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면 알수록 진국이야
8년의 직장 생활 동안 두 번의 브랜딩 프로젝트를 참여한 적이 있다. 각각 다른 회사였고 하나는 서비스 브랜딩, 다른 하나는 기업 리브랜딩이었다. 두 프로젝트를 마무리할 때쯤 공통적으로 느낀 감정이 있는데 바로 회사에 대한 애정이었다.
각각의 브랜드 정체성을 빌드업을 하기 위해, 주요 임원 및 관계자들과 함께하는 심층 인터뷰 그리고 회사와 서비스에 대한 지난 자료들을 찾다 보니 위기의 순간에서 어떻게 돌파구를 찾았는지, 첫 매출이 일어났던 순간은 어땠는지 등 그 회사의 서사적 이야기가 보였고, 지금까지 지속해온 기업과 서비스가 대단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회사와 서비스의 진심과 철학 그리고 앞으로의 비전을 온전히 전달하기 위해 한 단어, 한 문장 신경 써가며 고민 많이 했었다. ‘얼마나 고객을 생각하면서 지금까지 왔는지 진심이 제대로 전달되면 좋을 텐데.. 진짜 이 회사, 이 서비스 믿을 수밖에 없을 텐데’ 하고 말이다. 브랜드의 지나온 과정을 보면서 애정이 생긴 것이다.
당시에는 이미 세상에 나온 회사와 서비스를 브랜딩 하는데 참여했지만, 요즘은 회사 또는 제품/서비스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날것으로 보여주는 브랜드가 많아지고 있다. 반가웠다.
“맞아! 과정 자체를 소비자가 직접 보면 브랜드 애정은 더 배가 되겠지!” 하면서 말이다.
우리는 무수한 정보와 서비스 그리고 물건들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쏟아지는 정보와 제품들을 다 기억할 수 없어 각자만의 기준으로 기억할 브랜드만 분류한다. 아무리 완벽에 가까운 제품일지라도 지금 시대에선 선택받기 힘들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 마음에 포지셔닝되려면 차별화된 그 무엇이 있어야 하는데 바로 ‘과정’이라는 키워드이다.
과정은 진행형이다. 회사 그리고 제품/서비스가 나오기 위해 여러 굴곡과 변곡점들이 켜켜이 쌓인 과정은 '스토리'라는 이름으로 입혀진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진정성이 담겨야 한다. 소비자는 그 진정성에 가치를 매기기 때문이다.
컨비니는 배송이나 가격보다 생산자의 스토리를 앞세운 숏 다큐와 상품 상세페이지를 기획하는 ‘발견형 커머스’이다. 발견형 커머스는 우리가 아는 이커머스(목적형)와는 대비되는 개념으로, 우연히 매력적인 콘텐츠를 발견했을 때 상품 구매까지 이어지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상품의 단순 정보 외에도 상품 이면에 숨은 이야기들을 소비자에게 전달하여 소비자가 의미 있는 소비를 할 수 있도록 돕는다.
목적형 커머스는 살 물건이 분명한 소비자가 접속하기 때문에 편리한 구매 방식과 최저 가격 책정에 집중하지만, 컨비니와 같은 발견형 커머스는 ‘볼거리’에 집중한다. 소비자는 컨비니에서 생산자와 제품 관련 정보(사장님의 음식 철학, 제품 생산과정 등)를 다양한 시청각 콘텐츠로 구경하는 과정에서 상품의 가치를 느끼게 된다. 이는 제살 깎기인 최저 가격 전략과는 다른 차원으로 소비자에게 포지셔닝될 수 있다. 그래서 발견형 커머스는 재밌는, 진정성 있는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능력에서 판가름 난다.
더 나아가 컨비니는 소상공인이 주인공인 옥외광고, 소상공인과 협업하여 제작하는 HMR(가정간편식) 상생 프로젝트, OTT 서비스 등 다양한 시도를 선보이고 있다. 지금까지 2천여 명의 생산자를 직접 만나 5천400여 개의 콘텐츠를 확보했다. 현재까지 누적 상품 수는 6천 개에 달하며 최근에는 시리즈 B 투자를 유치했다고 한다.(21년 12월 기준)
“가장 싼 상품이 나닌 가장 정직한 상품을 찾습니다”
컨비니는 최저가 경쟁에 동참하지 않겠습니다. 소비자는 1원 더 낮은 가격의 상품이 아닌, 한 끗 더 나은 제품을 찾고 있습니다. 가장 싼 상품이 아닌 가장 정직한 상품을 생산해주세요. 컨비니는 생산자가 흘린 땀과 고민의 가치를 존중합니다.
- 컨비니 회사 소개 중-
소비자와 세심하게, 밀접하게 소통하는 브랜드는 강력한 팬덤을 형성하게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꾸준함이다. 느려도 꾸준하게 그리고 밀도 있게 소통해오면 과정의 힘이 발휘되어 소비자와 내적 친밀감이 형성된다. 더불어 소비자가 공감하는 고민과 철학을 브랜드가 가지고 있다면 그 친밀감은 배가될 것이다.
일단 내적 친밀감이 형성되면 지나가던 길에서도 그 브랜드가 보이면 시선이 간다. 그들의 소식에 귀 기울이고 반응하게 된다. 이것은 브랜드가 위기일 때 더 빛을 발한다. 오롤리데이처럼 말이다.
2014년 문을 연 오롤리데이는 ‘못난이’라는 캐릭터를 중심으로 문구·의류 등 디자인 제품을 판매하는 디자인 스튜디오이다. 모든 이의 일상이 언제나 'oh, happy day!' 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행복’을 모티브로 하여 다양한 작업을 해왔다. 쓸수록 공감이 되는 디자인을 하는 것이 오롤리데이의 방향성이다.
오롤리데이는 다양한 온·오프라인 채널을 통해 친밀하고 세심하게 소통하는 것이 강점이다. 노션과 유튜브 그리고 뉴스레터(해피어레터) 등을 통해 '당신의 삶을 더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어떠한 고민을 하고 있는지 제품 제작 비하인드와 제품에 담긴 의미를 자세히 다뤄, 소비자가 제품에 더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해피어마트'라는 오프라인 브랜드를 통해 대면 소통하는 것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소비자와 오롤리데이의 이야기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듣고 전달하는 해피어마트 현장 직원을 '프레젠터'라고 이름 짓는 것을 보면 얼마나 소통에 진심인지를 알 수 있다.
21년 5월, 오롤리데이가 중국 상표권 도용에 휘말렸다. 중국 한 대형 쇼핑몰에 오롤리데이의 디자인과 상표명을 그대로 베껴 차린 오프라인 매장이 생긴 것이다. 상표권 관련 소송에 나서기로 결심하지만 작은 기업이 감당하기에 최소 1억 원이 드는 소송 비용은 부담이었다. 이에 오롤리데이는 브랜드를 아끼는 사람들로부터 소송 비용을 펀딩을 받기로 한다.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와디즈’에서 ‘한국 오리지널 브랜드, 오롤리데이 지키기 프로젝트’라는 제목으로 5천만 원을 목표로 펀딩을 시작했고, 팬들 중심으로 입소문이 나더니 팬이 아닌 사람들도 무단 도용을 일삼는 중국의 행태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펀딩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목표금액의 총 110%를 달성하여 펀딩에 성공했다. 친구가 어려울 때 돕듯이, 찐하게 소통해온 브랜드의 팬들은 브랜드가 어려울 때 더 큰 힘이 된 것이다.
회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직접 보는 건 어떨까? 창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우여곡절을 실시간으로 보면서 몰입하게 되고 이내 응원하게 된다. 심지어 실수를 해도 오히려 공감하고 동질감을 느낀다. 회사가 창업하기도 전에 미래 소비자와 감정이 형성되는 것이다.
보통 기업이 충성 고객을 만들기까지 많은 비용을 쏟는다. 그런데 소비자가 직접 창업 과정을 보게 된다면, 창업자가 왜 이 업(業)을 하는지, 어떤 방향을 가지고 있는지, 그 철학과 가치관을 생생하게 보고 흡수하기 때문에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브랜드에 몰입하게 된다. 그리고 그 회사는 창업함과 동시에 이미 형성된 강성 고객들과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회사의 학습을 도와주기까지 한다. 사업을 하면서 뭔가 막다른 길에 있는 것 같을 때, 아이디어가 매몰되었을 때, 회사가 소비자에게 의견을 묻거나 호소하면 바로 반응한다. 세세하게 자신의 소비 경험과 견해를 아낌없이 전달한다. FGI(Focus Group Interview) 같은 의도적인 공간에서 전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 생생하고 적나라하다.
모빌스 그룹은 브랜드 크리에이티브 그룹이다. 파트너 의뢰 또는 협업하는 프로젝트도 있지만, 일하는 사람에게 유쾌한 농담을 던지는 자체 브랜드 '모베러웍스(Mobetterworks)'를 통해 맨투맨이나 머그컵 같은 굿즈를 만들며, 전시회를 열기도 한다. 최근에는 나다운 일의 방식을 찾고, 유쾌하게 일하는 방법을 다룬 '프리워커스'라는 책도 출간하였다.
특이한 점은 모빌스 그룹의 직원들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 회사가 만든 아웃풋을 좋아한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회사 창업전 MoTV(모티비)라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브랜드 제작기부터 다양한 프로젝트 진행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영상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생각과 중요시 여기는 가치를 여과 없이 보여주기 때문에 그들이 원하는 사업의 방향을 응원하게 된다. 특히 MZ 세대 중심으로 팬덤(일명 모쨍이)이 형성되고 있어, 해당 세대와 소통하고 싶은 기업들(싱글톤, 롯데월드, 신한카드 등)이 모빌스 그룹과 협업을 추진해왔다.
종종 모쨍이가 동료가 되어 적극적으로 이들을 도와준다. 회사가 학습될 수 있도록 집단 지성의 힘을 자발적으로 발휘하는 것이다. 한 예로 오뚜기의 '밥플레이크' 프로젝트는 킥오프 미팅부터 출시까지의 과정을 영상으로 보여준다. 프로젝트 진행 중에 영상을 노출했기 때문에 시청자(모쨍이)의 실시간 반응과 아이디어를 제작 과정에 반영하였다. 시청자들이 곧 미래 소비자이기 때문에 과정 중에 의견을 받는 것은 뾰족한 아웃풋에 도움이 된다. 그리고 자신들의 의견이 제품에 반영되고, 잘 돼가는 모습들을 본다면 더 충성스러운 팬이 된다.
앞서 언급한 세 회사가 공통적으로 브랜드의 속(과정)을 보여줌으로써 목표로 하는 포지셔닝이 있다. 바로 '가치 포지셔닝'. 그 어느 때보다 제품이 아닌, 브랜드가 함의하고 있는 가치에 따른 포지셔닝에 집중하고 있다. 가치란 우리 삶이 나아가야 하는 방향 혹은 도달해야 할 목표 같은 것이다. 어떻게 보면 가장 추상적인 포지셔닝이지만 성공하면 가장 차별화되고 강력하다. 사람의 가치관은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리 잡은 브랜드는 팬들이 중심이 되어 브랜드의 가치를 자발적으로 알리는데 참여한다. 그리고 그렇게 전달된 가치에 감동하여 새로운 소비자가 유입되고, 응원하고 도와주게 되는 선순환의 구조가 된다. 이런 구조가 형성되기만 한다면 경쟁사가 따라 하기 힘든 무형자산이 된다.
이 글을 쓰던 중에 과정을 파는 전략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바로 오바라 가즈히로의 <프로세스 이코노미>. 바로 책을 구매하였다. 읽을 생각 하니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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