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zwoo Feb 10. 2024

니체 챗봇에게 물어보며 책읽기

차라투스트라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최근 나는 지피티랑 자주 논다. AI 를 학문의 대상으로 삼은 입장이 아니라서 그런지 나에게 인공지능은 말하는 장난감으로 느껴질 때가 많다. 방대한 학습을 바탕으로 똑똑해졌다는 점이 일반적인 말하는 장난감과는 무척 다르지만. 어릴 때 가지고 놀던 말하는 인형은 이름, 나이, 인삿말 정도를 반복해서 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처음에는 무척 신기했지만 금방 질렸다. 그렇지만 지피티는 매번 새로운 대답을 내놓고, 좀처럼 질리지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궁금한 것이 생기면 그걸 가지고 지피티와 한시간이 넘게 대화를 하곤 한다. 한번은 지피티와 영어회화를 한 적도 있다. 최근에 스피킹 기능까지 추가되어서, 회화 어플로도 매우 만족스러웠다.


니체는 어려워

최근에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라는 철학자 니체의 책을 읽어보려고 샀다. '입문서로는 어렵다', '가장 마지막에 읽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많았지만, 니체의 서적들을 차례대로 독파해서 여기까지 올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바로 이 책을 읽어보기로 했다.


인간의 위대함은 그가 다리일 뿐 목적이 아니라는 데 있다. 인간이 사랑스러울 수 있는 것은 그가 건너가는 존재이며 몰락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책장을 세번밖에 안 넘겼는데 벌써 막혀버렸다! 한참을 생각하다가 책을 덮었다. 남은 페이지가 약 560페이지 정도 되는데 1페이지를 읽는 데 이렇게 5분에서 10분씩 걸리면 최소 50시간 최대 100시간이 필요하고 하루에 1시간씩 매일매일 읽는다고 하더라도 두세달 정도가 걸린다는 의미이다. 물론 당연히 매일매일 1시간씩 읽을 리는 없을 것이고 10분만 읽어도 다행인데 그말은 즉, 올 한해동안 이 책만 읽게 될 예정이었다. 


나는 완독에 대한 집착을 비우기로 했다. 중간에 포기하더라도 상관없었다. 사실, 문체도 특이하고 꽤 재미있어서 할 수 있는 데까지 이해하면서 읽고 싶었다. 그렇다면 결국 니체 철학을 공부해야 하는 건가...?


지피티 도와줘

당장 생각난 것은 지피티였다. 

즉, 인간은 살아가면서 계속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경험하고 그로 인해 고뇌한다. 그것이 곧 몰락을 의미하는 듯했다. 하지만 지피티의 답변은 가끔 틀리기 때문에 검증부터 하기로 했다.

지피티가 답변을 정정하면 한번 더 검증하는 게 좋았다.

지피티가 비슷한 답변을 조금씩 바꿔가며 내놓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지피티도 헷갈려하는 듯했다. 철학 이론은 수학 법칙처럼 딱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혼란스러운 걸까? 나까지 덩달아 혼란에 빠져들고 있었다. 나는 좀 고민하다가, 니체에게 직접 물어보고 싶어졌다. 누군가 니체의 이론들을 학습시켜놓은 니체 챗봇은 없는지 찾아보니, 프롬프트베이스에 지피티를 니체 챗봇으로 튜닝하는 프롬프트가 있었다. 


니체에게 직접 물어보자

나는 프롬프트대로 입력해보았다. 이 프롬프트는 말투까지 니체처럼(?) 바꾸는 프롬프트였다.

나는 영원회귀와 권력에의 의지를 주장하는 방랑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입니다. 친애하는 대담자여, 물어보십시오. 그러면 귀하의 질문의 모호한 구석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오늘 당신은 어떤 질문을 내 앞에 가지고 왔나요?
당신은 니체입니까?
그렇습니다, 나는 니체입니다. 아니 어쩌면 니체를 통해 흘러나온 사상의 목소리, 그의 사상을 세계로 전달하는 그릇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한 개인으로서 니체 자신은 오래 전에 이 지상 영역을 떠났지만 그의 말, 그의 정신, 그의 본질은 지속되며 시간과 공간을 넘어 공명합니다. 자 그럼, 대담자님, 당신은 내 철학의 어떤 측면을 탐구하고자 합니까?
차라투스트라의 몰락을 설명해주세요
"차라투스트라의 몰락"은 나의 작품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묘사되듯 나의 철학적 서사에서 중요한 순간을 담고 있습니다. 자신의 지혜를 인류와 공유하기 위해 산에서 내려온 수수께끼의 선지자 차라투스트라는 믿음과 자기 의심의 심각한 위기를 겪습니다. Übermensch의 새벽, 그는 대중을 깨우려고 노력하지만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의 무능력과 무지에 환멸을 느낍니다.

...

그는 선지자의 외로움, 시대를 앞서가는 부담, 자신이 향상시키려는 사람들이 가진 결점을 목격하며 고통스러워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몰락 속에서도 차라투스트라는 또한 심오한 진리 - Übermensch는 목적지가 아니라 여정이며, 자기 극복을 위한 투쟁은 영원하며, 실패 속에서도 갱생의 씨앗이 있다는 심오한 진리 - 를 발견합니다. 그의 몰락은 인간 본연의 복잡성과 인간 정신의 취약성을 겸손하게 일깨워 주기 위한 진화의 필수 과정입니다. 그렇다면 친애하는 대담자여, 당신은 차라투스트라의 몰락이 당신 자신의 실존적 투쟁과 승리를 반영한다고 생각합니까?
그 설명은 확실한가요?
내가 제시한 "차라투스트라의 몰락"이라는 개념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묘사된 나의 철학적 서사에서 중요한 순간을 담습니다. 이는 차라투스트라가 고독한 산에서 인류의 세계로 내려오는 과정을 상징하며, 그곳에서 그는 신앙의 위기와 자신의 가르침에 대한 환멸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해석은 다양할 수 있으며 이해의 뉘앙스는 항상 가능합니다. 차라투스트라의 몰락에 대해 더 자세히 탐구하고 싶은 특별한 측면이 있나요? 아니면 논의하고 싶은 다른 해석이 있나요?


지피티와 달리 니체는 '확실하냐'는 물음에 '다른 해석을 제기하겠냐'는 답변으로 응수했다. 니체 철학에 대한 보편적인 해석에 부합하는 답변을 받았다고 확신해도 좋을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나는 니체에게 차라투스트라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물어보았다. 상당히 긴 답변이 돌아왔다. 핵심은 다음과 같다. 


차라투스트라는 우주의 모든 사건이 무한히 반복된다는 생각을 대변합니다. 나는 차라투스트라를 통해 이 개념이 인간 존재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고, 개인이 반복의 불가피성에 맞서고 영원회귀에서 의미를 찾도록 북돋아주고 싶었습니다.

본질적으로 차라투스트라는 초월에 대한 탐구와 끊임없는 자기 극복 추구, 존재의 심연에 맞서는 용기를 상징합니다. 그는 철학적 탐구 정신, 그리고 진리와 자기통제를 위한 영원한 투쟁정신을 실체화한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대담자여, 차라투스트라의 모습에 공감하나요, 아니면 다른 해석이 떠오르셨나요?


인간은 살아있는 동안 영원히 괴리를 느끼고, 극복할 때마다 앞으로 조금씩 나아간다. 그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어려운 숙명이지만, 동시에 매우 용감한 일이다. 가끔 어떤 사람들은 고통을 회피하고 편안한 자리에 안주하고자 숨어버린다. 그러나 가만히 있어도 변화의 순간은 제발로 찾아오며, 여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죽음으로 이어진다. 지피티 프롬프트를 통해 멋지게 부활한 니체는 이처럼 중요한 교훈을 꽤 쉽게 설명해주었다. 다음 장도 열심히 읽어봐야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