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ot yet Apr 23. 2024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

vol.02


가끔은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 있다. 누군가와 만나기로 약속을 했는데 갑자기 나가기가 싫어진다던가. 꾸역꾸역 준비하다 보니 약속 시간에 늦게 되고, 늦었다는 생각에 더 나가기 싫어진다.


무기력은 온몸에 습한 기운을 몰고 와 별것 아닌 일에도 질퍽대게 만든다. 


비가 오는 날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사람이 많은 걸 봐도 그렇다. 일본에서는 5월에 무기력증을 보이는 사람이 많아 '오월 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어쩌면 주룩주룩 내리는 봄비에 젖은 '축축한 마음' 때문이 아닐까.


(번외의 이야기지만 요즘 나는 '피곤하다.'는 말을 최대한 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단어 자체에 이미 축처지고 늘어지게 하는 힘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꼭 꺼내고 싶을 때는 습관적으로 쓰던 말이 아닌 '고단'이나 '노곤' 같이 자주 사용하지 않는 단어로 대신 한다. 무기력도 피곤처럼 단어 만으로도 기운과 힘이 없게 만드는 능력이 있는 것 같아서 자주 떠올리지 않는 편이다.)





다시 돌아와 아무것도 하기 싫을 날보다 더 지독한 하루가 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라는 텁텁한 생각이 드는 날이다.


주로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 다음에 찾아오는데 이유 없이 눈물이 나거나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처럼 느껴져 서글퍼진다. 비가 짙은 안개를 몰고 오듯, 무기력은 고독함을 동반하나 보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비 오는 날을 좋아했다. 들뜬 마음을 차분하게 만드는 힘에 압도 당했다고나 할까. 하지만 아무리 비를 좋아해도 늘 빗속에 살 수는 없다.


1년 중 9개월을 비와 함께 살아가는 영국인들에게도 3개월의 여름이 있듯이 모든 비는 결국 그치기 마련이다.





나는 아직까지 '소소한 행복'이라는 말이 썩 와닿지 않는다. 그래도 친구의 전화 한 통, 엄마의 따뜻한 밥, 분주하게 움직이는 거리의 차들. 그리고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면 젖은 몸을 말리기에 충분한 양의 햇빛과 바람이 아닌가. 


비가 오는데 우산이 없다고 주저앉아 우는 것보다 일단 비를 피하고 그치길 기다리자.





겨우 걷는 것 같지만 돌아보면 거북이걸음도 생각보다 빠르다는 걸 알게 되듯이, 오늘은 느림보 걸음으로라도 걷자.


그러다 기운을 차리고 성큼성큼 걷고, 깡충깡충 뛰는 날도 있을 테니까.


조금 더 작게 일하고, 더 많이 벌자며 시작된 나의 작은 회사는 거북이처럼 조금씩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하지만 9 to 6 출근하는 삶이 아니기에, 매일 아침 자발적인 출근이 필수다. 별 방법을 다 써봤지만, 일하기 싫다는 생각을 털어내기 보다 책상 앞으로 몸을 유인하는 게 먼저였다.


일단 모카 포트로 커피 한 잔을 진하게 내려 노트북 앞에 앉게 한다. 그러고 나면 이제 노트북을 여는 일만 남았다.


오늘도 찌글찌글 잘 살아 봅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_정호승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이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작가의 이전글 아직, 미정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