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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emovieaday Apr 18. 2023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1974>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감독


잠시 비를 피하기 위해 어느 바로 들어온 중년 여성의 '에미'는 그곳에서 40대 아랍인 '알리'를 만나게 된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쉼터에 낯선 독일인인 에미는 환영받지 못한다. 이방인인 에미를 놀리기 위해 알리의 친구는 알리에게 그녀와 춤을 추라고 시킨다. 아무렇지 않게 알리는 에미에게 춤을 신청한다. 그리고 둘은 댄스 플로어에서 나란히 춤을 추기 시작한다 마치 이곳에 둘만 있다는 듯이. 알리는 에미를 집에 바래다주고 그녀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게 된다. 그들은 급속도로 사랑에 빠지게 되고 결혼까지 하게 된다. 에미의 직장 친구들과 이웃들은 그녀가 외국인 노동자인 알리와 함께 산다는 걸 알고 그녀를 늙은 창녀라며 경멸한다. 결혼 소식을 전해 들은 가족조차도 그녀를 이해하지 못한다. 처음엔 그들의 경멸에 맞서며 당당하게 행동하던 에미도 점점 견디기 힘들어하고 알리도 에미와 자신의 차이점 때문에 고통스러워한다. 휴가를 떠났다 돌아온 에미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친구들에게 도움을 주도록 알리를 시키고 친구들에게 알리의 젊음을 자랑한다. 알리는 점차 이런 상황에 지쳐 술집 여사장집에 자주 들러 관계를 갖고 집에 잘 들어가지 않게 된다. 에미는 알리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술집으로 가서 '그 집시 노래'를 신청하고 그들은 첫 만남 때처럼 다시 춤을 추며 서로의 사랑을 재확인한다. "우리가 함께할 때, 우리는 서로에게 잘해줘야 해요" 에미의 말이 끝나자마자 알리는 쓰러진다.


영화는 처음부터 외부인과 내부인을 분명하게 분리하여 보여준다. 외부인인 에미가 술집에 들어오는 순간 안에 있던 이들은 모두 대화를 멈추고 의도적으로 그녀를 쳐다본다. 독일인인 에미에겐 비가 내려 우연히 들어오게 된 술집이지만 독일에서 외국인 노동자의 삶을 사는 이들에겐 이곳이 유일한 그들만의 쉼터였을 것이다. 그러니 에미가 들어옴으로써 그들에게 불안이 잠식되지 않았을까. 술집을 벗어나 에미의 동네에 에미가 외국인 노동자(외부인)인 알리를 데려왔을 땐 에미의 이웃들에게 불안이 잠식된다. 에미와 알리는 둘 만 있을 때 행복하다. 에미가 알리와 처음으로 밤을 지새워 아침을 함께 맞이했을 때 그녀는 거울 속 자신의 늙고 추한 모습을 보고 자책한다. 갑자기 찾아온 사랑 때문에 너무 행복해서 불안해하는 에미에게 알리는 말한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해요" 자신들과 다른 인종들을 대놓고 차별하고 혐오적인 발언을 일상적으로 하는 독일인들에게 이 둘의 사랑은 더러운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편견으로 독일인들은 자신과 외국인 노동자를 철저히 분리시킨다. 이런 불편한 세상 속에서 알리는 항상 불안과 긴장으로 살아왔음은 영화 후반에 알리가 쓰러져 병원에 이송된 장면으로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1974년에 거액의 제작비가 투입된 영화 <마샤>와 <에피 브리스트>를 만들던 사이에 15일의 기간 동안 만든 간결한 영화로 보여 준다. 그는 이 영화를 얼마 안 되는 돈으로 찍었다. 미라는 무명에 가까운 조연 연기자였고, 당시 파스빈더의 연인이던 살렘은 단역들만 연기했었다. 줄거리는 더글러스 서크 감독의 1955년 영화 <천국이 허락한 모든 것>에서 영감을 받았다. 이 영화를 만든 건 규모가 큰 영화들 사이에 생긴 짬을 메우기 위해서였을 뿐이라고 파스빈더는 말했다. 그런데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는 아마도 그가 만든 40여 편의 영화 중에서 최고작일 것이다.(..) 영화는 위력적이지만 대단히 단순하다. 영화의 기초는 멜로드라마지만, 파스빈더는 최고의 순간과 밑바닥 순간들을 모두 제거하고는 중간에 존재하는 꽤나 절망적이고 절박한 순간들만 남겨 둔다.'                                                                       
                                                                                         『로저 에버트, 위대한 영화 1』
'파스빈더가 요점을 강조하기 위해 일부러 상투적인 비주얼을 활용할 때가 여러 번 있다. 그는 여러 롱 숏을 번갈아 보여 주는 것으로 에미와 알리는 나머지 사회와 자주 분리시킨다. 처음에 그들은 외따로 떨어져 있고, 그다음에는 그들을 지켜보는 이들이 외따로 떨어져 있다. 그는 폐소 공포증이 생길 정도로 작은 방에 있는 그들을 클로즈 투 숏으로 빼곡히 밀어 넣는다, 그는 카메라 앞에서 모로코인이 보여 주는 자연스러운 뻣뻣한 모습을 활용한다. 영화의 결말 부분에서 바에 들어온 에미는 그녀와 알리가 처음 춤을 춘 곡인 '그 집시 노래'를 요청한다. 노래는 알리의 행동을 지시하는 신호처럼 작용한다. 그는 노래로부터 자극을 받은 로봇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가서 춤을 추자고 요청한다. 그가 더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면 영화에 더 이로웠을까? 그렇지 않다. 캐릭터들의 움직임과 의사 결정은 그들이 사는 세상으로부터 지시를 받은 것이라는 게 파스빈더가 영화 내내 보여 준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로저 에버트, 위대한 영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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