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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은 Aug 06. 2024

늘 그 자리에

 아스팔트가 지글지글 끓는 일요일 오후, 모처럼 오랜만에 자주 가던 베트남 음식점을 찾아가기로 했다. 날이 너무 더워 밖에 나가기가 절로 두려운 날씨였지만, 애인과 요 근래 가자는 말이 꽤 나오기도 했고, 맛있는 반미에 시원한 하이볼을 들이킬 생각에 폭염 따윈 아무렴 어때라는 용기가 솟아난 것이다.

 평소엔 망원역에서 10분 정도 버스를 타고 살살 걸어가던 곳. 그렇지만 오늘은 시간이 촉박하여 역에서 내리자마자 택시를 타고 가야만 했다. 허나 그렇게 서둘러 가게에 발을 들이자 들려오는 소리는 “xx이 그만뒀는데”

 사실 이곳은 애인의 아는 지인이 동업자와 함께 연 가게로 그것을 계기로 자주 찾던 곳이었다. 그러나 이날부로 ‘지인이 하는 가게’라는 타이틀은 사라져 버리게 되었다. 그 때문일까. 자주 주문하던 식사 메뉴와 입맛을 다시던 하이볼이 보이지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베트남 음식에서 제일 중요한 고수가 모든 메뉴에 솔드 아웃으로 찍혀있다. 그의 빈자리는 굳이 찾아내지 않아도 곳곳에서 느껴졌다.

 음식 맛은 전과 다름없이 훌륭하여 배고픔에 남김없이 먹어치웠지만, 100%를 꽉 채우던 만족감이 7~80%로 내려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이와 비슷한 일은 최근에도 또 있었다. 안산에 가면 늘 가던 카페가 한 달 남짓한 리모델링을 거쳐 완전히 다른 곳으로 탈바꿈을 한 것이다. 리모델링을 하는 한 달 동안은 공교롭게도 안산을 찾을 일이 많아 어떤 모습으로 바뀌게 될까 더욱 기대를 하였는데 리모델링을 마친 카페는 실망스럽게도 내가 애정을 쏟던 그 카페가 아니게 되어버렸다. 마치 과한 성형수술로 내가 사랑하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게 된 애인을 마주하는 그런 기분이었다.

 은은한 노란 조명과 차분한 카페트, 깔끔한 나무 테이블과 편안한 쿠션, 맛있는 커피와 디저트들. 나는 그 카페의 이런 점들을 참 애정 했다. 하지만 리모델링을 거친 카페의 모습은 예전 고유의 분위기를 떠올릴 수조차 없게끔 그저 흔하디 흔한 베이커리 카페로 바뀌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단순히 개인의 이윤을 떠나서 무언가 바꾸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사회적 구조라면 그대로 머무르기만을 바라는 건 어쩌면 나의 개인적 욕심일지도 모른다. 바뀌고, 허물어지고, 새로이 탄생하는 일련의 과정들. 그것들이 이젠 더 이상 예전만큼 놀랍지도 않다. 그런 의미에서 비단 어느 공간을 넘어서서 무언가를 처음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선 한 사람의 얼마나 많은 노력과 애정이 들어가는 걸까. 갑작스레 그런 생각이 밀려 들어왔다. 그러곤 곧 새삼 나의 익숙함에 젖은 모든 존재들에 고마움을 느끼게 되었다.

 늘 그 자리에 있길 바라는 건 사람뿐만이 아니라는 걸. 한 번 애정을 쏟으면 구석구석 뿌리를 내리는 나라는 사람에겐 특히나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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