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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Nov 23. 2021

오! 난 워커홀릭이 될 수 없어

프로젝트 성공보다 타르트 한 입이 더 행복한 나, 정상인가요?

  내내 고생해서 런칭한 프로젝트가
좋은 성과를 냈을 때보다
겨우 복숭아 자두 타르트  입에
 행복해하는 나는 정상일까?

나이가 들면서 좋은 점들 중 하나는 나의 감정을 훨씬 더 섬세하게 느낀다는 것이다.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긍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이라는 큰 범주 안에서 감정을 폭풍우처럼 거세게, 그리고 가파르게 느꼈다.


곧 서른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은 나의 감정들 사이사이 아주 미세하게 다른 결들을 이해하는 것 같다.


'나 지금 기분 좋아'가 아니라 그 기분을 구성하는 '기쁨, 성취감, 용기, 신남, 뿌듯함, 행복'을 각각의 다른 결로 느낀다.


그러면서 깨닫게 된 것은 나는 결코 워커홀릭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일이 주는 기쁨'과 '삶이 주는 행복'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다른 무게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지난 9월 어떤 날이었다. 우리 브랜드의 캠페인이 무사히 잘 런칭되고, 내가 담당한 프로젝트가 좋은 성과를 냈다. 그날 오전 사내의 꽤 큰 미팅에서 많은 동료들에게 성과를 공유하면서 (당연하게도) 기분이 좋았다.


그 기분은 작은 '뿌듯함', 그 보다 조금 더 큰 '기쁨', 그리고 아주 큰 '안도감'으로 구성된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날 오후, off를 낸 나는 좋아하는 동네의 낯선 카페에 앉아있었다. off를 내서까지 가고 싶었던 카페가 내 눈앞에서 문을 닫아버렸고. 잔뜩 실망해서는 근처 무명의 카페에 들어갔다.


이렇게 오후를 날리고 싶지 않아 계절 디저트라는 값비싼 복숭아 자두 타르트를 시켰다. 그리고 그 타르트 한 입을 먹는 순간 나는 엄청나게 행복했다.


하마터면 겨우 테이블이 4개뿐인 작은 카페에서 "으아 이거 뭐야 너무 맛있잖아! 행복해!"라고 소리 내어 말할 뻔했다.


이름이 사랑스럽고, 생김새가 깜찍한 데다, 맛까지 좋은 복숭아 자두 타르트 딱 한 입에, 나는 정말이지 기분이 좋았다.


그 기분은 작은 '기쁨', 그 보다 조금 더 큰 '만족감', 그리고 아주 큰 '행복'으로 구성된 기분이었다.



한 달 내내 고생해서 런칭한 프로모션이 좋은 성과를 냈을 때보다 겨우 복숭아 자두 타르트 한 입에 더 행복해하는 나는 정상일까?


지구인, 여자, 딸, 한국인... 나에게 주어진 많은 역할 중 나는 '마케터'라는 직장인으로서의 역할을 다른 역할만큼이나 아낀다.


커리어 측면에서 내가 하루에 8시간 이상을 쏟는 일이 탁월한 성과를 내는 것, 그리고 나와 그 시간을 함께 보내는 동료들에게도 유의미한 것, 그러면서 만들어내는 가치가 만족스러운 것, 그 모든 것이 '나' 라는 사람을 구성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하지만 그것들이 '나의 행복'을 구성하는 메인 재료는 아닌 것 같다.


커리어, 업무 성과, 동료들의 인정, 높은 연봉. 그런 것보다는 지하철을 타고 한강 위를 건너는 것, 한낮의 카페에서 가을 볕을 온전하게 느끼는 것,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내 취향의 샹송, 그리고 이 계절에만 먹을 수 있는 예쁘고 달콤한 복숭아 자두 타르트 한 입이 내 행복을 구성하는 메인 재료들이지 않을까.


달디 단 복숭아 자두 타르트의 마지막 조각을 음미하며 나는 결코 워커홀릭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을 열심히 하지 말아야지. 일은 잘해야지' 그 대신 '열심히 행복해야지. 더 자주, 더 풍부하게'라고 결심하는 직장인 4년 차.


이제서야 내 안의 수천수백 가지 감정의 결을 하나씩 더듬어보며 천천히 이해하고 있는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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