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박한얼 Haneol Park
Jul 16. 2024
완전히 혼자일 때
혹은 완전히 함께일 때
나는 평안을 느낀다
고독과 연결만이 내가 가야 할 삶의 길을 보여준다
비 오기 직전의
조금은 오싹한 새벽 3시
어디선가 부는 바람에
잎들끼리 서로 스치는 소리는
소나기가 내리는 것처럼 신비롭다
익숙한 듯 낯선 나의 그림자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 같아도
지나고 보면 참 빠른 것처럼
본질은 변하지 않았겠지만 많은 게 변했다
거대한 용이 내 위에 있는 것처럼
나방이 커다란 그림자를 휘날리며
쉴 새 없이 가로등 불빛에 뛰어든다
불쌍하다
인간들이 만든 인공적인 불빛을
무지하게 밝은 달인 줄 알고
데이고 데이면서도 계속해서 뜨거운 불빛 속으로 뛰어든다
인간들이 띄운 드론의 굉음에 놀라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일단 도망치는 북극곰 가족처럼
우리는 인간들이 만든 기준과 목적과 환상 속에서 진실을 잃은 채 방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불나방
북극곰
나
너
다를 바가 없다
인간과 세상은 개인들의 합 그 이상으로서 보이지 않는 손처럼 신적인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인간이 쓴 이야기를 믿는 인간들의 절대적인 믿음 아래 만들어진 비인간적인 모든 것들
그 안에서 수많은 모순과 가식과 비약과 거짓말들을 보았지만 그 덕분에 현실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고 인생에는 원래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에 내게 더 중요한 우선순위가 뭔지를 찾으면 되는 것뿐이란 걸 알았고 자만만큼 엄청난 무지가 없음을 알았고 겸손만큼 엄청난 지혜가 없음을 알았다
감사밖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모든 걸 이해한다면 누군가를 부러워할 필요도 무언가를 한탄할 필요도 화를 낼 필요도 없을 테니
정말 감사밖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차피 모든 걸 이해할 수 없으니 모든 걸 내려놓는 것이 곧 모든 걸 인정하는 것이다
더 좋은 것도 더 나쁜 것도 없다
이러면 이래서 좋고 저러면 저래서 좋다
그냥 좋은 것뿐이다
따지고 보면 다 마음에 안 드는 것 투성이인 것처럼
따지고 보면 다 좋은 것들 뿐이다
어차피 시간은 흐른다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
선과 악의 기준 없이 모든 게 자연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