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로 May 03. 2021

사회생활 잘하는 법


사회생활을 잘한다는 건 대체 뭘까? 여기서 말하는 ‘사회생활’이란 사람들과 어울리는 사교 활동의 영역을 넘어, 평소의 나였다면 상종하지 않았을 인간들과 하하호호 어울리고, 직장 상사의 비위를 맞추는 일을 자조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다.  

사회생활에 대한 질문은 얼마 전 술자리에서 들은 말에서 시작됐다. 첫 직장에서 함께 근무한 분이 이런 말을 했다. “세린이는 사회생활 편하게 하지. 아니, 아예 안 하지.” 그 말을 들은 뒤론 계속 같은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팔랑팔랑 들뜨려는 마음에 누군가 돌을 떨어뜨린 듯 마음이 축 가라앉았다. “내가 그렇게 사회생활을 안(못) 하나?” 첫 직장에서 있었던 일을 곱씹다 보니 몇몇 장면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대표님이 당일날 갑자기 저녁을 먹자고 했고, 시간이 안 되는 사람은 빠져도 좋다고 했다. 그날 중요한 약속이 있었던 터라 냉큼 빠지겠다고 했다. 회식 땐 술을 안 먹거나 최대한 적게 마셨다. 술이 들어가면 평소보다 들뜨는 편인데, 그게 다 내 허물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 밖에도 딱히 상사에게 잘 보이려는 액션을 취한 적이 없고, 출근은 늘 정각에 했다. 잔업이 없다는 가정 하에, 퇴근도 신속하게 했다.

적다 보니 사회생활을 잘한다고 하기엔 염치가 없긴 하겠구나 싶다. 그래도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은 건 아닌데 조금 억울하다. 두 번째 직장에선 막내로서 항상 손윗사람들의 수저와 물 세팅을 전담하고 있으며, 전골처럼 다 같이 나눠먹는 음식을 먹을 때는 늘 마지막에 국자에 손을 댄다. 일찍 출근하진 않더라도 지각하진 않고, 잔업이 있으면 당연히 마무리할 때까지 야근한다.

나에게 죄라 있다면, 상사가 선호하는 밝고 싹싹한 성격이 아니라는 점, 저녁 식사에 불참해도 좋다는 말을 철썩 같이 믿은 점, 출퇴근 시간을 지나치게 잘 지킨 점이 아니었을까. 다른 직원과 불화 없이 지내면서 맡은 일만 잘하면 사회생활을 잘하는 건 줄 알았는데, 그걸로는 아무래도 부족한가 보다.

 그들은(사회생활을 요구하는 모든 인간들) 대체 어떤 걸 원하는 걸까? '내가 잘 못하고 있는 거면 어쩌지.' 하는 불안과 '사회생활 운운이라니 꼰대가 따로 없군!' 하는 반발심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던 때. 친구가 인스타그램에 '사회생활 잘하는 방법'이란 게시글을 올렸다. 진심과 자조를 짬뽕한 일종의 블랙 코미디였다. 글은 총 2탄으로 구성되어있고 항목은 무려 17개나 된다. 여러 항목 중 몇 개만 아래에 옮겨보겠다.

2. 상사가 윗 상사에게 혼나고 와서 나한테 화풀이하면 숙이고 그냥 다 받기... 죄송하다고 할 것...
3. 상사가 a로 안 하고 왜 b로 처리했냐 물으면 사수한테 b로 배웠어도 죄송하다고 하고 앞으로 시정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반복하기...
8. 팀원들 점심시간에 일하고 있으면 눈치껏 점심시간에도 일하기...
11. 상급자가 부르면 5미터 거리라도 뛰어간다. 포인트는 옆자리 가자마자 두 손 모으고 허리 숙인 다음 "넵 과장님 부르셨어요?" 라며 어제든 준비된 듯한 자세 취하기
17. 부장 이상급에게 전화할 때는 "안녕하세요" 대신 "안녕하십니까~"하고 리듬 타며 "안녕하십니까~부장님~ 사원 ㅇㅇ입니다~" 하고 빠르게 대답하기. (느리게 말하면 상급자가 싫어함)

힘들게 일하는 친구에게 잠시 묵념...   

사회생활이라는 단어는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게 만든다. 어떻게든 잘 살아보고 싶은 선량한 소시민의 마음을 이용하려는 악의 무리가 만들어낸 단어가 아닌가 합리적인 의심이 들 지경이다. 일을 잘해서 인정받고 싶은 마음, 조직에서 뾰루지처럼 거슬리는 존재가 되지 않겠다는 다짐이 내 친구를 새나라의 신입사원으로 만들었다.

나는 절대 그럴 수 없다. 내가 친구가 적어둔 17개 항목을 전부 실천하는 날이 온다면, 그건 유세린이 아니라 윣쉑린이라거나 개조 인간이 되는 날일 것이다... 는 농담이고, 나도 엄격한 회사에 들어간다면 별 수 없이 17 항목을 17 계명처럼 따르고 말 것이다.  

또한 ‘사회생활’에는 기묘한 뉘앙스가 있어서, 사회생활을 잘한다는 건 ‘어느 집단에서도 문제 일으키지 않고 분위기를 잘 맞추며, 자신의 이익을 야무지게 챙긴다.’라는 긍정적인 뉘앙스가 있는 한편, ‘상사에게 굴복하는 자본주의의 개’ 같은 부정적인 뉘앙스가 공존한다. 사회생활은 잘해도 못해도 죄다.

이래도 꽝, 저래도 꽝이라니. 지뢰밭에서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추어야 할 것인가.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물음표로만 이어갈 순 없으니 나름의 답을 내려보았다.  사회생활은 ‘액티브 스킬’인 거다. ‘액티브 스킬'은 게임 용어다. 한 번 배우기만 하면 별도의 조작 없이 항상 발동되는 ‘패시브 스킬’의 반대말로, 사용하기 위해 유저의 조작이 필요하고, 사용할 때마다 자원이 들어가는 스킬을 말한다. 사회생활이 패시브 스킬이라면, 그건 우리 안에 상사에게 복종하고 눈치를 보는 DNA가 자동으로 내재되어있다는 건데... 그런 가정은 상상으로도 사절이다.

사회생활은 액티브 스킬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 먼저, 발동하는데 나의 의지가 필요하다. 부장님이 부를 때, "넵, 부장님! 부르셨습니까?" 하면서 공수 자세를 취하는 건 내 의지다. 자리에서 고개만 빼꼼 들고 “왜 부르니? 나 바쁘거든?"하고 말해도 무방하다.(물론 뒷감당은 스스로 해야 한다.) 우리는 ‘사회생활’이라는 모션의 빈도와 강도를 스스로 조정할 수 있다.

또한 ‘사회생활’도 할 때마다 자원이 들어간다. 게임에서 자원이 미네랄이나 스태미너 게이지였다면, 우리에게 자원은 곧 ‘심적, 정신적 에너지’다. 때때로 상사는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같이 밥을 먹은 것만으로도 에너지를 소진시키곤 한다. 마음에도 없는 칭찬을 건네고, 재미없는 농담에 웃을 때마다 우리의 에너지를 재료로 ‘사회생활’ 스킬이 발동되는 셈이다.

이 모든 걸 육성 게임이라고 상상해보자. 도트 그래픽으로 이루어진, 엉성하게 생겼지만 묘하게 나를 닮은 캐릭터가 컴퓨터 화면에 보인다. 흥겨운 8비트 음악이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오고, 캐릭터는 발랄하게 출근한다. 그는 하루 종일 열심히 일하였으나 무언가 실수를 한다. 배경 음악은 우울한 단조 음악으로 변한다. 캐릭터는 여기저기 사과하고, 실수를 수습하기 위해 노력한다. '사회생활' 스킬을 연타하면서. 그의 스테미너 게이지는 시시각각 닳고 있다.

그걸 보면 귀엽고 측은하면서,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이 용솟음 칠 것 같다. 결국 다들 애쓰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요령의 차이일 뿐, 에너지의 총량이 좀 차이가 날 뿐 ‘못하는 사회생활’이나 ‘사회생활을 안 하는 것’ 같은 건 애초에 없다고. ‘사회생활’은 사회인의 최고 덕목이 아니오, 그렇다고 자본주의의 개라는 표식도 아니다. 잘하기도 못하기도, 웃기도 울기도 하는 우리의 평범한 일상일 뿐이다.

오늘 점심엔 속으로 "사회생활 스킬 발동!"이라 외치고 상사의 수저를 세팅해줘야겠다. 가급적 신속한 퇴근을 꿈꾸며.  

작가의 이전글 도리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