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esquiss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나연 May 13. 2022

주파수를 맞춰요

어쩌다 라디오

내 꿈은 화가일 거라 지레짐작하고 살던 때가 있었다.   

어렸고, 경험도 지식도 너무 얕고 좁았던 때 그 작은 레이더로 포착할 수 있는 예술적 영감을 발현하는 일이란 화가가 고작이었으니까.     


막상 그림을 전공하겠다고 뛰어들고 나서야, 고된 입시의 줄타기를 한참 하고 나서야, 실은 내게 수많은 시도와 번뇌를 감수하면서라도 그려내고 싶은 무언가가 없다는 걸 알았다. 원체 미지근한 사람이었다. 뜨거워질 줄도 얼음장같이 차게 식을 줄도 모르는....   


학창 시절 내내 얄궂은 손재주에 기대어 딱히 흠잡을 건 없지만 그렇다고 딱히 매력적이지도 않은 모범생 같은 그림만 줄곧 그렸다. 나 스스로도 이 고만고만한 능력에 잔뜩 질려버린 덕에 이만하면 되었다 한치의 아쉬움도 없이 손을 털었다.


이번엔 학자가 돼보려 했다. 동경해 마지않던 인문학을 해보겠다고 일본어, 중국어, 한자, 영어가 한꺼번에 쏟아지는 수업들을 울며불며 버텼고 겨우겨우 모르는 것도 아는 척 표정관리라는 걸 할 줄 알게 되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는데 모처럼 정말 정말 만족스럽게 준비한 발표를 마무리하고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 세계도 나에게 맞는 곳이 아니었다는 걸.  


아무리 흥미로운 해석이라도 정확한 문헌 자료나 실제 하는 유물을 뒷받침할 수 없으면 이론이 아닌, 그저 한낱 감상에 불과하다는 교수님의 피드백이 한 글자 한 글자 또렷하게 귀에 박혔다.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정확한 비판이었다. 학자가 되기에 나는 너무 감상적이었다.  


보이지 않는 것을 한껏 더 한껏 궁구 하던 세상에서 온 나에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경계를 가르는 것부터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니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대학원 생활을 하는 내내 내 깊은 어딘가가 절레절레 고개를 내젓고 있는 것을 애써 모른척하고 있었다.  


나는 보이지 않는 것을,  

어쩌면 영영 볼 수 없을 것을,  

그저 한낱 감상을,   

세상 하등 쓸모없는 것을,   

그러나 아름다운 것을,   

하찮게 넘길 수도 있지만 충분히 쓸모 있게 바라볼 수도 있는 그런 애매한 것들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림을 그리고 싶었고, 연구하고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러나 내 재능이란, 내 마음이란 예술가로 살기엔 너무 굳었고 , 학자가 되기엔 너무 물러 터진 참으로 애매한 경도를 지닌 것이었다.   


나란 사람은 이토록 어중간했다.




깊이의 탐구가 숙명인 예술학도로 살아왔던 내가 '얕고 애매한 존재로서의 나'를 받아들이는 건 사실 좀 슬픈 일이었다. 때마침 찾아온 결혼과 출산은 이 골치 아픈 존재론적 고민에서 잠시 벗어나기에 더없이 좋은 핑계가 돼주었다. 삶에겐 좀 비겁한 듯싶었지만 육아의 너울을 뒤집어쓸 수 있어 진심으로 안도했다.


그런데 인생이란 얼마나 얄궂은 장난꾸러기인지.. 예술가도 학자도 아닌 그저 엄마로 살겠다는 결심이 생각지도 못한 다양한 길로 나아가게 하는 주문이었을 줄이야....


엄마로 살아가려니 예술가보다 더한 상상력과 창의력이 필요했다. 내 아이라는 미지의 영역을 웬만한 학자보다 더 파고들어 이해하고 밝혀내야 했다.

내 생애 처음으로 가장 아름다운 그림으로 가꿔가고 싶은, 가장 열심히 연구하고 싶은 주제가 생겼다. 그런 열망이 나를 새삼스런 지적 호기심과 탐구심으로 이끌었다. 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이 넘쳐났고 내 아이들은 이 모든 걸 함께 하기에 더없이 좋은 파트너가 돼주었다.


너무도 흥겹게 마음껏 엄마로 살았을 뿐인데 어느새 사업가, 기획자, 선생, 여행자, 심지어 지난달부터는 방송인(?!)으로 살고 있다.  


처음 수화기 너머로 MBC 라디오 PD라는 소개가 건네 졌을 때 너무 당황해서 다리가 달달 떨렸다. 아이들과 가기 좋은 곳을 소개하는 코너의 고정 게스트로 초대하고 싶다는 이야기가 아득히 들려오는데 사리판단도 할 수 없을 만큼 머릿속이 새하얘져서 반나절만 고민할 시간을 달라는 답만 겨우 했다.  

아이들을 위한 일을 하면서 두어 번 방송 출연을 해본 경험이 있었는데 별로 좋은 기억이 못되었다. 방송팀은 이미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고 나는 그저 입맛에 맞게 잘라 넣는 재료일 뿐이었다는 걸 내 기대와 전혀 다르게 편집된 화면 앞에서 통감했기 때문이다. 낯선 사람과 인사하는 잠깐의 시간도 불편해하는 나 같은 사람이, 30분이나 되는 코너를 떠들어댈 수 있을지도 큰 문제였고....


그래도 아이 셋의 엄마라는, 그리고 나와 동갑이라는 PD님이 잘할 수 있을 거다 확신하던 목소리가 든든해서, 나를 추천하신 분이 내가 남몰래 흠모하던 작가님이라는 사실이 설레어서, 어쩌면 이번엔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이 왜곡되지 않고 전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무엇보다 내 아이들과의 시간을 책임감이라는 익숙한 친구에게 등 떠밀려 가며 곱씹어 볼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에 용기내어 해보기로 했다.


여전히 마이크 앞에서 나누는 첫인사는 어렵고, 매주 어디를 소개해야 할지,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지만, 심지어 그조차도 현장에서 긴장한 덕에 결국은 될 대로 되라가 되어버리곤 하지만, 내 주제에 맞게 얕고 넓게, 모든 분야를 애매하고 어중간하게 훑으며 살아온 덕에 그런대로 아웅다웅해나가고 있다.   

수십 년이 지난 후에 이런 긴장감마저도 추억이 돼버릴 즈음엔 그때 그런 일도 있었지 한번 더 웃을 수 있겠지 애써 기대하며 여전히 나는 내 삶의 주파수를 우왕좌왕 맞추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