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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성 Oct 01. 2024

EP.09 반미샌드위치와 아메리카노

지금이 좋다

다섯 시에 알람을 맞췄다. 어제부터 글쓰기 모임을 시작했는데, 다섯 시부터 여덟 시 반까지 올려준 문장을

필사하고 적어서 오늘 할 일과 함께 사진으로 인증하는 것이다. 공휴일로 지정된 국군의 날이라 출근을 하지 않기 때문에 자칫 시간을 지나칠 것 같아 알람을 맞췄다. 요즘 일찍 일어나는 버릇이 생겨서 아예 다섯 시로 했는데 다섯 시에 맞춰서 올라오진 않았다.




뒹굴다가, 책 읽다가 다시 잠이 들었다.

얼마 되지 않아 몸을 일으켰고 이불 빨래를 돌렸다. 휴일에 빨래 돌릴 때만큼 기분 좋은 것이 없다.

빨래를 돌리고 널고 개는 것이 오피스텔에 살 때는 엄청난 임무처럼 느껴졌는데 베란다가 있으니 즐거운 일이 되었다.


새로 구입한 노트 <2024년의 마무리를 위한 3개월 다이어리>를 본격적으로 쓸 수 있게 되었다.

그곳에 필사 문장을 적고 오늘 할 일을 적었다. 오늘 할 일은 카페 가기, 밴드 인증글 쓰기, 브런치 글쓰기,

책 읽기(사랑과 결함). 어제는 책 읽기밖에 못했지만 오늘은 다 할 수 있다. 쉬는 날이니까!


그러나 막상 카페에 가서 글을 쓰려고 하니 그렇게 귀찮고 하기 싫을 수가 없었다. 나는 의외로 꾸준하지 못한 편이라 뭐든 며칠 연속 하게 되면 하기가 싫어진다. 취미생활도 그렇다.

아마 점심에 먹었던 음식을 저녁에 먹지 않거니와 전날 먹었던 음식을 절대 다음 날 또 먹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일 수도 있다 :)


어쨌든 여차저차 옷을 갈아입고 모자를 눌러쓴 채 노트북과 읽을 책을 담은 백팩을 메고 밖에 나갔다.

갈 때까지도 가기 싫어 죽겠었는데 막상 와서 자리를 잡으니 또 글을 쓸 맛이 났다.

오늘의 메뉴는 반미샌드위치 세트. 이미 생각하고 온 메뉴다. 엔제리너스 시그니처 메뉴다.


이전 집에서는 스타벅스가 가까워서 그리로만 갔는데 이젠 멀어져서 차를 타지 않으면 갈 수가 없다.

걸어서 올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기에 엔제리너스 옆에 예뻐 보이는 카페도 한 번 갔었는데

영 글 쓰는 일을 하기에는 맞지 않아서 결국 여길 왔다.




스타벅스였다면 이 시간에도 북적거렸을 텐데 여기는 다섯 명 이하다. 오히려 좋다.

조용하고 좌석도 편하고 매장이 넓어 답답하지 않다. 무엇보다 직원이 친절하다. 리뷰 그대로다.


반미 샌드위치 중 오리지널 불고기 세트를 시켰는데 샌드위치는 오래 걸린다 해서 아메리카노

먼저 받았더니 정말 오래 걸렸다. 장장 40분쯤 후에야 진동벨이 울렸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직원이 더운 지 이마의 땀을 닦으며 말했다.

너무 오래 걸리길래 혹시 까먹었나 했다가 전자레인지 조리 소리가 들려서 만들고 있나 보다 했다.

만드는 어려운 메뉴인가 보다.


카페 오기도 성공했고 밴드 인증 글쓰기도 했고 이렇게 브런치 글쓰기도 하고 있다.

평화로운 공휴일 오전이다.


나는 요즘 가장 안정적이고 이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듯하다.

최고점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잔잔하고 은은하니 꽤 맘에 든다.

내가 그토록 바랐던 직업으로서의 안정도 어느 정도 느끼고 있고(일의 익숙함, 동료들과의 원만한 관계)

남자친구와도 2년이라는 시간 속에 안정적으로 만나고 있으니 말이다.

이사와 운전이라는 큰 이슈도 지나갔다. 집도 마음에 들고 이제 두 달이 갓 지났지만 운전도 처음보다

많이 익숙해졌다.


완벽주의라서 이것보다 더 완벽한 상황을 바랐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요즘은 이 정도도 좋다.

내가 하고 싶은 글 쓰는 일로 먹고살고 있지도 않고 잡음 없이 연애를 해온 것도 아니지만  그 부족함이 오히려 많은 것을 채워줬다.

더불어 복잡한 것이 지나가고 글쓰기까지 다시 하고 있으니까.




지금은 그냥, 이런 하루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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