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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한얼 Haneol Park Jul 18. 2024

시원한 물 같은 것들

오늘의 생각 #95



장마철,

비가 쏟아진다.


나는 선택권이 없었다.

두 사람의 우연한 만남으로 인해 나는 태어날 수밖에 없었다.

벌거벗은 몸으로 세상에 내던져진 나는 망가진 남자와 미련한 여자의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망가진 남자는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 마른땅에 매일매일 불을 질렀다.

뜨겁게 타버린 땅 위에서 나는 미련한 여자의 보호와 헌신 속에 자라나며 늘 조금씩 경도의 화상을 입었다.

내 눈물로 조금은 물기가 생겼다가도 망가진 남자가 기름을 붓고 불을 지르면 금세 다시 타버리고 메마르고를 반복하면서 미련한 여자의 영혼은 너무도 단단해져 버렸다.

그 안에서 새로운 무언가가 자라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모든 걸 경험하고, 기억하고, 바라보던 나는 이제 뜨거운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이 되었다.


비가 더 많이 많이 내리기를.


시원한 물 같은 것들이 이 모든 건조함과 열병을  치유하기를.


초여름에 태어난 내 몸은 사막 그 자체지만, 마음은 언제나 장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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