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나연 Feb 08. 2022

글을 왜 쓰냐면

조금 늦은 새해 첫 다짐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도 가장 멋진 각도를 찾아 사진을 남기는 것이 상식이 된 시대. 꽤나 그럴듯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쉴 새 없이 인증해야 하는 피로감이 핸드폰 카메라가 찰칵 일 때마다 켜켜이 쌓여간다.

참말로 그럴듯하면 좋으련만 실상은 대체로 그럴듯해 보이기만 한다는 걸 깨달은 순간, 하마터면 삶이 또 미워질 뻔했다.




남편이 창업을 했고, 이후 7년은 아이들과 가기 좋은 곳을 찾고 소개하는 것 - 그 모든 과정을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여 공개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결혼 전의 나는 아이를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었고, 바깥 활동보다는 당연히 방구석을 뒹구는 쪽이었지만 '생업'과 '양육자'라는 이름의 책임감이 등을 떠밀고 있으니 가보지 않은 길이라도 가야만 했다.


아이를 낳았을 뿐 사람의 취향이라는 것은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닌지라 지극히 개인적이고 내향적 성향의 엄마였던 나는 으레 아이들이 좋아하는 곳이라 여겨졌던 키즈카페나 테마파크보단 누구 하나 마주칠 일 없는 숲과 산, 허허벌판을 찾아다녔다. 그런데 그 길에서 예상치 못했던 나 - 장거리 운전도 거뜬히 해내는 나, 방방을 뛰며 신나는 나, 집에 돌아오자마자 또 내일 갈 곳을 검색하는 나 등등 - 을 찾았고,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더 멋진 아이들.  - 장거리 이동에도 징징거리지 않는 아이들, 한라산, 지리산도 거침없이 오르는 아이들, 산낙지도 없어서 못 먹는 아이들 등등 - 을 발견했다.


길 위에 서있던 그 시절의 우리, 특히 나의 아이들은 내 보기에 너무나 눈이 부셔서 그 반짝임을 놓치지 않으려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온갖 드라이브가 가득 차도록 사진을 찍고 찍어도 부족하게 느껴졌다. 우리의 사진이 부모들의 눈과 마음을 현혹시키기를, 그래서 더 많은 아이들이 서슴없이 밖으로 뛰어들기를 바라고 바랬다.


그러나 사진은 한계가 있었다.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도전과 모험의 경험을 딛고 서있는 아이들의 사진은 너무나 생생하고 멋졌지만 - 그래서 사진을 보는 이들마다 우리의 여정을 부러워하였지만 - 현장의 감동적 아우라까지 충분히 담아내지 못했다. (물론 나의 기술이란 것이 DSLR 자동모드로 구도나 겨우 잡는 수준이기도 했지만) 제 아무리 잘 찍으려 노력해도 뛰고, 구르고, 흙과 땀이 범벅되어 내쉬는 뜨거운 숨과 공기의 냄새, 온도 같은 것들은 담기지 않았다. 그 찰나로는 진짜 경험을 겨우 가늠이나 해볼 뿐 결코 대체할 순 없었다.


하지만 사진은 삶을 보기 좋게 일축하기에 아주 요긴했다. 작은 네모 안의 모습만 아름다우면 다 괜찮아 보였으니까.

자유분방함과 체력을 타고난 16개월 터울 남매는 항상 에너지가 넘쳤지만. 여유작작한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내 속의 여유란 여유는 다 끌어다 써야 했던 나는 자주 지쳤다. 그래서 신경질이 났고, 남들의 놀이가 내겐 일이 되는 상황이 분하고 속상할 때도 많았다. 그러나 카메라 앞에 서는 건 즐거운 아이들이요, 그 뒤의 나는 보이지 않았으니까 나의 육아는, 심지어 엄마로서의 나는 꽤나 그럴듯해 보였다.




지옥에 서서 천국을 만드는 대단한 능력 같은 것이 내게 있을 리 없다. SNS 속 시종일관 행복하게 보이는 나의 일상 몇 조각은 겉포장만 번듯한 척 내놓은 싸구려 상품처럼 느껴졌다. 어느 시점부턴 내가 찍은 몇 장의 사진들이 엄마로서, 인간으로서의 나를 과대 포장하고 있는 것만 같아 늘 노심초사했다.


나는 작은 일에도 마음이 불편할 정도로 예민하고 불안을 숨길 수 없을 만큼 얇디얇은 껍질을 두르고 산다.

진짜 나와 보이는 나 사이의 간극이 벌어질수록 불편하고 불안하다.    

천국을 보여주고 싶다면 내 안에 진짜 천국이 만들어져야 했다. 그렇지 못한다면 내 안에 고인 불편함과 시커먼 불안의 구렁텅이를 있는 그대로 내보일 수 있어야 했다.


그래서 글을 썼다.

사진이 가리는 것을 글은 들춰낼 수 있으니까.


아름다운 에너지가 충만한 사진에 그 아름다움을 만들기까지의 고민과 어려움을 글로 써 덧붙였다. 스마트폰 화면을 대충 스크롤하면서도 쉽게 눈에 담기는 사진과 달리 멈춰 서서 시간을 들여야 하는 글로 소통하는 것은 충분치 못한 지점이 있겠지만 가면을 쓰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내 마음에 돋아난 가시들이 작아졌다.


글을 쓰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쓴다면 거추장스러운 포장을 기 위해, 나의 민낯에 가까워지기 위해 쓰고 싶다.

조금  부끄럽기 위해   있는  민낯 맑게 가꾸고 싶고.


사진을 찍든, 글을 쓰든, 말을 하든, 춤을 추든 그것이 다 같게 보이는 삶, 그 자체로 나, 참 단순하고 담백한 삶. 그런 삶을 살고 싶다.


갈길이 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