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었는데요 없습니다
콘텐츠 홍수 속에 살다 보면 읽었음에도 머릿속에 남지 않는 경우가 있다. 제목에 끌려 클릭했는데 기대했던 내용이 없어 읽다 나와 다시 찾고, 다른 콘텐츠 클릭했더니 또 허탕이고. 그래도 예전에는 10개 중에 2,3개 꼴이었던 것 같은데, 요즘에는 절반 이상 허탕 친다. 결국은 수십 개의 알맹이 없는 콘텐츠들만 읽다 시간은 시간대로 버리고 피로감이 든다. 그래서 좋은 콘텐츠는 도대체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 항상 고민이다.
나에게 좋은 콘텐츠의 기준은 이렇다.
- ‘자연스러운’ 화두
- 내용의 ‘적당한’ 깊이감과 길이감
- 글쓴이의 견해가 ‘살짝’ 있는지
- ‘잘 읽히는’ 구조인지
- 읽고 나서 ‘주요' 포인트들이 머릿속에 정리되는지
- ‘영감’을 주는지(생각이나 행동의 변화)
당연한 거 아니야 싶지만, 저 기준에 부합하는 텍스트 콘텐츠 찾기가 의외로 힘들다. 좀 더 나을까 싶어 여러 유료 콘텐츠 구독 서비스를 이용해 보았지만, 점점 무료 콘텐츠와의 변별력을 잃어가는 것 같아 나중에는 잘 안 들어가게 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결말 같았다. 그러다 작년에 우연히 롱블랙 콘텐츠 구독 서비스를 접하게 된다.
2019년 9월에 론칭한 '하루 하나의 노트를 발행하고 오늘이 지나면 사라지는' 콘셉트의 지식 구독 서비스이다. 한 끗 차이를 만드는 감각을 일깨우는 딥 다이브 콘텐츠를 지향하며, 24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콘텐츠로 독자들이 오늘 꼭 읽도록 자극한다. 매일 전체 멤버십 회원의 55%가 그날 발행되는 노트를 읽었으며, 활성 이용자(MAU, Monthly Active User) 수도 10만 명을 넘어섰다(2022년 3월 기준).
에스프레소 두 잔에 뜨거운 물. 롱블랙은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마시는 커피이다. 아메리카노와 비슷한듯하지만 물의 양과 에스프레소 샷을 넣는 순서가 다르다. 아메리카노는 대중적인 커피라고 하면, 롱블랙은 대중적이면서, 진하다. 롱블랙 콘텐츠가 그렇다. 시대적인 관심사와 주요 산업군에서 감각 있는 브랜드를 케이스 스터디 또는 인터뷰 형태로 깊이 있게 다룬다. 에스프레소처럼 호불호가 강한 깊이감이 아닌, 두루두루 시도해 볼 만한 깊이감이다.
롱블랙은 그것을 감각이라고 말한다. 미세한 한 끗 차이. 그 감각은 많은 경험에서 나오며, 콘텐츠를 통해 감각을 키워줄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롱블랙의 목적이다.
감각을 콘텐츠에서만 풀지 않고 비주얼 커뮤니케이션(로고, 컬러 등)과 고객 경험에서도 드러내고 있다. 개인적으로 롱블랙 로고를 Serif(세리프) 계열로 한 것이 좋았다. Serif 계열만의 굴곡감이 주는 감성 자극이 있기 때문. 특히 까치발을 든 것 같은 느낌의 Bracketed serif 스타일이 섬세한 감각을 추구하는 롱블랙의 콘셉트와도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용하는 키 컬러 조합 또한 디자인 매거진 보듯이 과감하지만 조화로워 시각적인 재미가 있다.
롱블랙에는 L, B, C, K라는 4명의 프렌즈가 있는데, 그날의 콘텐츠를 소개하는 가상의 페르소나이다. L은 비즈니스 분석에 관심이 많으며, B는 늘 진지하게 일의 의미를 고민하고, C는 패션 트렌드에 가장 밝으며, K는 착한 기업과 소비에 관심이 많다. 주변에 있을 법한 또는 나와 관심사가 비슷한 페르소나이기 때문에 콘텐츠에 몰입이 더 잘 된다.
롱블랙 콘텐츠는 적당한 깊이감이 있다. 그런데 읽기는 쉽다. 평균 1만 자 정도 되는 원고라고 하니 짧지 않은 길이인데 술술 읽다 보면 끝나 있다. 이 점이 롱블랙 콘텐츠의 강점이다. 좋은 콘텐츠는 쓰는 사람이 전하고 싶은 내용과 읽는 사람이 관심을 보이는 주제가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롱블랙은 그 균형을 잘 잡는 편이다. 롱블랙 콘텐츠를 읽다 보면 관심 정보를 습득할 뿐만 아니라 사고의 확장까지 도와준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밀도 있지만 읽기가 쉬운 것이다.
늘 마지막에는 읽은 내용의 주요 포인트를 요약하여 한번 더 짚어 주기 때문에 머릿속에 남기기 편하다. 그리고 L, B, C, K 프렌즈마다 문체가 조금씩 다른 점도 이색적이다. 이 부분도 글이 어렵게 읽히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생각한다.
제일 신선했던 부분, 하나의 콘텐츠를 24시간만 오픈이라니!! 그동안 인트로만 보여주고 나머지는 유료 회원에게 보여주거나 유료와 무료 콘텐츠가 따로 있는 유형은 봤어도 24시간이 지나면 유료 회원이어도 그날 발행한 콘텐츠를 볼 수 없는 것이다. 처음엔 '구독료 내고 왜 그런 페널티(?)를 받아야 하지?'부터 정말 읽고 싶었던 콘텐츠를 놓쳤을 땐 그 원칙이 야속하기만 했다. 그럴 때 롱블랙은 말한다.
"언제든 읽을 수 있다는 건, 지금 읽지 않아도 된다는 것과 같습니다."
관통당했다. 실제 나의 경우만 보더라도 나중에 읽어야지 하고 미룬 것들을 다시 찾는 케이스가 많진 않았다. 북마크만 하고 안 찾은 콘텐츠가 얼마나 쌓여있던지. '24시간만 오픈' 장치에 익숙해지니 오히려 '오늘 이것만 읽으면 돼'라고 도리어 안도한다. 그렇게 하루에 롱블랙 콘텐츠 하나 읽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다.
롱블랙은 끝없이 업데이트되는 온라인 정보에 지친 소비자에게 '이 정도면 충분해'라는 피니셔빌리티(Finishability) 만족감을 제공한다. 매일 롱블랙 뉴스레터를 기다리면서 오늘은 무슨 내용일까 기대하게 만들고, 콘텐츠 읽는 것을 루틴으로 만들어버리는 효과 때문에 긍정적인 브랜드 경험도 함께 쌓인다. 대신 기대했던 만큼에 콘텐츠 내용이 받쳐주지 않으면 그날의 아쉬움도 그전보다 크긴 하다.
그렇다고 지나간 콘텐츠를 영영 읽지 못하는 건 아니다. ‘샷 추가’ 기능을 이용하면 된다. 1일 1콘텐츠 하면 스탬프를 찍을 수 있는데, 10개를 채우면 샷 교환권이 발행되어 그것으로 예전 콘텐츠 1개를 읽을 수 있다. 마치 내가 롱블랙 카페에 방문한 고객 같다. 꾸준한 참여로 얻은 샷 추가권인 만큼 신중하게 다시 볼 콘텐츠를 선택한다. 서비스 명도 커피에서 나온 만큼 카페처럼 콘셉트를 이어나가는 것이 일관된 브랜드 경험을 주는데 기여한다.
예비 구독자 대상에게도 읽게 만드는 장치가 있다. 바로 공유 기능. 유료 멤버가 콘텐츠 링크를 공유하면 공유받은 사람은 롱블랙 멤버가 아니어도 그 노트를 24시간 동안 무료로 읽을 수 있다. 혹자는 '공유 기능으로 모든 콘텐츠를 볼 수 있게 하면 굳이 가입하여 볼 필요가 없지 않나, 고생해서 만든 콘텐츠가 너무 쉽게 빠져나가는 거 아니냐' 우려한다. 하지만 롱블랙 김종원 부대표는 비용을 들여 진행하는 온라인 광고보다 가입 전환에 더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그 공유 과정을 통해 롱블랙이라는 브랜드가 무료로 홍보되는 것이고, 실제로 이 경로로 유입된 고객은 평균 3-4회 경험하면 가입으로 전환된다고 하니 우려보다 긍정적인 효과가 더 크다.
롱블랙 구독자들이 참여하는 슬랙 커뮤니티가 있는데 활성화가 잘 되는 편이다. 오늘의 롱블랙 콘텐츠에 대하여 의견을 자유롭게 나눌 수 있고 롱블랙 직원도 콘텐츠 제작 비하인드 이야기와 인터뷰 사진을 올리기 때문에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결집이 잘 되는 편이다 보니 롱블랙이 최근 기획한 오프라인 모임들도 인기가 좋다. 그중 하나가 '커피챗'이다. 롱블랙 인터뷰로 만난 사람들을 스피커로 초청하여 오프라인 공간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콘셉트이다. 구독자는 롱블랙 콘텐츠의 주인공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이고, 스피커는 나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직접 볼 수 있으니 서로에게 좋은 에너지와 영감이 되었을 것이다.
롱블랙에 대해 알아볼수록 아주 치밀하게 브랜드 경험을 설계한 콘텐츠 구독 서비스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브랜드 팬덤을 만드는 것은 치밀하고 촘촘한 경험 설계와 구독자와의 유기적인 상호작용의 결과인 것 같다.
앞으로 롱블랙은 콘텐츠 상품의 다양화, 애플리케이션 개발을 통한 편의성 고려, 오프라인 경험의 확장도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또 어떠한 신선한 접근으로 우리의 감각을 자극할지 기대된다.
P.S 롱블랙 브랜드 토크 자리를 만들어준 HFK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