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농터뷰 [3월호] 인물 편
제가 농사를 짓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의 반응이 서로 다르셨어요. 아버지께서는 '농사도 잘만하면 돈 된다', 어머니께서는 '더운데 왜 땡볕에서 농사지으려고 하냐?'라고 얘기하셨거든요. 농사라는 게 힘들 수도 있어요. 하지만 농고, 농대를 거치면서 저 나름대로 농업에 대한 가능성을 봤잖아요. 그래서 농사도 짓겠다고 한 거고요.
부모님께 농사에 대한 가능성과 앞으로의 제 계획에 대해 말씀드렸어요. 그때부터는 저를 이해해주시더라고요. 특히, 아버지께서 중장비 사업을 오랫동안 하셨던 분이라 그런지 몰라도 제가 농사에 도전하는 것에 열려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농사? 그래, 한번 해봐라, 땅? 필요하면 사, 네가 사서 네가 갚으면 되지'.
이번에 블랙커런트를 심을 땅도 제가 직접 대출받아서 구입한 거예요. 비록 제가 가진 것은 없지만 부모님께 손을 벌리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물론, 아버지께서도 제가 직접 구입하길 원하셨던 것 같고요. 마치 '얘가 어디까지 잘할 수 있나' 이렇게 지켜봐 주시는 것 같아서 감사함을 느꼈어요. 저를 믿고 맡겨주시는 거잖아요.
강원도 인제에는 제가 아는 청년 농부는 4명 정도 있어요. 하지만 모르긴 해도 아마 더 많이 있을 거예요. 그분들이 밖으로 나와서 활동을 안 하시니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없는 거뿐이죠. 주로 제가 아는 청년 농부들은 교육 기술센터나, 4-H 연합회에서 만난 분들이에요. 그중 더러 제 고등학교 동창들도 있고요.
'4-H연합회'는 농업과 농촌을 이끌어갈 농업인을 키우는 곳인데요. 농촌 지역에서 봉사활동을 하기도 하고, 농업기술을 배우고 공유하기도 해요. 동녘이 형도 4-H연합회 활동을 하면서 만나게 되었고요.
불과 얼마 전일인걸요(웃음). 일단 농사를 짓는데 돈이 많이 들었어요. 씨앗부터 시작해서 상토, 트레이, 퇴비 구입하고 로터리 치고 비닐 씌우고 할머니 인건비 드리고..(중략) 그러고 나니깐 '농사는 진짜 사업이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농사라는 것이 제가 투자한 만큼 배수의 수익이 나야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농사는 일반 사업과는 다르게 '자연재해'라는 변수가 있더라고요. 작년 봄에 가뭄 피해가 되게 심했어요. 비가 올 때가 됐는데 안 오니깐 정말 하늘만 하염없이 바라보게 되더라고요. 하는 수 없이 물탱크에 있는 물을 퍼서 밭에다 줬는데요. 대부분 말라죽어서 다시 밭에다 심어야 했어요. 그때 정말 농부로서 자연재해의 심각성을 피부로 느꼈던 것 같아요.
그래도 농사가 재밌었어요. 농사일에 대한 일머리가 있으니깐 일을 빨리 끝내고 그늘에 누워서 낮잠도 자곤 했어요. 친구들이 일을 도와주러 자주 오는데요. (사실, 지금도 저희 집에서 자고 있어요). 걔네들이 도와주면 하루 종일 해야 될 일이 반나절만에 끝나요. 그러면 같이 고기도 구워 먹고 술 도 한 잔씩 하는데, 농사일이 몸은 좀 고되지만 제가 추구하는 삶과 일치해서 좋았던 것 같아요. 비록 돈은 거의 못 벌었어도 삶에서 나오는 여유가 좋았다고 할까요?
저는 서울이나 대 도시에 가면 몸에 힘이 쭉 빠지더라고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보니깐 복잡하기도 하고 이리저리 치이다 보니 금방 피곤함을 느끼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조금 조용하면서 저만의 시간이 많은 여유로운 삶을 살고 싶어요. 아직은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농사로 수익을 올리게 되면 산 골짜기에 집을 짓고 살고 싶어요. 제가 워낙 푸른 것을 좋아하거든요. 또 주변의 지인들을 위해 분위기 있는 작은 바(Bar)를 만들 예정이에요. 나중에 결혼을 하게 된다면 아내 될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요.
농산물 하나를 재배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의 일손이 필요한데요. 농산물을 수확해서 소비자에게 전달했을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어요. 비록 저는 작년 한 해 밖에 못 느껴봤지만요.
초당옥수수를 팔 때의 일인데요. 소비자 분들이 제가 판매한 초당옥수수를 드시고선 "여태까지 먹었던 옥수수 중에 제일 맛있어요"라고 해주시는 이 한마디가 저를 웃게 하더라고요. 그동안 정말 고생해서 농산물을 키운 보람을 많이 느꼈어요. 힘든 시간들이 다 잊힐 정도로요. 또 구매하신 농산물을 재구매해주실 때 엄청 뿌듯하더라고요. 제 농산물을 믿고 드시는 거잖아요. 거기서 오는 작은 감동이 있었어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실지는 모르겠지만 농사로 돈을 많이 벌어서 농업의 가능성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이번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투자가 '짐 로저스'가 한국에 와서 이런 말을 했잖아요. "농부들이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면 젊은 사람들이 너도 나도 농부가 되려 할 것이다". 저도 그 말에 동의하거든요. 도시 사람들이 보기에 농부들은 돈이 없고, 매일 땡볕에서 힘들게 일만 한다고 생각하시잖아요. 이런 농업의 모습만 계속 비치다 보니 젊은 사람들이 농사를 안 짓으려고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닐까요.
농업의 이미지를 바꿔보고 싶어요. 제가 그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요.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건 농업이 무궁무진하게 발전 가능성이 높은 산업이라는 거예요. 농언과 연계할 수 있는 산업들이 많잖아요. 저는 계속 농사를 지을 예정이지만 타산업과 연계할 수 있는 방법도 연구해보려고 해요. 그러면 언젠가는 젊은 사람들도 농촌에 많이 유입될 거라고 믿고 있어요.
유튜브 채널 '버라이어티 파머' : https://www.youtube.com/channel/UCarkGKtZBgtM36DOkAL5zAA
위 사진 출처 : https://youtu.be/tdqn_KdhzYo
오창언 농부의 인터뷰를 마치며
시간이 참 빠르다. 월간농터뷰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3월호 연재를 마치려 하고 있다. 요 며칠 지인들로부터 월간농터뷰를 응원한다는 메시지를 많이 받았다. 그로 인해 약간의 무게감이 더해졌지만 더 사명감 있게, '나답게' 월간농터뷰를 연재하려고 한다.
오창언 농부의 농사 이야기엔 소박함이 있다. '소박함'이란 꾸밈이나 거짓이 없고 수수하단 뜻인데, 그의 얘기가 그랬다. 농사를 짓게 된 별다른 이유가 없다. 단지 어릴 때부터 부모님 밭을 따라다녔고 농사가 좋아졌다. 그래서 농고에 진학했고 배움이 부족하다 느껴 농대를 가게 되었다. 그래, 그거면 된 거다. 농사를 짓는데 굳이 거창한 이유가 필요할까. 오창언 농부의 초심이 충분히 전해져 온다.
다만 그의 목표는 좀 더 높은 곳을 향해 있다. 농사로 성공을 꿈꾼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농촌으로 유입되길 바라 서다. 비록 지금은 그 과정 속에 놓여있지만 시작이 반이라는 말처럼 일단 시작을 했으니 곧 끝매듭을 짓는 날이 찾아올 것이다. 나 역시 같은 곳(젊은 사람들이 농촌에 유입되기를 바람)을 바라보는 한 사람으로서 그런 날이 좀 더 앞당겨지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날씨가 더워지려 한다. 부디 농부들이 흘리는 지금 이 '구슬땀'이 더욱 값진 '옥구슬'이 되어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이다. 마지막 끝맺음을 어떻게 할까하다 오창언 농부가 했던 얘기 중 귓가에 맴도는 구절이 있어 그 이야기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단지 젊은 농사꾼인 저를 통해 농촌의 밝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고 싶었어요'.
'사람들이 밥 한 숟가락 뜰 때 농산물의 고마움을 알아주시면 더 좋고요'.
고맙습니다. 오늘 한 끼도 농부님들 덕분에 잘 먹었습니다.
이로써 월간농터뷰 3월호를 마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