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눈이 멀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봐
승현은 완벽한 남자였다. 큰 키에 잘생긴 얼굴에 까무잡잡한 피부까지 내 외적 이상형에 제대로 부합했다. 또 돈 가지고 치사하게 굴지 않았고 와인을 좋아하는 나에게 비싼 와인도 서슴지 않고 사줬다. 본인 의상을 준비하러 쇼핑을 가면 꼭 내 옷하고 신발도 사 왔다. 꽃도 자주 선물했다. 어디에서 데이트를 할 건지 성실하게 준비했고 데이트는 항상 새로웠고 마음에 쏙 들었다. 그리고 늘 나와 붙어있기를 원했다. 오로지 나만 바라보는 승현으로 인해 나는 충만해졌다. 더 이상은 내 인생에 상처도 외로움도 없을 거 같았다. 그에게 달린 꼬리표는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다. 이런 생각까지 했다. 생전에 날 특별히 예뻐하시던 할아버지, 할머니가 하늘나라에서 괜찮은 남자를 골라 점지해주신 건 아닐까... 참으로 주책이었다. 사랑에 눈이 멀었었다.
(너무 달달한 얘기만 나와서 지루한가? 조금만 기다려보시라. 뭐든 좋은 건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승현은 툭하면 결혼 얘기를 꺼냈다. 결혼식은 어떻게 어디서 하고 싶다는 꿈같은 얘기를 꺼내놓고 내 의견을 물었다. 결혼이라... 이 사람 정말 나와 결혼하고 싶은 걸까? 우리 만난 지 한 달 밖에 안 됐는데? 헷갈렸다.
엄마는 내 연애 사실을 알고 있었다. 엄마는 '그래, 그냥 만나나 봐라' 정확히 이렇게 얘기했다. 설마 결혼까지 이어질 거라곤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도 혹시나 결혼까지 이어진다면...? 스스로에게 질문은 던져 놓았을 것이다. 그때 엄마의 생각이 어땠는지 지금도 난 알 수 없다. 단지, 당시 엄마는 내 연애를 보면서 즐거워했다. 나는 매일 승현이 나에게 얼마나 잘하는지를 문자로 보고했고 같이 행복해했다. 처음이었다. 난 항상 엄마에게 연애하는 걸 숨겼었다. 이유는 피곤할 거 같아서... 그랬던 내가 하루하루 승현과의 일들을 조잘조잘 떠들어댔던 것이다. 숨길 수 없는 행복이었고 만족감이었다.
승현은 부모님 갖다 드리라며 엄마와 아빠 선물도 종종 챙겨줬다. 엄마는 승현이 하는 짓이 참 예쁘다며 밥이나 한 번 사주겠다 했다. 갑자기 부담스러웠지만 나도 부모님에게 남자 친구를 한 번쯤은 소개해주고 싶었다. 승현에게 우리 부모님과 밥을 먹겠냐고 물었다. 그는 흔쾌히 그러겠다 했다.
아빠에겐 엄마가 내 연애 사실을 알렸다. 엄마와 아빠는 같이 살림남 TV 프로그램을 정주행 했다고 한다. 순수한 승현의 가족 모습에 시청자들이 매력을 느꼈듯이 엄마, 아빠도 마찬가지였다. 아빠도 수긍하며 한 번 보자고 했다고 엄마가 전해왔다.
애초에 이 만남은 단순히 딸의 남자 친구를 그냥 한 번 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 집은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다. 6살 많은 오빠도 딱 한 번 데려온 여자 친구가 새언니였다. 엄마와 아빠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일이었다. 둘은 며칠을 고민에 빠졌으리라... '내 딸이 미혼부 연예인을 만난다... 우리를 본다는 건 결혼까지 한다는 걸까... 우리는 감당할 수 있을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을 것이다. 애초에 가벼운 만남으로 예정된 일이 엄마와 아빠에겐 결코 가볍지 않았으리라.
결국 고민 끝에 아빠는 이 만남을 거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