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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성 Feb 04. 2024

약을 한 번 끊어봤더니

치트키라 부르는 그 '약'

불안해서 계속 묻는 거예요.



"그것만 다시 먹으면 정말 괜찮을까요?"

"그럴까요?"


두 번이나 물었다. 그 약을 끊어서 그런 건지, 다른 약을 추가해야 하는 건 아닌지 궁금했고 그 약만 먹으면 다시 괜찮아질는지 걱정이 됐다.

그런 내게 원장님은 지금 그렇게 자꾸 묻는 것도 불안해서 그런 것이라 했다.




내가 먹고 있는 약은 에스시탈로프람정 한 알과 레피졸정 반 알.

하루 이틀 약을 안 먹어도 괜찮았다. 오히려 각성된 기분이 일을 더 잘하게 했다.

밤마다 챙겨 먹는 게 귀찮기도 했다. 이 정도면 괜찮은 거 아닌가.

그래서 임의로 약을 안 먹어봤다. 그래도 괜찮았다. 일주일까지는.


"먹으나 안 먹으나 똑같은 거 같아서 안 먹어보고 싶어서 며칠 전부터 안 먹었는데

다시 안 좋아지는 것 같아요. 대신 한 알만 먹고 싶어요."


"차차 줄여나가보도록 해요. 한 알만 처방해 드릴 테니 한 달 후에 뵐게요."

.

.

.


그렇게 레피졸을 먹지 않고 여러 날이 지났다.

그런데.

반 알 짜리 약을 뺀 대가는 컸다.

불안감이 폭죽이 터지듯 머리끝까지 치솟아 온몸을 감쌌다.

작은 일에도 걱정이 앞섰으며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게 됐다.

흔히 심계항진이라고 하는 심장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증상도 생겼다.

한 순간도 멀쩡히 있을 수가 없어 17일 분의 약을 남기고 다시 병원엘 갔다.


"세성씨한테 맞는 용량은 기존에 먹던 한 알 반 인 것 같네요.

아빌리파이(레피졸)를 다시 추가하는 게 좋겠어요."


"그것만 다시 먹으면 괜찮을까요?"


"네. 좋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정말요? 그럴까요?"


"네."


확실하게 말하는 원장님의 말을 믿어보기로 하자 또 주룩 눈물을 흘렸다.

원장님은 그런 내게 말했다.


"이렇게 자꾸 물어보는 것도 다 불안해서 그런 거예요.

세성 씨 지금 들어와서 팔 한 번도 안 움직였어요.

이전엔 표정도 있고 움직임도 있었는데 말이에요."


그 말을 듣고 보니 한껏 움츠린 채 몸을 움직이지 않고

불안한 시선과 목소리로 원장님을 보며 말을 이어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시 원래대로 약을 먹고 상태를 지켜봐요.

극단적으로, 나아지지 않으면 내일 와도 되고,

모레 또 와도 돼요."


불안하면 언제든 와도 된다고 안심시키는 원장님의 말에 안정감이 들었다.

그리고 초록색의 반 알 짜리 약은 다시 내 손안에 들어왔다.




변화를 느낀 것은 딱 이틀 후였다.

마음이 훨씬 안정적으로 변했고, 불안감이 사라졌다.

걱정도 줄고 자신감이 생겼다.

정말 신기했다. 한 알도 아닌 이 반 알 짜리 쪼그만 약이 내 기분을 좌지우지한다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어이없고, 황당했다.

자존심이 살짝 상하기도 했다.

다시 합류한 레피졸로 나는 괜찮은 일상생활을 이어갔다.

약을 처방받아야 하는 날도 빠르게 찾아왔다.


그간의 감정과 일들을 들은 원장님은 말씀하셨다.


"사실 정신과 의사에게 레피졸은 '치트키'같은 약이에요."


한 방을 날려주는 치트키 같은 약 레피졸.

우울증 약의 보조제로도 사용하지만 조증과 조현병에도 효과가 있는 약이다.

도파민을 조절하는 효능이 있다.


진료 후 예전처럼 두 알이 담긴 약 28일 분을 처방받아 왔다.

생각해 보니 이전에도 임의로 레피졸을 끊은 적이 있는데 그때도 바로 안 좋은 결과가 따랐었다. 나는 그것을 간과하고 또 안 먹은 것이었다.

이 일로 약을 임의로 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아니, 당분간 그 약은 계속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직 약을 끊는 건 생각하지 말아야겠다.


좋아하는 고양이 사진으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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