을 때 느꼈던 괴로움은 이제 없다. 이혼 커밍아웃을 했을 때 받는 편견은 여전하다. 내 사정을 알길 없는 낯선 이에게 '이혼녀'라는 타이틀은 결코 순결할 수 없을 거다.


 서른일곱인 나를 처음 보는 사람은 항상 물어본다. 

“결혼하셨어요?” 돌싱이라 하면  ‘인생에 실패했다’는 눈총이, 미혼이라 하면 '왜 아직 안 했냐'며 부족한 사람으로 보는 시선이, 결혼했다고 하면 '애는 왜 없냐'는 귀찮은 편견이 따라온다.     


 행복해지려고 결혼했지만, 더 행복하고 싶어서 결심한 이혼. 인생은 아직 다 펼쳐지지 않았다. 앞으로의 인생은 더 지질할 수도, 힘들 수도, 새로 만나는 사람이 더 나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가능성을 내 손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게 좋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한 장면

 3년 전 이곳에 '대화'를 해서 화목한 결혼생활을 해보자는 취지의 글을 썼는데, 이혼을 하고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글에 '좋아요' 알림이 뜨면 부끄럽다. 나는 좋은 대화를 만드는 데 실패했고, 화목한 결혼 생활을 하지 못해서 결국 변명이 가득한 이 글을 쓰고 있으니까 말이다.


 '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니다'는 진리는 결혼 전엔 알지 못한다. 결혼해서 그 사람을 오롯이 겪어야 알 수 있는 '돈과 시간 주고 배우는 인생 경험'이다. 관계에 대한 모든 조언은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바꿀 수 있는 건 나 자신밖에 없다. 나는 그러지 못해 '이혼'이라는 경력이 추가됐지만, 인생에서 제일 잘한 선택이라 생각하고, 결혼을 후회하지도 않는다.


 그 오지에서의 삶에 적응하기 위해 애썼고, 성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으니까. 무엇보다 후회를 하면서 그 기간을 부정하고 싶지도, 현재를 불행하게 만들고 싶진 않다.


 앞으로 나만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사람을 만나긴 힘들겠지만, 그런 말 한마디로 자존감을 하늘 끝까지 올렸다가 땅끝까지 처박는 사람도 되지 않을 것 같다.


 누군가를 만날 때도, 인생에서 소중한 무언가를 실행할 때도 필요한 결심 한 가지를 알고 있다. 한 사람에게 오랫동안 속해있을 때는 생각도 한 적 없고 필요도 없었던 바람. 그저 지금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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