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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석 Mar 30. 2018

최동녘 농부의 유기농 사과 재배 이야기

월간농터뷰 [2월호] 작물 편




월간농터뷰 [2월호] 청년 농부 최동녘의 사과 농사 이야기



미소가 아름다운 최동녘 농부





Q1. 해안면에 대한 소개 좀 부탁드려요


  해안면은 '펀치볼' 이라고도 불리는데요. 산자락에 둘러싸인 분지형태의 마을이에요. 산꼭대기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화채 그릇과 같다고 해서 펀치볼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어요. 행정구역상 남한 최북단에 위치한 면소재 기도 하고요. 보통 'DMZ'(비무장지대) 펀치볼이라고 많이 불리고 있어요.


  금강산 1만 2천 봉의 마지막 봉우리 '가칠봉'의 기운과 높은 산이 만들어내는 차가운 공기가 산줄기를 타고 저희 사과 밭 까지 내려와요. 그리고 밤낮의 높은 일교차 덕분에 병해충의 번식을 줄여 유기농 사과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지요. 사과 농사를 짓기에는 정말 안성맞춤인 곳이에요.


남한 최북단에 위치한 해안면 펀치볼 마을의 아름다운 전경





Q2. 사과는 어떻게 키우나요?


   사과는 수형(나무의 형태)의 종류가 다양한데요. 제가 키우는 사과나무는 3년 뒤부터 수확을 할 수 있는 수형이에요. 대략적으로 경제수명이 끝나는 기간은 20년 정도인데 본인이 얼마나 관리하느냐에 따라 수명은 더 짧을 수도, 길어질 수도 있어요.


  보통 4월에 사과나무에서 꽃이 피기 시작해요. 그러면 5개의 꽃봉오리가 맺히는데 한봉오리만 놔두고 다 제거해줘야 해요. 그 작업을 '적뢰'라고 부르죠. 그리고 꽃이 피면 붓으로 수분 가루를 묻히는데 '꽃을 수정' 시키는 작업이에요. 벌이 해야 되는 일을 왜 사람이 하냐고 물어보실 수도 있는데요. 벌은 꽃에 있는 꿀만 대강 빨아먹거든요. 그래서 5개의 씨를 모두 수정시키지는 못해요.


멍멍이와 함께 사과밭에서 일하는 최동녘 농부


  대부분 사과가 둥글다고 알고 있지만 자세히 보시면 오각형으로 각이 져 있어요. 그 이유가 사과에는 5개의 암술이 있고 그 씨방의 모양대로 커지기 때문인데요. 어느 한 부분이라도 수정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기형과'라고 해서 찌러러진 모양으로 사과가 자라게 돼요. 그런 사과들은 맛도 없고 영양가도 없기 때문에 조금 수고스럽더라도 제가 벌을 대신해서 꽃을 수정시키는 거죠.


  꽃이 만개하면 꽃을 따주는 작업을 하는데 이를 '적화'라고 불러요. 5개의 꽃 중 가장 튼실한 열매를 맺을 중심화를 제외한 4개의 꽃을 따주는 거예요. 꽃이 지고 사과 열매가 달리기 시작하면 '적과'라고 해서 알맞은 과실만 남기고 나머지는 따는 작업을 해요. 

 

꽃이 피기 전 사과 꽃봉오리

  

  사과가 어느 정도 크기로 자라게 되면 그때부터는 사과에 봉지를 씌우는 작업을 해요. 봉지를 씌우는 건 해충으로부터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사과에 빨간색을 입히기 위해서기도 해요. 다른 과일들은 알아서 자기들이 색을 잘 내는 반면 사과는 농부가 색을 내줘야 되거든요.


  씌웠던 봉지를 뜯고 나면 어느새 사과를 수확할 시기가 돼요. 빨갛게 잘 익은 사과들이 제 자식 같기도 하고 그동안의 노력이 결실을 맺는 순간이기도 하죠. 


  지금은 '전지 작업'이라고 해서 사과나무 가지를 자르는 시기예요. 이 작업이 제일 어려우면서도 중요한데 사과를 얼마만큼 맺히게 할지, 얼마나 잘 자라게 할지를 결정하는 작업이에요. 그래서 항상 심혈을 기울여서 작업을 하고 있죠. 보통 전지작업만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저는 그분들의 도움을 빌리지 않고 제가 작업을 하고 있어요. 왜냐면 제 손길이 닿아야지 사과나무 한 그루마다 어떻게 변화하고 자랐는지 알 수 있거든요. 


  "큰일이네요.. 곧 꽃이 필텐데 아직 시작도 못했거든요."


섬세하고 정교한 손놀림이 필요한 전지 작업





Q3. 유기농으로 사과를 키우게 된 이유?


  이왕 하는 거 제일 어려운 방식으로 농사를 지어보자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때마침 사과를 심은 곳이 아버지께서 10년 간 유기농으로 쌈채소를 키웠던 땅이었죠. 유기물 함량이 높아서 일반 농사를 짓기에는 정말 아까운 땅이었어요. 그래서 큰 맘먹고 유기농으로 사과를 키우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어요. 


과거의 사과 밭
현재의 사과 밭

  

  하지만 막상 유기농으로 농사를 시작했을 때는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하나부터 열까지 모르는 것 투성이었고 당장 눈 앞에 날아다니는 벌레들조차 어쩌지 못했죠. 사과밭에서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방문을 잠가 놓고 혼자 상념에 잠겼어요. '나의 20대가 이렇게 가도 되는 걸까?', '지금이라도 무농약으로 농사를 지어 볼까? 그러면 비료라도 쓸 수 있을 텐데'.


  결국 첫 해의 농사는 실패했고 사과의 70%가 병에 걸려서 수확한 사과를 모조리 땅에 묻었야 했어요. 그때의 심정은 정말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이었죠.


  몇 날 며칠을 좌절하던 어느 날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문제점을 찾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제가 찾은 해답은 유기농사에 대한 배움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어요. 그때부터 정말 절실한 마음으로 여러 유기농사 고수 분들을 찾아뵈러 다녔어요.


첫 해 맛보게 된 실패의 쓴맛. 수확한 사과를 전부다 땅에 묻다.

  

  물론 배움에서 그치지 않았어요. 그분들께 배운 내용을 실제로 제 농사에 적용해보았죠. 그 과정에서 저는 노력하지도 않고 결과만 바랬던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어요. 사실, 중요한 것은 결과를 바라기보다는 과정을 즐기는 것이었는데 말이죠. 이 깨달음 이후로 농사일이 점점 재미가 생기기 시작했고 농사를 배우는 과정에서 행복함을 느꼈어요. 그리고 서서히 제가 가꿔가는 사과밭에서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죠. 


  이제는 자신 있게 어딜 가도 유기농사를 짓는다고 얘기하고 다녀요. 그리고 제 농사를 응원해주시는 분들의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앞으로도 더 열심히 농사를 지으려고요.





Q4. 유기농으로 사과를 키울 때 힘든 점은?


  일반적으로 농사를 지을 때는 화학비료를 쓰잖아요. 하지만 유기농 농사에서는 화학비료를 전혀 사용할 수 없어요. 대신 제가 직접 유기물이 많은 유기질 비료를 만들어서 써야 하죠. 자연물에서 원료를 찾고 이를 분해해서 토양에 뿌리기까지의 과정이 정말 복잡하기도 하고 오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해요.


  식물에 필요한 가장 큰 3대 원소가 N(질소), P(인), K(칼륨)인데요. 그중 질소는 동물의 뿔이나, 발톱에 있는 단백질을 분해해서 얻을 수 있고, 콩이나 갈대에 들어있는 단백 질속에서도 얻을 수 있어요. 이렇게 자연에서 '천연 질소'를 얻는데 까지 연구했던 시간이 대략 1년 정도 걸렸던 것 같아요.


  유기농 사과를 키울 때 또 힘든 점이 있다면 사과에 봉지를 씌우는 작업일 텐데요. 보통 이 작업에 한 달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편이에요. 일반 사과를 재배하시는 분들은 농약을 치기 때문에 봉지를 안 씌어도 되지만, 저 같은 경우는 봉지를 씌우지 않으면 해충들로부터 입는 피해가 심각하기 때문에 꼭 봉지를 씌워야 해요. 그런데 이 작업이 노력과 시간이 많이 들지만 비용도 많이 들어서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사과를 발효시켜 만든 동비액비와 골분으로 만든 액비들





Q5. 사과즙을 먹어보니, 단맛이 강하던데 비결이 뭐죠?


  사과의 단맛을 내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요인이 필요한데요. 이곳 해안면이 가지고 있는 지리적인 이점이 그중 하나예요. 보통 사람들은 밥을 먹고 운동하면서 에너지를 쓰잖아요. 그와 비슷하게 사과나무도 호흡을 하면서 낮동안 광합성을 해서 모았던 당을 소진하거든요. 


  날씨가 더우면 나무들이 호흡을 많이 해서 당을 많이 소비하게 돼요. 그런데 이 곳은 밤에도 날씨가 너무 쌀쌀하다 보니 나무들이 호흡을 안 하게 되고 당이 쌓이게 되는 거죠. 이 곳이 아랫지방보다 사과의 당도가 높은 이유가 비교적 큰 일교차가 때문이에요.


  또 하나의 요인으로는 '모 잎'을 들 수 있는데요. 사과나무에 꽃이 피기 시작하면 작은 꽃봉오리들 주위로 '모 잎'들이 자라는데 사과의 당도와 맛을 결정하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해요. 그래서 '모 잎'들이 병에 걸리지 않게 소중하게 다뤄주는 게 정말 중요해요.  


최동녘 농부가 키운 빨간 유기농 사과

최동녘 농부의 인터뷰를 마치며 


  인터뷰를 마무리 짓고서 다시 사과 밭으로 이동했다. 최동녘 농부는 전지 작업에 대해 전보다 더 상세히 알려주었고 나는 마치 농사를 배우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기분이 참 묘했다. 농사일은 어렵고 힘들지만 본인만의 색깔로 작물을 키우고 농장을 꾸밀 수 있다고 내게 얘기해주는 것 같았다. 


  최동녘 농부는 계속해서 전지 작업을 하고 있고, 나는 사과밭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그러다 문득 예전에 프랑스에서 '질 아저씨'를 만났던 추억이 떠올랐다. 


  질 아저씨는 '시드로(Cidre)', 즉 애플 사이다를 만드는 농부셨다. 애플 사이다라고 하면 흔히들 청량감 있는 음료를 떠올리기 쉬운데 사과로 만든 술을 뜻한다. 질 아저씨가 만든 애플 사이다는 달콤한 향과 부드러운 목 넘김이 정말 일품이었다.


  나는 질 아저씨와 지내는 동안 그의 '농사 철학'에 대해 들을 때 많이 감동받곤 했다. 그 역시 유기농사를 짓고 있었는데, 자연과의 공존에 대해 강조했었다. 그중 생각나는 몇 구절을 적어보자면...


 "자연의 생태계를 보전하며 농사를 짓는 게 중요해. 땅 속에 사는 미생물이나 벌레, 동물들의 생태계를 잘 유지해 가면서 인간이 먹을 것을 수확하는 게 바로 현명한 농부의 역할이거든."

"농부들은 항상 정직해야 돼. 본인이 이득을 위해서 남을 속이는 행동을 해서는 절대 안 돼"

[출처: 글 유지황 / 파밍보이즈!]


  예전에는 사과를 생각하면 자연스레 질 아저씨가 떠올랐는데, 이제는 최동녘 농부도 같이 떠오를 것 같다. 그의 모습에서 질 아저씨를 닮은 현명한 농부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유기농사의 길은 어렵겠지만 언제나처럼 힘든 시간들을 잘 이겨내서 올곧은 농부로 성장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Q. 당신이 만나 본 최동녘 농부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이로써 월간농터뷰 2월호를 마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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