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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석 Feb 26. 2019

브랜드파머

월간농터뷰 [11월호] 인물 편


월간농터뷰 [11월호] 브랜드파머, 원승현

©원승현


Q. 간단히 자기소개 좀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농사짓는 브랜드파머 원승현입니다. 귀농 전까지는 서울에서 브랜드 디자인 일을 했었고, 지금은 고향인 영월에 내려와서 5년째 열심히 농사일을 배우고 있어요. 틈틈이 도시와 지역 간의 소통을 위해 다양한 도농행사를 기획해서 실행하기도 해요. 유기농장을 40년 가까이 잘 가꿔오신 부모님 곁에서 유기농의 대를 잇고 가족들과 함께 가족농장 브랜드를 만드는 것. 이것이 지금 제가 하는 일이에요.  


©원승현


Q. 조금 전에 본인을 브랜드파머라고 언급하셨는 데요. 브랜드파머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알려주세요.


브랜드파머는 농사를 짓고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이란 의미로 제가 만든 새로운 직업이에요. 주로 농사를 짓는 낮과 농번기에는 농사일에 집중하고, 농사일이 없는 밤과 농한기에는 농업을 좀 더 가치 있게 만들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해요. 사실, 농사 하나만 짓기에도 농부의 삶은 충분히 고단하거든요. 그런데도 브랜드파머를 자처하게 된 이유는 시대적인 상황에서 브랜드가치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 해서에요. 또 고객과의 새로운 관계성을 확립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이런 차별화를 통해 자본력이 흡수할 수 없는 방어막을 구축하려는 목적도 있어요. 


©원승현


Q. 어떤 계기로 귀농을 하게 되셨고 귀농 이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어릴 적에는 유기농사를 짓는 부모님 밑에서 자라면서도 농업의 소중함을 느끼지 못했어요. 1980년대에 유기농사를 지었다는 건 참 바보 같은 짓으로 여겨지던 시절이었어요. 제가 생각하기에 부모님이 유기농사를 짓는 건 사회적으로 중요한 일이었지만, 사회적인 인식은 그렇지 않았어요. 오히려 부모님은 주변 분들에게 늘 무시당하기 일쑤였고 그런 부모님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안타까움을 많이 느꼈어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저 스스로 농업을 외면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원승현


제가 20대 중반이 되었을 무렵에서야 부모님의 유기농사가 주변 분들로부터 조금씩 인정받기 시작했어요. 부모님의 소식을 듣고서 저도 무척이나 기뻤어요. 정말 오랜 시간이 지나고서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된 거잖아요. 당시, 저는 서울에서 브랜드 디자이너로서 열심히 일하고 있었지만, 마음 한쪽에는 부모님이 하시는 일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어요. '더는 남의 브랜드가 아닌 부모님의 브랜드를 가치 있게 만드는 사람이 되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어요. 2015년 초 8년간의 직장생활을 끝내고서 고향인 영월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어요.


©원승현


Q. 농업에 디자인을 입혀야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되셨나요?


저는 디자이너의 본질이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디자이너들은 학교에서는 물론이고 현업에서도 사람들의 감성을 이해하고 섬세하게 관찰하는 디자인적 사고를 하도록 훈련받거든요. 단순히 수치와 통계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의 니즈와 행동양식을 보다 세심하게 읽는 거에요. 비효율적이고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던 프로세스를 디자인적 사고를 통해 더욱 쓸모 있게 재구성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 그것이 디자인의 본질인 거에요. 


©원승현


농업 역시 디자인의 관점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필요해 보였어요. 농사를 짓는 농부, 농부들이 일하는 공간인 농막, 농사짓는 사람들의 문화, 농사짓는 프로세스 등 농업과 관련된 모든 부분에서 허점이 많이 보였거든요. 농업을 지속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그 어느때 보다 디자이너의 역할이 절실히 필요해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원승현


Q. 원승현 농부님이 생각하시는 유기농업이란?    


유기농의 정의는 나라별로 여러 가지예요. 우리나라에서 정의한 내용을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전 땅속 생태계를 이해하고 자연과 인간 그리고 사회에서 지속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가는 농업이 진정한 유기농업이라고 생각해요. 그 관계성이 회복된 곳에서 자란 유기농산물이어야만 맛과 향 식감 등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믿고요. 


©원승현


우리나라 유기농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땅과 땅속 미생물, 작물의 관계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유기농인증을 위한 유기농업을 하는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유기농을 지속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땅속 생태계가 무너진 상태에서 농약과 화학비료만 주지 않는다고 해서 매력적인 농산물이 생산될 리가 없고요. 


©원승현


유기농업은 수익이 보장되는 동시에 소비자에게 유익하고 사회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연 농이 가고자 하는 방향의 일정 부분을 취하되 상업 농으로서 취해야 할 효율성도 확실하게 잡아야 하고요. 현재 저희 농장의 미생물 퇴비 농업이 이 두 가지를 충족한다고 할 수 있어요. 미생물을 활용해서 퇴비를 주는 것이 자연을 해치지 않는 방식이면서 동시에 농장의 생산성을 높이는 데 매우 효과적이거든요. 


©원승현


Q. 호주, 일본, 네덜란드 등 해외농업에서 많은 영감을 받으신 거로 알고 있어요. 농업에 관심 있는 분들이 방문하면 좋을 만한 장소를 추천해주신다면? 


[호주 조나이 유기 양돈농장]

호주 멜버른에서 2시간 정도 떨어진 곳인 데일스포드에 있는 '조나이' 유기 양돈농장을 추천하고 싶어요. 그 이유는 조나이 농장의 운영방식에서 배울 점 있기 때문인데요. 우선,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를 동등하게 생각하는 CSA 시스템이 아주 흥미로웠어요. 또 판매와 생산량을 늘리는 데 주안점을 두기보다는 소비자에게 좋은 생산물을 지속해서 공급할 수 있는 구조를 유지하려는 노력이 생산자로서도 매우 훌륭하다고 생각했고요. 

   

©원승현


Q. 호주 양돈농장에서 CSA란 단어를 언급해주셨는 데요. CSA는 어떤 시스템인가요?


CSA는 영어로는 Community-Supported Agriclture로 표기하며 기존의 생산자나 소매자 중심의 농산물 유통이 아닌 소비자가 함께 참여하는 쌍방향 유통을 일컫는 말이에요. 호주에 가기 전에는 CSA의 개념을 소비자들이 소비를 통해 판로 개척이 어려운 농장을 지원해주는 시스템 정도로만 이해했어요. 하지만 호주 양돈농장에서 느낀 CSA는 소비자가 단순히 농장을 돕는다는 개념을 넘어서 생산자와 소비자가 대등한 관계를 이루고 있었어요. 소비자와 농부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관계를 지속해서 만들어 나가는 것. 이것이 정확한 의미의 CSA라고 생각해요.  


©원승현


+ 한국형 CSA도 가능할까요?    


한국의 지속 가능한 농업을 위해 CSA 시스템의 도입은 필수라고 생각해요. 지속 가능한 농업은 꼭 우리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다음 세대에도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사안이잖아요. 아직 국내에서는 소비자들이 생산자를 돕는 것이 CSA라고 인식하는 단계인 것 같아요. CSA의 핵심은 어느 한 집단의 일방적인 도움이 아니라 상생할 수 있는 구조일 때 의미가 있거든요. 곧 머지않아 한국에서도 CSA를 도입한 농가가 많이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해요. 


©원승현

다음 편에서는 [11월호] "토마토밭에서 꿈을 짓다."편이 연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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