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농터뷰 [2월호] 인물 편
안녕하세요 저는 23살부터 농사를 짓게 된 최동녘이라고 합니다. 고등학교 때는 기계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래서 자격증도 몇 개 땄었고요. 대학교 진학으로 여러 가지 진로를 고민하다가, 농대 쪽에도 관심을 두게 되었어요.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농사를 짓는 걸 쭉 지켜보고 자랐거든요.
제가 진짜 농사를 지어야겠다고 생각한 건, 한농대에 입학 후 뉴질랜드로 해외연수를 갔을 때예요. 뉴질랜드는 농산물을 판매한 금액의 몇 프로를 떼서 여러 가지로 농부들을 지원해주더라고요. 일명 '자조금'이라는 제도인데 품종 개량, 종묘 개발, 판매, 홍보 등 농부들에게 유익이 되는 것들은 모두 '자조금'을 통해 해결되었어요. 뉴질랜드 정부가 마치 '농부들은 농사짓는 것에만 집중하면 된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어요. 실제로 농부들은 농사에만 집중하고, 이 제도를 통해 나머지 부수적인 것들은 모두 지원받을 수 있으니까요. 이 '자조금' 제도가 저에게는 굉장히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게 유기적인 관계에서 농업이 발전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때 한국에도 이런 농업 시스템을 도입해서 농사를 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해외연수를 끝내고 돌아오니, 때마침 아버지께서 빈 땅에 사과나무를 많이 심어 놓으셨더라고요. 그런데 관리할 사람이 없어서 제가 맡게 되었고, 그 이후로 쭉 사과농사를 짓게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아버지 농사일을 돕고 자랐어요. 기본적으로 삽자루를 쥐게 해주시고, 농사에 대해 알려주신 제 스승님은 아버지시죠. 그런데 본격적으로 농사일을 배우게 된 건 제가 사과 농사를 시작하고서에요.
사과 농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모르는 부분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더라고요. 특히나 기본적인 농사일에도 모르는 것들이 많았어요. 처음에는 아버지께 도움을 구할까 했지만 본인이 하고 계신 농사일이 바쁘시기도 하고, 사과 농사에 대해서는 잘 모르시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제가 생각한 것이 각 분야의 전문가를 찾아다니는 거였죠.
20대에는 비록 농사로 돈을 벌지 못하더라도 경험을 쌓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제가 관심 있는 분야의 최고 전문가 분들을 만나 뵙고 배워야겠다는 일념 하에 무작정 찾아다니기 시작했어요.
가장 먼저 '토양에 대해서 누가 제일 잘 알고 있을까?'를 고민했어요. 농사의 기본이 바로 토양에서 출발하거든요. 책을 통해 유기물 함량이 가장 많은 토양이 좋은 토양이란 것을 알게 되었어요. 수소문 끝에 그 분야의 최고 전문가를 만나게 되었고 그때부터 긴 배움의 여정이 시작되었어요.
그 이후에는 '전지'(가지치기 작업)를 제일 잘 아시는 분을 찾아 전국을 방방곡곡 돌아다녔어요. 그 과정에서 '한국 사과 협회'를 통해 뜻밖에 한국이 아닌 일본에 전지 분야의 고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곧바로 일본으로 가서 전지 분야의 고수, '나리타'농부님을 뵙게 되었죠.
이 과정에서 농사에 대한 전문가들이 형성하고 있는 커뮤니티에 들어가게 되고, 그분들이 듣는 강의를 열심히 쫓아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분도 쌓였어요. 먼저 그분들과 관계를 맺고 나서 인지는 몰라도, 그분들이 저에게 노하우를 전수해주실 때 거리낌 없었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유기농사를 짓다 보니 해충, 병, 영양분에서도 모르는 부분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이 3가지에 관한 것들 역시 전문가들에게 배움을 얻었고, 그 덕분에 5년 동안 별 탈 없이 유기농으로 사과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물론 그 과정에서 어려움이 없었던 건 아니고요.
저는 지금도 배움이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그분들에게 배운 것들을 실제로 농사일에 접목하면서, 제 것으로 흡수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어요.
작년 5월에 갑작스럽게 우박이 내렸어요. 그래서 대부분의 사과들이 움푹 파였고, 상품성이 많이 떨어지게 되었죠. 그때 정말 마음고생이 심했어요. 눈물도 많이 흘렸고, 기도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사과가 우박을 맞았다고 해서 영양에도 손실을 입는 것은 아니에요. 저는 좌절을 딛고 농사일을 계속해나갔어요. 무엇보다도 제가 키우는 사과의 품질만큼은 자신이 있었거든요. 대학을 졸업하고서 생산성과 품질을 올리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들이 대략 3년 정도예요. 그 시간 덕분에 비록 우박을 맞았지만 사과는 그전과 동일한 맛을 낼 수 있었죠. 그래서 그해 수확한 사과들을 '별똥별 사과'라고 이름 지었어요. 우박을 맞은 스크래치로 인해 사과에 별똥별이 내린 것 같았거든요.
그 시기에 TV 프로그램에 많이 출연하기도 했고, 농사 펀드를 통해 펀딩을 받기도 했어요. 결과적으로는 우박 맞은 사과들은 모두 판매했어요. 완판을 한 거죠. 참 감사한 일은 정말 많은 분들이 응원의 댓글을 달아주셨어요. 그 덕분에 더욱 힘을 내서 농사일에 전념할 수 있었죠.
제 성격과 농사가 잘 맞는 것 같아요. 농사를 지을 때는 농부가 한 해의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잖아요. 저는 제가 직접 이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아요. 물론 처음에는 그만큼 스트레스도 컸어요. 모든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제가 스스로 져야 되니까요. 그 압박감이 장난이 아니더라고요. 그런데 점점 결과가 좋아지니까 이제껏 스트레스였던 부분들이 서서히 만족감으로 바뀌기 시작했어요. 거기에서 오는 기쁨이 농사일을 더 열심히 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어요.
그리고 농사만큼 정직한 일이 없다고 생각해요. 여름에는 정말 무더위와 싸우며 고군분투 하지만 그 시기가 끝나고 나면 그만큼의 보상을 받게 되거든요. 그리고 반드시 쉬는 기간이 찾아오죠. 매년마다 반복되는 이 단순하지만 정직한 과정이 저는 매력적으로 느껴져요.
제가 유기농사를 지어보니 흙이 살아있어야 나무가 살고, 나무가 살아있어야 흙이 살더라고요. 이것을 저의 관점에서 해석하자면 유기농은 '유기적이 관계'라는 결론이 내려져요.
사람도 고난을 겪을수록 성장하잖아요. 그것과 같은 맥락으로 자연에 있는 사과나무도 유기적으로 얽혀있는 관계에서 때로는 상처를 입지만, 그로 인해 더 건강해지기도 해요. 흔히 나무 밑에 잡초가 자라지 말라고 제초제를 써서 없애잖아요. 그런데 사실은 그 잡초 때문에 벌레가 나무로 안 올라가기도 해요. 이것이 바로 '유기적인 관계'죠.
제가 올해로 28살인데, 지금 저 사과나무들이 제 20대의 산물이나 다름없어요. 그동안 저와 함께 무수히 많은 고난과 역경을 겪었죠. 하지만 그 성장통으로 인해 '마움'이라는 저만의 브랜드이자 철학이 탄생하게 되었어요.
마움은 '마음에 움트다'의 줄임말이에요. 자연이 있어야 사람이 살 수 있고, 사람은 자연을 보존해야 된다는 가치를 담고 있어요. 앞에서 언급한 '유기적인 관계'와도 일맥상통한 내용이죠. 또한, 제가 키운 사과를 구매한 소비자분들이 다른 이웃에게 그것을 나누면서 서로의 마음에도 사랑이 움트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고 있어요.
보통 사과는 4kg 단위로 판매를 하는데요. 실제로는 5kg를 담아드리고 있어요. 그리고 작은 박스도 같이 넣어드리고 있죠. 이렇게 판매를 하는 이유는 사과를 구매하시는 소비자분들이 이웃에게 1kg의 사과를 나누었으면 해서에요. 제가 자연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은 것처럼, 제 사과를 구매해주시는 소비자 분들도 주변의 이웃들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으셨으면 하는 바람에서죠.
다음화에서는 [2월호] 사과 농사 편이 연재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