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만나는 것을 포기하진 않았지만, 연애를 그렇게 빨리 시작할 줄은 몰랐다. 전 남편과의 십 년에 걸친 인연을 지속하는 동안 늘둘의 행복을 위해 노력했기에, 다시 사랑할자격은충분하다 생각했다. 혼자 행복한 삶이 아니라다시 둘이서, 믿음과 사랑이 가득한 부부로서 충만한 감정을 느끼고 싶었다.
지인을 통해 알게 된 그 사람과의 관계가 진지해졌음에도, 그는 내게 확신이 없다고 했다. 나는 그가 부모님께 내 소개를 망설이거나 친구들에게 내 이혼 경력을 말하지 않는 것은 이해가갔지만, 선자리를 수락할 때의 섭섭함은 어쩔 수 없었다. 본 적도 없는 예쁜 옷을 다려 입고 그녀를 만나러 갈 때의 야속함, 만남 이후에도 그녀와 일주일 넘게 문자를 주고받을 때의 질투심이 어쩌면 내 문제일지도 모른다고 느꼈다.
인생에서 이혼을 제일 잘했다고 생각했고 주변 모두가 잘했다고 말해주는 분위기 때문에,이혼이 상대에겐 부담이 된다는 걸 그의 흔들리는 눈빛을 읽고서야 알게 된 거다. 그렇게 내게 확신이 없어선지 날 소개할 자신이 없어선지 원래 연인에게 그런 스타일인지 몰라도 그는 내게서 단점을 발견할 때마다 화를 냈고, 나는 그게 화낼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고치겠다고 그를 달래며 만남을 계속했다. 상대를 맞춰주고 이해하는 게 처녀 때처럼 자존심 상하거나 어렵진 않았으니까.
서로를 몰랐던 연애 초기의 숱한 이별 위기를 무사히 넘기고 1년이 지난 지금, 그와 결혼을 준비하면서 돌아본다. 자신이 없었던 그가 했던 것처럼 나도 똑같이 감정적으로 그를 대했다면 지금처럼 편안하고 예쁘게 만날 수 있었을까.상대에게 지기 싫어서 자존심으로 대했다면, 지금의 다정한 그가 내 옆에 있었을까.
결혼을 하고 제일 와닿은 건 ‘결혼은 현실’이란 말보다 ‘사람은 안 바뀐다’는 거였다. 어릴 때부터 내 결혼 신념은 ‘결혼할 때 중요한 건 돈보다 사랑’이었다. 오지로 시집가는 내 결혼을 반대하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랑 제일주의’를 외쳤고 시골 어른들이 속된 말로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여!"라 말할 때도나는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주변의 유혹을 못 이긴 전 남편이 손쉬운 쾌락에 물들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가도, 내가 잘하면 다시 연애 때의 충실했던 그 남자로 되돌릴 수 있다고 믿었던건 그 이상한 신념 때문이었다. 내가 선택한 사람과는 돈이 없어도사랑할 수 있다는 믿음이 '헛된' 망상이란 걸 3년이 지나서야 깨달을 만큼 미련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호되게 깨닫고도 다시 사랑을 믿는다. 이제는 상대방의 단점을 고쳐야겠다는 마음보다, 내가 상대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맞춰주고 배려하면서 둘 다 좋은 사람이 되자고 생각한다. 그것이 이혼을 하고 얻은 가장 큰 교훈 인지도 모르겠다.
행복의 절대 기준이 사랑이 아니란 것은 이제 안다. 그러나 실속만을 따지는 가성비 결혼이 현실적인 만족을 줄지는 몰라도, 행복의 바로미터가 될 수 없다는 건 더 잘 알겠다. 그러니 나는 끝까지 사랑에 충실한 두 번째 결혼을 준비하며 이전과는 다를 거라고 믿는다. 오래오래 행복한 결혼생활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