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한 다짐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가장 고민한 순간이 ‘작가소개’ 란에 나를 한 마디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그동안 직업을 갖기 위해 노력하고, 하루 절반 이상 근로하는 것 외엔 특별한 게 없는 나를 나는 ‘현대노비’ 라고 칭하고 꽤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브런치에 첫 글을 올리고 소중한 첫 댓글이 달렸는데, 대문에 올린 ‘노비’ 라는 문구를 안타까워해주신 분이 삶의 참 주인으로 회복을 바란다고 응원해주신 것을 보고 새삼 뜨끔했다.
내 삶의 주인은 나라는데, 그저 남들처럼 살기를 바라고, 눈치 빠르다는 소리를 자랑처럼 여기며 말 잘 듣는 1인이 되기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온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어릴 때부터 조직에 속한 후로는 남들한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다수의 의견에 따라야 한다-양보와 배려가 미덕이다-라고 배웠기 때문에 이렇게 지내려고 노력해왔는데, 누군가에게 인정 받기 위해, 조직이 잘 운영되기 위해 최적화된 교육을 받은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이게 바로 남탓? :-)
물론 사람마다 성향 차이겠지만 나는 주도적이기보다 수동적인 편이라 목소리를 낮추고 사회에 발 맞추는 게 더 편한 것도 있다.
타고난 건지 환경 탓인지 MBTI가 만년 INFP라 그럴 수도 있고(본인의 멘탈은 털렸지만 친구의 이야기에 눈물로 공감해주는) 또 어린시절 대부분 할머니 손에 자라 평범하지는 않은 상황에 세상에서 외면받지 않고자 열심히 눈치를 키워온 것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보니 눈치가 빠르다, 시키는 걸 잘한다는 칭찬도 듣고, 선을 넘지 않는다는 말에 뿌듯해하기도 한다.(적고 보니 시대에 역행하는 사람이 아닌가 싶은데)
주변 상황, 남들 시선에 맞추려는 노력은 조직사회에서 적당히 살아남을 줄 아는 지금의 나를 만들어주었지만, 내 마음은 무시하고 곁눈질하며 살아온 세월이라니
주변에는 쓸 때 쓸 줄도 알고, 나를 필요로 하면 귀찮고 피곤해도 외투를 챙겨드는 적극성도 지닌 채ㅡ웃음도 눈물도 많은 여러모로 후한 사람인데
정작 내게는 돈도 감정도 아끼며 살아가는 게 새삼스럽게 아이러니하다
그도 그럴게 집에 고양이 화장실 냄새가 심하다는 핑계로(겨울 분위기도 좀 낼 겸) 겸사겸사 양초를 주문하려는데 추천 받은 양초가 5만원을 넘어가 장바구니에 담아둔 채 고민하던 중에, 지인 생일이 카카오톡 알람에 뜨는 것을 보고 조말론 핸드크림을 간편결제한 게 바로 어제다.
감정은 또 어떤가
남자친구가 헤어지고 붙잡는 걸 반복해 힘들어하는 친구에게는 “힘들 땐 맘껏 울어도 돼. 너를 먼저 생각해” 라고 세상 너그럽게 얘기하고는
아빠는 암투병, 엄마는 공황장애로 힘들어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내게는 “힘든 티 내지 말자. 사람들에게 걱정 끼치는 사람이 되지 말자”고 나지막이 다짐한다
다른 사람에겐 이상적이려고 노력하고 나한테는 이토록 이성적이라니. 남을 위해, 남에게 어떻게 보일지, 남에게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만 고민하던 미숙한 나는, 또 남탓을 하며 스스로 ‘노비’라고 조소하기에 이르렀다
이제는 다른 사람에게 응원 받기를 바라는 것보다 스스로에게 위로받고 싶다
남을 위해주는 마음으로 나를 바라보고 싶다
힘들 때 얼굴에 티도 좀 내고, 나를 위해 작은 사치품을 선물해 기분전환도 하고 싶다.
나에게 냉정하고 남에게 관대한 사람들
타고난 심성이라 어찌할 수 없다는 걸 알지만 한번씩 의식적으로라도 나를 먼저 돌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싶어서 굳이 이런 다짐을 남긴다.
이런 글을 우연히 만나 아차 싶어도 되고, 하루 얼마 정도는 나를 생각하고 내게 맞추는 노력을 한다면 좀 덜 서글프지 않을까
어쩌다 내 삶을 떠안게 된 게 아니라
진정한 삶의 주인이 되는 내가 될 때까지
남들에게 하는 만큼만 나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