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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은 Sep 22. 2024

엄마품이 아직까지 그리운 나이

 며칠 전 엄마와 비슷한 실루엣의 한 아주머니가 집 앞에 있는 걸 보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을 품으며 한 발짝 한 발짝 가까이 다가섰지만 혹시나라는 불분명한 부사는 역시나라는 분명한 부사로 종결될 뿐이었다. 그로부터 이틀 뒤에 때쯤인가. 땅거미가 완전히 내려앉은 바깥을 더듬더듬 걷는데 또 한 번 엄마와 비슷한 실루엣의 한 아주머니가 집 앞에서 통화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이번엔 진짜인가? 연락도 안 하고 엄마가 진짜 온 건가? 긴가민가 하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껴안고 조금씩 걸음을 옮겼다. 금세라도 엄마라는 반가운 소리가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나는 역시나였다.

 가끔 누군가의 품에 푹 안겨 지친 마음을 느슨히 풀어놓고 싶을 때가 있다. 애인이 있으면 애인에게 안기면 되지 않냐는 물음을 던져올 수도 있겠지만 엄마의 품과 애인의 품은 뭔가 다르다. 사랑의 결 또한 마찬가지다. 태어난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한결같이 쏟아붓는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남녀가 눈이 맞아 속절없이 서로에게 빠져드는 사랑과는 다르다.

 서로를 완전한 존재로서 인정한 채 사랑하기 위해서 거듭 노력해야만 하는 게 남녀의 사랑이라면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사랑은 부단한 노력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사랑이 아니다. 부모는 애초에 자식을 불완전한 존재로서 바라보고 사랑하기 때문이다. 나이가 서른이 됐든 여든이 됐든 부모에게 자식은 평생 자신의 아이일 뿐이다.

 그렇기에 세상사 고단하고 모든 걸 다 놓아 버리고 싶을 때 엄마 품이 유독 생각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눈에 그렁 맺히던 엄마의 실루엣을 와락 안아버리고 싶은 건 아이도 어른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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