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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emovieaday Apr 24. 2023

<슬픔의 삼각형, 2022>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

"(..) 패션 산업은 우리의 집단적 사고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인간은 그가 속한 집단과 같은 옷을 입기를 원하고 그것이 무리 지어 사는 인간의 사고방식이다. 모델들의 세계에도 관심이 갔다. 그들의 아름다움은 계급사회를 고양시킬 수 있는 티켓과 같은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적어도 남성 모델들은 중산층이나 상류층에서 오지 않는다. 대체로 남성 모델들은 길거리에서 캐스팅되고 그들은 여성 모델들과 같은 사회적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현실의 모델들은 자신만의 포토그래퍼, 브랜드 그리고 마케팅 채널을 갖고 있다. 자본주의 경제는 이렇게 우리를 소외시킨다."

"현금으로서의 아름다움과 계급 상승 가능성으로서의 아름다움을 보기 시작했다. 요트를 타는 사람들의 행동을 더 높은 계급과 경제 구조에서 보고 싶었다.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해 이 주제를 다루지는 않았으나 계급 질서에서 우리가 놓인 위치는 우리의 행동을 변화시킨다."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


개인적으로는 아쉬웠다. 예고편과 영화제목이 다 한 느낌. 영화 초반에 나오는 모델과 패션 산업 관련해서 나온 장면들이 더 인상 깊었다. 저렴한 패션 브랜드인 H&M과 비싼 명품 브랜드인 발렌시아가 표정을 연달아 다르게 보여주는 모델들의 모습, "명품 브랜드의 모델은 위에서 소비자를 내려다보듯 기분 나쁜 얼굴로 사진을 찍고 SPA 브랜드 모델들은 친화적인 미소를 보여주는 식으로 전략을 다르게 가져간다"는 대사가 흥미로웠다. 우리가 얼마나 자본주의 경제에 농락당하며 살고 있는지 짧게나마 느낄 수 있었던 대사였다.


영화는 Part 1: Carl & Yaya, Part 2: The Yacht, Part 3: The Island. 이렇게 3부작으로 나눠서 진행된다.


후반부에 요트 씬. 칼과 야야가 이전에 돈을 두고 싸웠는데 어떻게 이런 럭셔리 크루즈 여행에 왔지 했더니 인플루언서인 야야가 받은 무료협찬 티켓으로 왔다는 설명을 듣고 바로 이해가 됐다. 승객들을 맞이하기 전 대부분의 백인 안내원들이 회의를 하는 동안 무조건 승객들에게 예스(YES)를 말하라고 하면서 돈을 외치는 장면을 카메라가 보여주고 아래로 카메라 위치를 내려 배 아래에선 동남아계열(어쩌면 이 또한 나의 선입견일수도 있지만)인 다른 직원들이 함께 모여 있는 장면을 보여줬을 때 역시나 일하는 직원들 어쩌면 을인 사회에서조차 계급은 나눠져 있다는 생각을 했다. 청소와 장비를 고치는 일 같은 어쩌면 눈에 보이지 않는 일들은 대부분이 외국인 노동자들로 이루어져 있고 그들은 손님의 컴플레인 한마디면 바로 해고를 당하기도 한다(칼의 한마디로 직원이 해고를 당했다)


수류탄을 만드는 일을 한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노부부와 똥(비료)을 파는 사업을 한다며 부인과 애인(?)을 동반하여 여행하고 있는 사업가, 회사를 팔아 돈이 엄청나게 많은 자산가, 뇌졸중이 온 아내와 함께 여행을 온 남편 등 여러 사람들이 탑승한 요트지만 "돛대가 더러우니 닦아주세요" "여기서 수영을 해주세요"등 당연하게 서비스를 요구하는 갑들이다. 영화는 이런 그들을 멀미와 설사로 농락시킨다. 조금씩 기울어지는 요트를 통해 여기 있는 이들에게 위험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관객에게 신호를 준다. 심한 파도가 치고 요트가 기울어지는 동시에 요트 안에 손님들은 한 명씩 음식을 토하기 시작한다. 순식간에 요트는 아수라장이 된다. 서로 뛰어다니며 멀미를 하고 넘어지고 변기에 주저앉아 설사를 한다. 이런 난장판에도 영화는 우리에게 절대 무슨 이유로 이들이 음식을 토하고 설사를 하는지 명확히는 알려주지 않는다.(개인적으로 멀미가 온전히 원인일 거라는 생각은 안 든다. 아니면 멀미를 감당할 수 없으면서 요트 여행을 온 부자들을 비꼬는 거였던 걸까..?) 심지어 선장조차 이들이 왜 이러는지 모른다. 우리도 선장이 왜 방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았는지는 모른다. 요트가 난파되면서 난장판인 상황 속 사람들의 모습은 우리는 얼마나 이들과 다르겠는가 하는 동질감도 들면서 부자들의 토와 변에 젖은 꼴들로 통쾌함도 준다. 선장과 러시아 사업가(디미트리)가 이런 상황 속에서도 마이크를 켜둔 채 서로 책의 문구들을 인용하며 주고받는 동안 요트 밖에서 해적선이 그들을 향해 다가오는 장면은 글(과거의 학자들의 인용구 같은 거창한 말들)이란 위험 속에서 얼마나 위선적이고 실속이 없는가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해적들의 수류탄(요트에 탔던 노부부들의 회사 제품인) 공격으로 결국 8명만 살아남아 무인도에 남게 되었다. 이들은 무인도에서 살아남는 내용의 여러 영화들과 다르게 서로 싸우지 않고 연대한다. (감독이 인터뷰에서 "인간은 이기적이고 미개하게 구는 게 아니라 잘 협력하며 새로운 계층구조를 받아들일 수 있다.'라고 언급했다) 연대하는 이들에게도 역시나 계급은 존재했다. 안내원인 폴라는 난파된 상황 속에서도 승객들이 우선이라는 서비스의식을 버리지 않은 채 그들을 보좌한다. 폴라는 나중에 발견된 화장실 청소를 담당했던(그리고 외국인 노동자인) 애비게일에게 당연하다는 듯이 구호식품들을 승객들에게 나눠주라고 명령한다. 물속에서 고기를 잡을 수 있고 불도 지필 수 있고 요리도 할 수 있는 애비게일은 이들에게 말한다. "여기선 내가 캡틴이야. 자 내가 누구라고?"

점차 서로 할 일들을 나눠 협력하며 버티지만 권력의 맛에 취한 애비게일은 주도권을 갖고 이들을 통제하기 시작한다. 칼은 식량을 얻기 위해 애비게일에게 순응하며 성적인 관계까지 갖는다. 재난 속에서 얼마나 쉽게 계급이 전도될 수 있는지 보여줬던 후반부 장면들이 흥미로웠다.


 바로 눈앞에 이곳에서 나갈 수 있는 탈출구가 있음에도 애비게일은 소변을 보고 나서 가자며 시간을 끈다. 후에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야야의 뒤통수를 노려보며 큰 돌을 들고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장면은 고통스러운 장면이었다. 탈출에 성공한다면 그녀가 대장이 될 수 있는 사회는 없을 테니까. 이후의 삶이 지금 저지르는 살인보다 결코 낫지 않을 테니까. 나름 난파된 상황 속에서도 침착하고 순종적인 편이었던(외적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호감을 주는) 야야에게 대부분의 우리는 마지막 대사를 내뱉기 전까진 큰 동정심을 가졌을 것이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제발 애비게일이 그녀를 돌로 내리치지 않기를 바랬을 것이다 마지막 대사를 뱉기 전까진. "나가서 내 비서로 일하면 되겠다".


P.S 슬픔의 삼각형이 헤어질 결심을 제치고 칸 영화제에서 수상했다는 건 심히 의문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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