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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가게 Feb 26. 2018

악마는 지옥에서 태어난다

엄마의 자격을 고민한다

사이코패스는 어디서 왔을까?

요즘 평창올림픽과 함께 <효리네 민박 2>의 이상순, 이효리 커플이 또다시 화제다. 특히나 이상순 씨의 남을 배려하고 자존감을 높이는 대화법이 큰 호감을 얻고 있다. 언젠가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효리 씨가 나와서 “남편은 본래 화가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본인은 감정 기복이 심해 자주 오르락내리락하는 데 비해 남편은 늘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고. 나는 이 말을 듣고 좌절했다. 이상순 씨와 같은 사람은 도저히 내가 따라갈 수 없는 부류에 있다.


가끔씩 올라오는 화를 쉬이 조절하기 힘들고 분노하면 악한 마음이 드는 나지만, 그는 그렇게 될 가능성 자체가 없는 것이다. 이효리 씨의 표현에 따르면 그의 가족 구성원 모두가 그렇단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근심을 그 집안 식구들은 하지 않아도 되는 건가? 대한민국에 그런 집안이 존재하는가? 하는 희한한 발상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는 그냥 그렇게 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화를 내면 뭐해. 화를 내지 말아야지 하고. 대단한 사람이다.


베스트셀러로 계속 사랑을 받고 있는 책 <미움받을 용기>에서 주장하는 아들러의 심리학이 문득 떠오른다. 화가 나서 화를 내는 게 아니라 화를 내고 싶어서 화를 내는 거라고. 하지만 말이 쉽지 음식점에서 내 옷에 음식을 쏟은 직원에게 화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일은 아니다.


이상순 씨도 그런 상황에서 당황하고 화가 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내가 본 그는 감정을 그대로 표출하기보다 당황한 직원을 챙기며 침착하게 상황을 정리할 것 같다. 이런 사람 우리 주변에서 본 적이 있다. 어떤 일에도 차분하고 침착한 사람. 이런 행동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이런 의문이 들었다.


TV예능 '효리네 민박' '라디오스타'

그는 어떤 사람이며 어디서 온 걸까? 화가 날 만한 상황에서 화를 내지 않는 사람. 그는 그런 부모 아래에서 자라왔을 거다. 반대로 부모에게 정신적, 언어적 폭력을 당하고, 동물을 학대하는 집안에서 커 왔다면 선한 어른으로 자랄 수 있을까?


혹시 나도 사이코패스인가?

한 번씩 왠지 모르게 추악한 욕망이 치밀 때가 있다. 꼭 화가 나지 않아도 답답해서 마구 집어던지고 싶고, 모든 것이 싫어지고 삐딱한 생각마저 든다. 혹시 내가 변태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야설이나 야동을 찾는 것 비슷한 맥락일까. 휴지를 풀어헤쳐서 집안을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싶고, 그걸 정리하며 깔끔해지는 것에 또 희열을 느끼고. 마음이 가라앉질 않고 한 사람이 계속 미워질 때면 ‘나, 마음의 병이 있는 건가?’ 하고 돌연 자책감이 드는 것이다.  

분노와 스트레스를 자기만의 방법으로 현명하고 건강하게 해소하라지만, 추악한 분노의 감정을 가졌다는 자체로 죄책감이 들 때가 있다. 나, 정말 성격 장애가 있는 걸까?


이런 내가 '엄마' 될 자격이 있는 걸까?

중학교 때 ‘꿈’을 주제로 한 교내 글짓기 대회에 나간 적이 있다. 나와 전교 1등이던 내 짝꿍은 ‘아직 꿈이 확실하진 않지만 적어도 엄마처럼 평범하게 살지 않을 거야’라는 맥락의 글을 썼고, 우둘 다 그 대회에서 상을 받았다. 전교 1등이라 고민이 없어 보였던 그 친구도 평범하게 사는 것에 대한 고민이 있었던 것 같다.


전업주부를 비하하는 것은 아니다. 정체성을 고민하는 사춘기 시절에 본 엄마가, 목표와 꿈이 없고 남편에게 의지하는 '엄마'의 역할로만 보였던 거다. 엄마란 존재가 얼마나 숭고하며 위대한 존재인지 모르고. 가족을 위해 꿈과 여자임을 포기한 걸 미처 몰랐던 난 정말 어렸다.


그 후 평범하지 않은 삶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더 깊어지지 못한 채 결혼이란 걸 해버렸다. 그리고 엄마가 되려니 포기해야 할 것과 신경 써야 할 부분이 어찌나 많은지. 생명을 잉태하는 일은 원한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간절하고 절실해도 ‘내가 한 사람의 인생을 책임질 수 있을까?’, ‘우리가 부모가 될 자격이 있나?’하는 불안과 초조함이, 엄마를 찾고 있는 아기 천사를 망설이게 하는지도 모른다.


이런 고민을 할 겨를도 잠시, 고령임신 연령이 가까워지며 마음은 더욱 급해졌다. 병원 전문의와 각종 출산, 육아 커뮤니티에서 공통적으로 외치는 조언들만 충실해도 엄마 될 신체적 자격은 충분조건에 가까워지지만, 제일 중요한 건 따로 있다. 마음을 편하게 먹 거다.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라는 조언, 스트레스를 지 않는 건 제일 중요하지만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마음을 편하게 가져야지' 하고 신경을 쓰는 자체가 편한 마음이 아니라는 셈이다. 과연 엄마는 누가 되는 거고 '이것만 잘 지키면 엄마가 될 수 있다'는 매뉴얼이 있는 걸까?


육아는 전문가가?

약자를 괴롭히는 사람이 아이를 가질 자격이 있는 걸까? 약자를 괴롭히 삐딱한 시선을 아이들이 닮을 텐데. 교활한 부모에게서 교활한 아이가 자라고, 상처 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그들의 자녀 역시 친구의 마음을 쉽게 다치게 한다. 위험한 건, 그 자녀들은 어렸을 때부터 그런 환경에 노출되었기 때문에 자신의 말과 행동이 잘못된 건지 모른다는 데 있다.


약자를 보고 무시하고, 말 못 하는 짐승을 학대하는 사람. 불의를 보고도 못 본 체 지나치고, 사기와 강도, 살인을 죄책감 없이 저지르는 사람이 아이를 훌륭하게 키울 수 있을까? 그렇다면 육아전문가가 키우는 아이는 모두 훌륭한 아이가 되는 것인가?


<>를 통해 본 엄마의 역할

30 세지만 7세 지능을 가진 발달장애 아들을 돌보는 엄마는, 자신의 병을 고칠 수 없다는 걸 알게 된다. 그녀는 자신 없인 아무것도 못하는 아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보살피며 아들을 떠날 준비를 한다. 결국은 뻔한 영화일 거라 예상했지만, 볼수록 엄마의 입장에 이입되어 그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발달장애를 연기하는 배우 김성균이 자기 맘대로 안 될 때면 떼를 쓰고, 하기 싫은 것은 미루고 피한다. 또한 식탐이 강하고 자기만 생각하는 모습들을 묘사하는데 이는 꼭 7세 아동에서만 볼 수 있는 행동들이 아니다. 이기적이고 배려 없는 어른들에게서도 보이는 모습들의 가식 없는 민낯이다. 부끄럽지만 그에게서 나의 철없는 모습이 비쳤다. 자신이 더 소중한 철없는 내가, 과연 부모가 될 자격이 있는가? 영화를 보는 내내 뜨끔했던 감정이 자책감으로 이어졌다.

 

영화 <채비>


  발달 장애 아들을 가진 엄마는 아이에게 항상 미안해하며 문제를 일으킬 때마다 나서서 해결한다. 남편 없이 혼자서 보살피느라 많이 지치고 힘든데도, 아들을 따뜻하게 격려하며 끝까지 기다려준다. 힘든 상황에서 늘 아들을 먼저 생각하는 엄마의 그 깊고 넓은 마음이 보는 내내 클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물질적 풍요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기대 없이 본 영화에서 어떤 울림으로 와닿았다.


 아이를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 타인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것이 물질적 풍요보다 더 중요한 엄마의 역할이 아닐까. 엄마 자격은 주어지는 게 아니고 만들어가는 것이라 믿으며 나도 자격이 있다고 용기를 가져본다. 적어도 우리 아이가 살아가는 대한민국은 상식적이고 따뜻한 세상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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