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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파고 Feb 08. 2021

페이스북(등)을 엿 먹이는 방법

페이스북 : 나 이렇게 잘 살고 있다.

트위터 : 나 이렇게 병신이다.

인스타그램 : 나 이렇게 잘 먹고 산다.      


누군가 각 SNS의 성격이 이렇다고 해서 웃었다. 맞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페이스북을 비롯해서 몇 개의 SNS 계정을 가지고 있지만 아주 게으른 사용자다. 트위터는 덕질용으로 가끔 혼자 떠들고 트친들이 업로드한 보물들을 곱게 저장하는 용도다. 인스타그램은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는데 끄적끄적 그린 그림을 올리는 창고용이다. 1일 1 업로드라는 야무진 계획은 점점 쉽지 않아서 이제 2주째 휴업상태다. 핀터레스트는 가 보지도 못하고 있다. 게으름은 온오프 구별 없이 최악의 적이다.      


일단 페이스북은 친구가 아홉 명 밖에 없는데 전혀 모르는 사람도 있다. 그쪽도 거의 활동을 하지 않아 있으나 없으나 지장을 받지 않는다. 업로드도 전혀 하지 않는다. 내가 페이스북 계정을 놔두는 이유는 가끔 공적으로 심하게 헛소리를 늘어놓는 인간들에게 헛소리인 이유를 밝히기 위해서다. 페이스북은 철저하게 친목이 기반이기 때문에 공공에 해로운 헛소리에도 우쭈쭈 하는 친구들 댓글만 줄줄이 이어지고 헛소리를 증폭, 확산시키며 응원에 취해서 헛소리를 계속하는 해악이 따른다. 그조차 용납이 안 되는 사람은 댓글 권한을 제한하면 된다. 하지만 아주 가끔 있는 일이라 나의 페이스북은 데이터를 별로 낭비하지 않는다.      


페이스북은 그런 나에게 매일 메일을 보낸다. 실낱같이 나와 관계있는 누군가의 활동을 알려준다. 하루에도 몇 개가 와 있어서 리스트에서 곧바로 삭제하곤 한다. 그게 페이스북의 친절이 아니라 나를 향한 치밀한 낚시라는 걸 실감하게 됐으니 바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 덕분이다.  MZ세대들에게 굉장히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한다.    

 

간단히 요약하면, 구글의 지메일 개발자였고 디자인 윤리학자였으며 현재는 인간을 위한 테크놀로지센터 공동 창업자인 트리스탄 해리스가 이대로는 안된다고 절규하는 다큐멘터리이다.      

그는 구글이 만든 알림 기능이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바꿨는지 밝힌다. ‘캘리포니아의 20~35세 백인 남성 디자이너 50여 명이 전 세계 20억 명의 일상을 조종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주장이야 새로운 것도 아니지만, 역시 사람들을 조종했던 기술의 개발자답게 스릴러 같은 픽션을 결합시킨 스토리텔링으로 다큐는 엄청난 몰입감을 준다. 다 보고 나면 섬찟한 가슴을 부여안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동시에 내가 그동안 페이스북의 유혹을 유혹으로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살았다는 것에 감사하게 된다. 전적으로 게으름 덕분이다.      


미국의 10대 소녀들의 자살율이 소셜미디어 사용 패턴과 일치한다고  @소셜 딜레마


핀터레스트 전 CEO가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을 못 하게 하려고 하지만 본인조차 잘 안된다고 민망해하는 장면은 정말 유머 포인트다. 픽션의 주인공 벤을 가상공간에 세워놓고 페이스북이 현란하게 그의 일상을 지휘하는 모습은 실감나게 메시지를 전달한다. 압권은 페이스북이 특정한 목적-벤을 다시 페이스북으로 돌아오게 만들려는 자극-을 위해 정치적으로 편향된 정보를 던져주고 유인하는 것이다. 관심이 조금은 있었지만 행동으로 이끌어내기 위해 자극적인 뉴스를 벤에게 투척함으로써....벤은 다시 스마트폰을 집어들고..... 페이스북은 또 승리한다.       

엄마와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기로 약속을 해서 동면에 들어간 벤의 아바타 @소셜 딜레마

지금 세계는 이런 식의 메시지에 몸살을 앓고 있다. 얼마나 끊임없이 잘못된 정보를 보내주고 네트워크 내에서 공유하고 확산시키면 코로나가 정부의 음모고 방역으로 독재를 한다는 말을 완벽하게 믿게 되는가. 트럼프 지지자들이 부정선거라고 국회를 점거하게 만든 집단 광기는 어디서 나올 수 있을 것인가.      


누군가 자신을 조종하고 통제하고 있다고 말해주면 화를 낼 것이다. 소셜 딜레마에서 중요한 지점은 이거라고 본다. 각자 자유롭고 자발적으로 원하는 걸 하고 있다고 믿게 하면서 조종하는 것. 제일 무섭고 위험한 확신범.           


인내하고 있는 벤을 깨우기 위해 작전에 돌입한 페이스북 @소셜 딜레마

페이스북은 왜 이런 수고를 하는 걸까?

간단하게 광고 때문인데, 정확하게 타겟팅된 이 소셜 광고는 엄청난 수익을 가져오고 그걸 가능하게 하는 건 바로 오랫동안 이 안에서 놀면서 자신에 대한 모든 것을 기업에 알려주는 사용자들 자신이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우리 스스로 기업의 광고에 두 팔 벌려 표적이 되어주는 것이다.


인터뷰의 주요 주장을 보자.      


"우리는 뇌라는 하드웨어로 살고 있다. 그 뇌는 수백만 년에 걸쳐 만들어진 거다. 그런데 여기 화면이 있고 그 화면의 반대편에 수천 명의 엔지니어와 슈퍼 컴퓨터들이 당신의 목표와 다른 목표를 갖고 있다. 누가 이길까요?"      


"인공지능은 비유일 뿐이다. 알고리즘은 코드에 내재한 의견이다. 전혀 객관적이지 않고 성공의 정의에 최적화되어 있다. 기업은 성공을 위해 알고리즘을 만든다. 오직 이익을 위해서다."

(Cathy O’neil박사/데이터 과학자/Weapons of Math Destruction 저자)

     

"알고리즘엔 자아가 있다. 기계 스스로 변화를 만들어간다. 인간은 시스템에 통제력을 상실했다."

(Bailey Richardson/Instagram)     


"페이스북에 있다고 생각해보라. 당신은 당신에 대해 모든 것을 아는 인공지능과 맞서고 있는 거다. 당신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는데 당신은 전혀 모르고 있다. 거기엔 그냥 고양이 비디오와 생일 정보가 있을 뿐이다. "

(Roser Mcnamee/Facebook Early Invester /Venture Capitalist)     


"이 시장은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 우리는 이 시장을 불법화해야 한다. 우리는 이전에도 인간 장기시장, 인간 노예시장을 불법화했다. 그 시장에는 피할 수 없는 파괴적인 결과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삼겹살이나 오일처럼 선물(先物/futures contract)로 거래되는 시장이다. 인터넷 기업들은 인간을 선물로 거래하며 수조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다."

(Shoshana Zuboff/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PHD.Emeritus/The Age of Surveillance Capitalism 저자)     


"그들은 확실성 Certainty을 판다. 모든 사업이 꿈꾸던 일이다. 우리는 우리를 채취 가능한 자원으로 취급하는 이 비즈니스를 거부해야 한다."

          

과연 거부할 수 있을까? 노예시장이 사라진 건 사실 얼마 되지 않는다. 노예와 다름없이 사는 사람들이 지금도 있다. 그럼에도 노예제도가 좋지 않다는 것, 그에 동의하는 것조차 불명예이며 기본적으로 반인권적이라는 인식은 누구나 하고 있다. 디지털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은 노예제도와 다르다. 그렇게 흉측하거나 잔인하지 않다. 심지어 감동을 나누고 돈까지 벌게 해 주고 사용자 개인에게도 이익을 나눠준다. 대부분은 그 돈을 보태주는 1개의 자원에 불과하지만 혹시 이익을 공유할 가능성을 기대하며 그 네트워크에 빠져든다.     

 

예를 들면 자신이 삶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감동을 전하는 수많은 콘텐츠들이 있다. 감동은 비즈니스로 능숙하게 연결되며 이익을 확보한다. 유튜브에서 돈 되는 정보를 알려준다고 사람을 불러 모으면 그 자체로 돈이 된다. 소비자와 생산자의 경계가 없어지다 보니 모두가 희망을 품을 수 있다. 유튜브 채널의 주인과 구독자들은 서로가 감사해한다. 그러고 보면 매우 아름다운 사회일지도? 물론 유형의 이익은 채널 주인만 가지지만 말이다.       


새우젓 독 안의 작은 새우젓 한 마리에 불과한 개인이 어떻게 거부할 수 있을까. 다큐에서도 말하듯이 우선은 사용 시간을 줄이는 게 도움이 될 것이다. 스마트폰을 부숴버리고 살 수는 없으니까. 옛날엔 공중전화 부스에 <용건만 간단히>라는 스티커를 붙여놨었다. 뒷사람에게 급하고 중요한 일이 있을지 모르니까 용건만 간단히 하고 전화를 끊는 게 공동체에 필요한 덕목이었다. 이제 인터넷 세상에서도 용건만 간단히 하는 습관을 들일 필요가 있다. 인공지능이 날 찾아내서 내가 원하는 어떤 물건으로 날 유혹하기 전에 재빨리 용건을 끝내고 그 채널을 탈출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스마트폰을 헤엄치고 다니는 건 정말 스릴 넘치는 새로운 재미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개인은 단 한 번도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살아본 적이 없고, 지금도 앞으로도 나 자신의 삶에 마음껏 주인으로 살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도 도움이 될지 모른다. 누가 어떤 목적으로 어떤 명령을 나에게 내리느냐가 달라졌을 뿐 언제나 그래 왔다.


이 사실을 인정하고 탈출의 시간을 늘려보는 게 현명한 대응이라고 생각한다. 이게 디스토피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원래 그랬다니까? 그게 디스토피아라면 디스토피아가 아닌 때가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낙관주의자만이 그걸 인정하고 대응할 수 있다. 최소한 인공지능에 지배를 받는다거나 세상이 멸망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주술에서 깨어나 마주선 벤과 페이스북 엔지니어. 가상의 세계를 나와 현실세계에서 진짜 인간의 시간, 인간의 만남을 갖자는 엔딩 @소셜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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