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쓰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다은 Jan 18. 2024

변한다는 것

 작년 말 내내 나는 거의 병적이다시피 ‘변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골몰해왔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우연히 빌린 책의 어느 한 구절 때문이었다.

 「저는 그래서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을 쉽게 하는 사람들을 별로 신뢰하지 않습니다. 타인의 변화 가능성을 그렇게 쉽게 일축할 수 있는 사람이 자기 자신인들 더 나은 사람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어갈 수 있을까요?」

이석원 <나를 위한 노래> 26p


 특별한 저항 없이 여태껏 ‘변한다’는 말을 부정적으로만 여기며 살아왔다. ‘너 변했어’라는 문장과 어투는 오래전부터 봐온 미디어나 이야기 속에서 언제나 석연치 않게 등장했으므로. 아주 자연스럽게 ‘변한다는 것’은 ‘나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난 늘 여러 방면에서 변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왔고, 그게 일종의 선善을 향한 길이라 생각하였다.

 그러나 지금 나를 한 번 보자. 과연 티끌만큼도 변하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20대 초반의 최다은, 중반의 최다은, 후반의 최다은은 기본적인 속성은 비슷할지 몰라도 각각을 다른 사람으로 본다고 해도 아주 무방할 것이다.

 뭔가 이상하다. 변하지 않기 위해 그렇게 동분서주하며 노력해왔건만. 어찌 된 일인지 나는 조금씩 변해왔다. 생각해 보면 나는 변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한편으론 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그리고, 변한 나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며 살아왔다.




 변한다는 의미를 ‘사랑’이라는 시각에서 본다면 분명 좋은 느낌보다는 안 좋은 느낌이 먼저 들 것이다. 그러나 변한다는 의미를 ‘진화’나 ‘교화’라는 시각에서 본다면 분명 좋은 의미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을 쉽게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아직도 변한다는 것이 좋은 것인지 안 좋은 것인지 쉽게 판단하기가 어렵다. 모든 것엔 항상 명과 암이 필수불가결하게 뒤따라오므로, 변한다는 것도 그와 마찬가지로 좋은 점도 있고, 안 좋은 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히 시시비비를 가리는 식으로 변한다는 의미를 풀어내고 싶진 않다.

 희망의 뜻을 품으며 내가 변하길 바랐고, 당신이 변하길 바랐으며, 지금이 변하길 바랐다. 변하지 않는 게 정의롭다 믿었던 내가 변해버린 나를 마주하는 것은 기만이라는 생각 때문일까. 내가 변했다는 사실을 쿨하게 인정하기란 도통 쉬운 일이 아니다.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한다는 것을 이렇게 다시 한번 느끼게 되는 바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으며, 더 나아가 영원한 건 없다. 그 처연한 문장을 인정하는 순간, 이제는 진짜 어른이라는 세계에서 빼도 박도 못 한다는 생각에 어쩌면 난 내가 변했다는 사실을 이토록 인정하기 싫은지도 모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보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