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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emovieaday Apr 20. 2023

<멋진 세계, 2020>

니시카와 미아 감독


아사히카와에 있는 교도소에서 13년 동안의 수감 생활을 마친 전직 야쿠자 미카미는 평범하게 살겠다는 새로운 각오를 품고 출소한다. 주변 이웃들의 관심과 애정으로 미카미는 사회에 적응하려고 노력하지만 범죄자라는 낙인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빠르게 변하는 세계 앞에서 소중했던 지난날들은 잊혀진 과거일 뿐이다. 미카미는 이 세계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영화는 교도소 창밖 너머 보이는 삭막한 풍경을 비추면서 시작된다. 카메라는 창에서 서서히 멀어져 마지막 진찰을 받는 주인공 미카미를 비춘다. 살인에 대해 반성을 하느냐는 교도관의 질문에 판결이 부당했다고 말하는 모습과 교도관의 마지막 배웅에 웃기고 있다고 코웃음 치는 모습을 통해 그가 새사람으로 변했을 거라고 생각했던 관객의 기대를 초반에 미리 꺾어 버린다. 이후 영화는 츠노다, 변호사, 사회 복지사, 슈퍼마켓 직원 등 새로운 인물들을 그의 주변에 등장시켜 관객들이 미카미라는 인물에 대해 전보다 더 가까운 시선으로 보게 한다. 


"우리는 그냥 적당히 살아요" 

"화나도 그냥 넘겨버려요 안 들린다 생각하고" 

"정말 필요한 것 외에는 버리고 가지 않으면 자신을 지킬 수 없어 모든 일에 관여할 만큼 인간은 강하지 못해 그러니까 도망치는 건 패배가 아니야 용기 있는 후퇴라는 말도 있잖아 도망가야 두 번째 기회를 엿볼 수 있는 거야"


조금이라도 벗어나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미카미는 나서지 않는 법을 배운다. 그렇게 그는 눈앞에서 일어난 동료의 괴롭힘과 험담을 못 본 체하고 넘겨 버린다. 이때 카메라는 미카미의 얼굴을 클로즈업하여 그가 얼마나 안간힘을 쓰며 세계에 속하려고 노력하는지를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시킨다. 힘없는 시민을 괴롭히는 불량배들을 주먹으로 치고 옆구리 살이 떨어질 때까지 물어뜯어도 죄의식보다는 정의감을 느끼며 포효하던, 연달아 떨어지는 운전면허 시험에도 좌절하지 않던 그가 약한 동료를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에 흐느낀다. 당당하게 교도소를 당차게 걸어 나왔던 초반 그의 모습은 이제 온데간데없다. 사회에 점차 소속되는 듯해 기뻐하던 미카미에겐 지금의 세계가 정말 멋진 세계일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정말 멋진 세계인가.

이 세상은 한번 실수하고 레일에서 벗어나면 다시 시작하는 것이 힘든 것이 아닌가 하는 여러 조급함과 공포감에 괴로워하면서 모두가 본심을 짓누르면서 살아가는 그런 세상, 시대가 되어 버렸다고 생각합니다. 
-니시카와 미와 감독 


"언제나 인간 마음의 깊은 곳까지 렌즈를 들이미는 니시카와 미와 감독과 긴 세월 각기 다른 수많은 영혼들을 표현해 온 명배우 야쿠쇼 코지의 만남은 그 자체로 이미 보는 이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갱생과 구원에 이르는 험난한 여정. 서로 충돌하는 개인의 본성과 사회의 속박. 이런 불멸의 주제들 한복판을 향해 뚜벅뚜벅 탐구해 들어가는 감독의 힘찬 발걸음. 그 보폭이 넓고도 거침없다. 더욱 놀라운 것은 주인공을 바라보는 냉정하고도, 동시에 인간적인 시선이다. 감독과 영화는 결코 미카미라는 인물을 정당화 또는 합리화하려 애쓰지 않는다. 그런 냉정함 속에서도, 우리는 동시에 미카미를 향한 강렬한 인간적 연민에 휩싸이게 된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영화적 열매들을 한데 모아, 감독이 기필코 한 걸음 더 나아간다는 점이다. 마침내 주인공 미카미가 사회의 일원으로 적응하는 가슴 따뜻한 후반부를 맞이할 때 감독은 새삼 묻는다. 과연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적응할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인가?라고."                                         - 봉준호 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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