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이 몇 번째 이별일까. 사랑한다는 말은 늘 “사랑해”란 한 마디로서 귀결되면서도 헤어지자는 말은 늘 제각각의 형태로 불현듯 나타나곤 했다. 이쯤에 다다르니 이제는 그 말이 누구의 입에서 나오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아졌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맞는 것 같아”, “더 해봤자 서로에게 상처만 될 것 같아”, “여기서 그만하는 게 맞는 것 같아”, “지금은 괜찮아도 나중엔 결국 불행할 것 같아….” 담보되지 않은 미래를 추측성의 문장으로 제멋대로 완성시켜 버리고선 결국 우리가 바라는 건 이별이라는 단정한 마침표뿐.
처음 헤어짐을 입에 올린 건 나였다. 서로에 대한 마음이 느슨해짐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타협과 그를 위한 둘만의 약속들이 나중엔 도리어 이 사랑을 지켜준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누가 맞고 틀렸음이 불분명한 사랑의 세계 속에선 서로의 주장만이 끝도 없는 평행선을 그릴 뿐이었다. 증명과 설득, 그리고 애원. 그것들이 우리가 그린 평행선에서 축 늘어진 빨랫감마냥 매달려 있을 때 나에겐 단지 이 모든 걸 끝내고 싶단 생각뿐이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너와 나는 숱하게 이별과 만남을 반복해왔다. 정오인지 자정인지 모르는 시작을 기점으로 점점 멀어졌다 다시 만나기를 기다리는 가느다란 시곗바늘처럼. 그 끝없는 반복 속에서 채워도 채워도 결코 채워지지 않는 슬픔과 허무를 얼마나 많은 글과 음악과 술로 채웠을까. 결국 슬픔을 잘 다루지 못하는 나는 감히 사랑이라는 이름 앞에 속절없이 무너질 걸 잘 안다. 아니, 어쩌면 내가 슬픔을 다루는 단 한 가지 방법은 사랑일지도. 무슨 일이 있어도 너를 끝까지 사랑하겠다는 각오. 별안간 찾아오는 이별의 슬픔에 이토록 담대해질 수 있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늘 그렇듯 사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