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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로 Jun 04. 2021

"하시는 일은 재미있으신가요?"


'또' 이직했다.


지금 다니는 곳은 세 번째 직장이다. 두 개의 회사를 모두 1년씩 다니고 퇴사했기에, 또 1년만 있다가 이직을 한다면 인사과에서 반기는 인재상과는 안녕-이다. 회사는 ‘프로 봇짐러, 프로이직러’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만큼은 최소 2년을 채워야 한다는 기합과 부담감에 어깨가 바짝 굳는다. 그러게 회사를 왜 자꾸 옮겨 다니냐고? 지난번에도, 이번에도 이직 사유는 동일하다. 바로, 커리어 때문.


두 번째 회사는 여러모로 무난한 곳이었다. 집과 가까운 거리, 좋은 사람들, 업계 대비 나이스한 처우, 매출 압박을 주지 않는 편안한 분위기 등. '괜찮은 회사'의 조건을 두루 갖췄다. 대기업 자회사인 덕에 복지가 빵빵하고, 워라밸이 훌륭하고, 최근엔 주 2회 이상 재택근무를 하기까지 했다.


큰 불만이 생길 여지가 없는 곳이었다. 그러나 내가 성장할 여지도 적은 곳이었다. 일단 맡은 일이 재미가 없었다. 처음 입사한 회사부터 2년간 같은 일은 했는데, 굴러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그 일을 앞으로 2~3년은 더 해야 할 것 같았다.


일을 좀 더 배우고 싶었다. 할 줄 아는 일이 한정된 채로 연차가 쌓여가는 게 두려웠다. 능력 없는 경력직, 물경력이 될까 불안했다. 그 시점에 타 회사에서 오퍼가 들어왔다. 마침 가고 싶은 회사였고, 고객으로서도 큰 애정을 가진 회사였다. '성장'과 '재미'에 대한 나의 니즈에도 잘 부합했다.


그래서 이직하기로 했다. 새로 맡은 직무는 기존 직무보다 전문성 있고, 핸들링할 수 있는 업무 폭이 훨씬 넓었다. 일을 차근차근 배울 수 있는 환경도 주어진다고 했다. 실제로 입사해보니 신규 입사자를 위한 페이퍼 작업이 잘 되어있다. 시니어로서 나를 잘 이끌어줄 사수도 있다. 분명 좋은 기회였다.


좋은 기회인데 심란했다. 이직하는 회사는 야근으로 유명했다. 오래 근속하는 사람이 없고, 호되고 신속하게 일을 가르치는 '사관학교'로 유명했다. 업무 강도가 센 만큼 일은 잘 배울 수 있지만, 그걸 견디는 게 결코 쉽지 않다고 했다. '그 회사에 다니던 사람이 허리디스크로 앉아있지 못할 지경이 되어서 퇴사하였다, 이 업계를 떴다, 1년 만에 담당자가 4번 바뀌었다' 등 온갖 흉흉한 괴담이 떠돌아다녔다.


느긋한 대관람차를 타고 있다가, 관람차가 시시하다며 티익스프레스에 탑승한 격이었다. 이직이 다가올수록 수직낙하를 앞둔 것처럼 자꾸만 두려워졌다. 지금 나의 선택이 '일하는 나'에겐 좋지만, '일상을 잘 살고 싶은 나'에겐 최악의 선택이라 느꼈다. 그 두 가지란 도무지 양립할 수가 없는 일일까? 미래를 위해 현재를 꼭 저당 잡아야 하는 건가?


대체 일이 나한테 뭐길래. 커리어란 게 뭐길래. 무난한 회사에 입사했으면 워라밸을 즐기며 성실하게 다니면 될 걸 굳이 왜 그걸 걷어차고 나온 걸까. 나는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어, 스스로에게 수없이 물어보았다.


답은 좀 뻔했다. 바로, 불안하기 때문이었다. "세상천지에 내가 할 일 하나 없겠어?" 하다가도, 일하고 싶을 때 일하지 못할까 봐, 내가 원하지 않는 방식의 일을 해야 할까 봐 불안했다. 다른 직장인들 역시 일하면서 스펙업을 하고, 이직을 준비하고, 주식을 하고, 사이드잡을 알아본다. 미래의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을 조금이라도 넓히기 위해 다들 노력하는 셈이다.


대학교 졸업하고 취직만 하면 인생의 큰 산을 넘은 거라 생각했으나,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었다. '역시 삶은 호락호락하지 않군...' 하면서 회의적인 생각을 하다가, 어떤 문장을 만났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괴테의 희곡 <파우스트>에서 나온 문장이다.(괴테도 방황 꽤나 한 모양이다.) 괴테가 쓴 문장에 내 상황을 대입해보면, 조금이라도 나은 커리어를 쌓아보겠다며 이 회사, 저 회사로 옮겨 다니는 나의 방황도, 결국은 잘 살아보겠다는 노력인 셈이다.


사실 방황이 곧 불행은 아니다. 기왕 프로 봇짐러가 된 거 등에  보따리를 꽉 쥐고 이곳저곳을 여행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가끔은 멈춰도 좋고, 맨땅에 그대로 드러누워도 괜찮다. 방황하고 있다는 건, 이리저리 걸음을 옮기고 있는 것이고, 그건 곧 내가 노력하고 있다는 증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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