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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피 Jul 10. 2023

하버드 포닥생활이 준 교훈들

Lessons learned from Harvard Post-doc 

보스턴에 도착한 지 일 년 반의 시간이 흘렀다. 순수히 한국에서 학부-석사-박사를 마치고, 처음으로 해외에서 포닥을 시작하였다. 삼 개월 동안 독일 본 World Health Organization에서 인턴으로 일했던 것과 한 달간 Johns Hopkins에서 연수했던 것을 빼면, 성인이 되어 해외에서 일 또는 공부(유학)를 하는 것이 거의 처음이었다.  나에게 주어진 기회는 Harvard T.H. Chan School of Public Health에서 가장 높은 funding을 제공했던 Yerby post-doctoral fellowship이었다. 이 과정에 들어가기까지 높은 경쟁률을 뚫어야 했는데,  또한 이의 연장선상에서 포닥 기간 내내 학교 당국의 까다로운 관리를 견뎌내야 했다 (6주마다 본인의 결과 및 진도보고, 개인 프레젠테이션, 펠로우쉽 콘퍼런스 참여, 학생지도 등). 앞으로 다가올 날들을 알아채지 못한 채, 처음에는 펠로우쉽에 선발되었단 것 하나만으로 마음이 많이 설레었지만, 또 반대로 아무것도 모르는 곳으로 가서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참 막막한 마음이었다.

아래의 이야기들은, 짧았던 1년 6개월 동안 내가 유학하면서 살벌했던(?) 보스턴 지역의 포닥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내 나름 대로의 팁이었다. 어떤 항목은 타인의 조언에서, 또 다른 항목들은 스스로 부딪혀 깨지면서 터득했던 것들이었다. 

  


지나치게 애쓰지 말라


많은 훌륭한 선배들의 무용담에 따르면, 하루에 3-4시간씩 자고, 교수를 감동시킬 정도로 미팅 준비를 하고, 있는 수업을 모두 다 찾아서 듣고, 눈코 뜰 새 없이 일을 해서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 돌아왔다.. 등등의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런 이야기들을 들을 때마다 고무되었고 “치열하게 살자”를 핸드폰 바탕화면에 적어놓고 유학 가기 전 정신수양(?)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러면서 꾸준히 나를 고무시켜 주시고 자극시켜 주실 선배들을 찾아뵙고, 조언을 구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내가 보기에 엄청나게 워커홀릭이신 교수님 두 분께서 같은 말씀을 해주셨다. “지나치게 애쓰지 말 것. 삶의 여유를 비워놓을 것. 일을 너무 열심히 하는 것보다, 주변의 미국 사회를 살피고 올 것”

특히, 어떤 한 교수님께서는 너무 열심히 해서 무엇을 이룬다는 마음을 버릴 것을 간곡히 주문하셨다. 나중에 유학을 가서, 삶에 너무 많은 변수가 일어나서 내가 절대로 삶을 통제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떠오르면서, 왜 위의 말을 두 교수님께서 당부하셨는지 조금은 알 수 있게 되었다.   

리스트 만들기: burn out에서 나를 막아주는 확실한 방법


이것은 굳이 내가 여기 쓰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아침마다 하는 일과일 것이다. 단지 내가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매주 월요일 아침 책상 앞에 앉아 이번주의 할 일의 목록을 세우고, 할 일을 조정하는 일이, 나를 끊임없이 일을 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에서 벗어나게 했다는 것이다. 끝은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포닥 때는 항상 다급하다. 내가 일을 더해야 하는 것 아닌가, 여기서 더 많이 논문을 써야 하는 것 아닌가, 이 사람 저 사람들이 주최하는 행사에 가서 나를 소개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러다 보면 오늘 내가 몇 개의 일을 끝내든 항상 남들이 모두 집에 가고 난 직후까지 일을 해야 할 것 같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물론 아이와 단둘이 살던 나는, 매일 5시 40분에 프리스쿨에서 아이를 픽업해야 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이렇게 기약 없이 일을 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정해진 시간 안에 리스트에 기록된 일을 끝내야 했고, 그래서 대부분의 점심을 거르거나 일하면서 싸 온 음식을 먹었다. 그렇게 리스트에 있는 모든 일들이 지워지는 것을 보고 퇴근을 하면, 집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따로 더 일을 하지 않았다. 뒤에서 이야기할 내용이지만, 그래서 저녁을 더욱 온전하게 보냈다.

그렇게 집중해서 오늘의 할 일들을 리스트에서 지우고 자리를 일어설 때면, 내가 오늘 또 무엇을 했다는 뿌듯함이 생겼다. 이런 긍정적 피드백은 참 중요했는데, 종종 외국인인 내가 문화적인 문제로 스스로를 과소평가하는 것을 어느 정도는 막아주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리스트를 세우지 않고, 육아와 일을 병행해야 했다면, 나는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제대로 모른 채 아이가 잠든 이후에 또 “난 지금 무언가를 해야 해”라는 막연한 생각에 괴로워했을 것이다.   



궁금하면 질문할 것, 확실하지 않으면 질문할 것, 모든 발표 후 질문할 것


“I will miss your very smart and thoughtful comments during our group meetings.” 내가 한국에 돌아간다고 했을 때, PTSD 전문가 미팅에서 만난 Eric Rimm 교수가 해준 말이다. 이 미팅에서 어쩌면 나는 가장 “낮은” 직급인 포닥이었으며, 들어오는 교수들은 모두 한 분야의 대가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미팅이 열릴 때마다, 내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나 내 아이디어를 내는 것에 수줍어하지 않았다. 모든 미팅에서 가만히 있으면 그냥 없는 사람 취급당한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기 때문이었다. 안 그래도 소셜이 적은 외국인데, 내가 아는 학술적인 내용을 다룰 때만이라도 내 존재가 여기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바보 같아 보이는 질문이라도, 질문자체를 하는 것에 목표를 두고 참석하는 모든 발표와 미팅, 콘퍼런스에서 질문하려고 노력했다. 질문도 연습이었다. 몇 번을 두고 계속하다 보니 “ Great question”이라는 피드백이 자주 왔다.   



중요한 사람에게 자기소개하기


사람 만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나였지만, 여기서는 적극적으로 자기 자신을 소개하고, 자신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를 중요한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유명한 연자가 오면 어떻게든 자기소개를 하려고 줄을 서는 것을 보면서, 나도 내가 평소에 갖고 있었던 질문에 대해 깊게 연구한 사람들이 연자로 올 때마다 인사하고 내가 지금까지 어떤 연구를 했으며 어떤 것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를 이야기했다. 때때로 그들에게서 아주 핵심적인 피드백이 오는 경우도 있었으며, 코웍등의 실제적 네트워크로 이어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했던 것은, 그렇게  자기소개를 계속하여 시도하면서, 스스로를 프레젠테이션 할 수 있는 능력도 올라갔던 것이다. 시장논리와 계약으로 이루어지는 이 사회에서, 자기 자신의 상품가치를 선전할 수 있는 것도 하나의 능력이 되는 것임을 깨달았다.   

Chat, Chat, Chat: 공부하는 사람들과 수다 떨기


내가 유학을 와서 가장 즐거워했던 점이다. 워낙 자기 자신의 일들에 천착하여 생활하는 이들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주변의 사람들과 수다를 떨 때면, 주로 자신이 연구하고 있는 분야에 대해서 깊은 고민을 들어볼 수 있었다. 같은 방에 있던 심혈관질환 역학을 하는 친구와는 인과적 추론을 두고 3시간 넘게도 같은자리에서 수다를 떨어본 적이 있는데, 사실 그 시간을 통해서 또 많이 배우기도 했다. 일에 치여서 혼자의 자리에서 일만 하는 라이프스타일보다, 일이 잘 안 될 때 커피 한잔 들고 옆에 있는 친구를 불러내어 이렇게 수다는 떠는 시간들이 내겐 유학생활 통틀어 가장 소중했다.


   

Plunge into learning English


문제는 영어였다. 학술적 교류는 거의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수다를 떨 때 은어나 관용구가 섞이면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해 멋쩍어하던 때가 있었다. 또한 특히 토론을 하면서 일을 할 때, 처음에 어휘와 표현을 따라가지 못해 어색해하던 내가 있었다. 안 그래도 미국에서 어떤 정규교육과정도 밟지 못한 나라서 영어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는데, 안 되겠다 싶어 처음 6개월 동안은 한국방송이나 한글책을 읽지 않고 그 시간에 미국드라마와 책을 보았다. 한국인 친구들보다 미국인 친구들과 더 많은 시간을 가졌다.  한 번에 영어에 확 빠지는 게 영어실력을 늘리는 데는 중요한 것 같았다.   



분석의 힘은 읽기에서 나온다: 교과서 읽기


논문 쓰느라 급급했을지 몰라도, 나는 매달 읽을 교과서를 정해서 읽어나갔다. Causal inference, life-course approach to mental disorders, Textbook of psychiatric epidemiology,  Survival Regression 등의 책을 읽었는데, 모든 내용을 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학문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교과서를 읽으면 지금까지 연구가 어디까지 진행되어 있고, 내가 덧붙일 수 있는 내용이 어떤 것이 있다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기에 좋았다.   



논문 쓰기, 코멘트받기, 논문 고치기


“한 편의 논문을 완성하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하바드 자료로 몇 편의 논문을 썼는데, 모든 단계마다 치열한 Peer-review가 있었다. 분석방향을 잡을 때부터 모든 공저자들이 의견을 내었고, 또한 모든 공저자가 그렇게 꼼꼼하며 열심히 코멘트를 달았다. 미팅에서도 내 논문의 내용 하나만을 가지고 한 시간 반동안 이야기하고, 다시 바꾸고 또 바꾸고 다시 분석하고를 몇 번 하여 겨우 완성했다. 내용을 고민할 때도, 자가검열이 있었는데, 과연 이 내용이 실제적으로 의미가 있는 내용인가, 그저 분석에서 우연히 얻은 결과가 아닌가를 두고 고민했다. Authorship에도 누가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정확히 따지고, 아무리 대가라도 기여한 바가 충족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중간에 이름을 뺐다.

그리고 이 논문들은 지금 각각의 저널들의 리뷰를 받고 있다..(fingers crossed!)   

Making a Presentation: practice, practice, practice


전부터 느낀 거지만 여기의 모든 이들이 프레젠테이션 발표를 참 잘한다. 그리고 이것은 발표를 앞두고 몇 번이나 연습한 결과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 지도교수님이 ‘발표하는 비법’이라 발표를 했었는데, 슬라이드는 단 한 장이었다. “practice, practice, practice”. 점점 프로페셔널 해질수록(조교수 vs. 정교수) 슬라이드의 글이 적어진다며, 툭치면 줄줄줄 나올 수준으로 연습하라는 게 핵심이었다.   

당당함, 자기 자신의 연구결과에 대한 믿음 vs. 겸손함, 진리에 대한 조심성


여기 학생들의 첫인상은 아주 당당하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하는 일에 대해서 굉장히 자긍심이 높았으며, 교수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를 또렷이 전달하는 친구들이라는 것이다. 내 논문을 영어 때문에 어느 석사학생에게 전달한 적이 있는데, 영어보다 내용을 지적(?)하는 코멘트를 여러 개 달아놓았었다. (물론 나는 웃으며 모두  지웠지만)

내 분석결과를 발표해야 하는 자리에서, 한국식으로 “겸손히” 말을 했다가 학생들에게 호되게 당한 적이 있다. 나의 “겸손한” 표현을, 내 분석에 문제가 있을 거라고 해석하고 돌아가면서 강한 비판을 했었던 것이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지도교수는 내 개인면담에서 “you must be more assertive”라고 주문을 한 적이 있다.

여기 있는 친구들은 학생 때부터 자신이 하는 일에 당당함을 갖도록 요구받는다. 때로는 너무 과도히(?) 자신이 옳다고 하는 어린 친구들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모습은 점점 나이가 들고 프로페셔널해질수록 겸손함으로 대치되어 가는 것 같다. 대부분의 교수님들은 자신의 결과에 대한 해석을 할 때 조심하는 모습을 보이셨고, 또한 학생들이나 주변사람들의 의견에 대해서도 귀 기울여 듣고 존중하는 모습을 보이셨다. 


  

비교하지 말 것


하바드는 정말 뛰어난 사람들이 주위에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만약 내가 나를 이들과 비교하기 시작했다면, 깊은 우울증에 빠져있었을 것 같다. 특히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고, 미국 내 대학 이후정규교육을 받아보지 못했다는 데에 대한 결핍감은 컸다. 영어가 원활한 미국인 동료 중 어떤 이들은 같은 미국인 동료들에게만 말을 거는 사람도 있었다. 하버드에서 석박사를 하고 포닥이 된 친구들과, 시스템을 잘 모르는 내가 만나있을 때, 한없이 작아 보이는 나를 발견한 적도 있다. 이때 나의 고민을 들어준 미국인 동료(하버드 출신)가 해준 말이다. “비교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나도 처음엔 그랬거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차이는 아무것도 아니더라. 비교하지 말 것. 하바드에서 살아남아야 했을 때 내가 가장 많이 외운 주문이었어”  


 

Stay positive


누군가 문 앞에 쪽지로 붙여둔 이 말이, 펠로우쉽이 끝나는 순간까지 나에게 가장 중요한 조언이 되었다. 나는 외국인이고, 보이지 않는다 해도 인종차별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같은 미국인 포닥에게는 좋은 자리를 내어주고, 나에게는 구석의 방문도 없는 자리가 주어지기도 했다. 그때 이 “stay positive”란 말은,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말이 아닌, 나의 정신건강과 생존에 꼭 필요한 말이었다. 항상 좋은 쪽으로 해석하는 것. 내가 겪는 일련의 사건들이 인종차별이나 성차별, 외국인 차별이 아닌 다른 이유에서였을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사고의 습관은 연습이 필요했는데, neutral 한 상황에 대해서 나의 기분을 해치지 않는 해석을 찾아 실제로 그렇다고 믿었던 것이다. 만약 내가 차별과 배제적인 타인의 행동 하나하나에 민감해했다면, 나의 생활이 아주 힘들어졌을 것 같다.   



30 min walk, be physically active


어떻게든 운동을 해보려고, 아이를 데려다주고 학교 가는 길과 돌아오는 길은 걸었다. 걷고 있으면, 복잡했던 마음이 잘 정리되었다. 또한 그날 해야 할 일들이 무엇이 있는지, 누굴 만나야 하는지, 새로운 연구아이디어가 어떤 것이 있는지 잘 떠올랐다.  이는 우리 지도교수가 내게 알려준 팁이기도 하다.   



Work & life balance: 8-5PM,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 요리


나는 미국에 네 살 난 딸과 단둘이 왔다. 처음으로 내가 아이를 전적으로 케어하는 과정이었고, 그래서 많이 힘들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이 아이가 있어 내가 타지에서의 힘듦을 이길 수 있었구나,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우리 딸이 있어 이 시간들이 참 소중하구나란 생각을 했다. 매일매일 아이 먹을 것을 챙기고 (우리 딸은 한식만 먹는다) 요리를 하게 되다 보니, 요리를 비롯한 집안 살림에 자신이 붙었다. 아이를 재우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개는 시간의 고요함이 참 좋았다. 한국에서만 있었다면 평생 모를 수 있었던 경험이었는데, 이제야 내가 조금은 온전한 어른이 돼 가는 것 같았다.   



나를 이완시키는 시간


직장에서 각박하게 일하고 집중하는 시간이 많다 보니, 반대로 그 긴장을 풀어줄 시간이 꼭 필요했다. 아이와 “’ 스트레칭”동영상을 틀어놓고 스트레칭을 하며 꿈나라로 가는데, 그만큼 여기 와서 이완하는 시간이 중요하다는 것을 꺠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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