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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냉이꽃 Jan 04. 2023

그림을 시작하면서 알게 된 사실

시니어의 취미생활


2023년, 나는 65살이 되었다. 60세가 되던 해에는 호들갑을 떨었다. 늙음과 소멸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죽을 때까지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블로그도 시작했고 직장도 그만두었다. 지난 5년간 알게 된 것은 죽는 날까지 쉬운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항상 예기치 않은 일이 생기고, 새로운 과제가 주어졌으며, 인생은 언제나 익숙하지 않았다. 


늙어서도 생각만 많은 내가 안타까웠을까? 지인이 그림을 그려보라고 권했다. "모지스 할머니도 70 넘어서 그림을 그렸는데 너무 보기 좋았어요."


그림을 그려보기로 마음먹은 것은 그림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스트레스였다. 작가 기질이 없다 판단하여 20대에 그리는 일은 포기했다. 나는 힘들면 미리 기권하고, 낯설면 숨고, 익숙하고 편한 것만 찾아다녔다. 할 수 있는 것, 비교적 안전한 것, 실패 확률이 낮은 것을 고수했다. 보수적으로 나의 반경을 지키고 살았지만 이룬 것도 없고, 초탈하여 한가로운 구름인 듯 산 것도 아니었다. 현재에 충실한 적이 없었던 나는 어디에 살고 있었을까? 알지도 못하는 미래를 두려워하며 또 피할 것인가, 익숙한 일상을 벗어나는 것이 귀찮아서 또 주저앉을 것인가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답은 명확했다. 

 

팬데믹 이후 우리가 접한 세계는 모두 새롭고 낯선 것이었다. 100세 시대의 노후는 채소밭 키우며 연금만큼 사는 안빈낙도의 삶이 아니었다. 무엇이 될지 예측할 수 없지만 배워야 하고, 익숙하지 않은 강물에 배를 띄워야 하는 것 같았다. 아니면 그냥 도태되는 시대였다. 역사상 밀려나 사라지는 종은 언제나 있었다. 그것이 내가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인지되었다. 안전했지만 행복하지는 않았던 울타리를 부술 때라고 생각되었다. 인생에 빚진 느낌도 벗고 싶었다. 뭐라도 해보자. 


지인의 조언대로 초보에게 적당하다는 아크릴화를 선택했다. 과하지 않은 가격의 물감과 붓, 종이도 주문했다. 그러나 뭘 그려야 할지, 어떻게 그려야 할지는 막막했다. 산에 오르면 이 풍경을 그림에 담았으면 좋겠다 싶던 아스라한 마음이 되살아났다. 슬픈 고흐의 그림도 훑어보고, 행복한 모지스의 그림도 세세하게 봤다. 아무렇게나 찍은 사진 파일도 뒤적여봤다. 허허벌판에서 길을 찾는 심정으로 풍경화를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중학교 2학년 미술반 시절 이후로 처음 그려보는 풍경화였다.


겨울 한파가 계속되는 방 안에서 나는 봄을 그렸다. 집을 나서면 언제나 거기 있었던 우리 마을의 산과 들판이다. 산의 능선을 눈으로 따라갈 때마다 언어를 잊었고 전율이 일었다. 사계절이 다르고, 맑은 날과 흐린 날이 달랐으며, 매일과 매 순간이 달랐다. 그 떨림과 미묘함과 숭고함을 담고 싶었다. 최초로 동굴 속에서 들소를 그렸던 구석기 사람들은 어땠을까. 동굴벽화의 목적이 주술인지 유희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들소의 등줄기로 흐르는 선과 생명력을 그려내던 사람은 분명 살아있는 것에 대한 경외감으로 몸을 떨었을 것이다.


짜잔! 실전은 쉽지 않다. 마음은 굴뚝같고, 어찌어찌 그릴 것도 같은데 막상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붓끝이 갈 바를 잃고 헤맸다. 내내 그림이 불만스러웠다. 어설프고 서툴며, 모지스 할머니같이 순수하지도 않았다. 당연하지 않은가. 그런데도 무엇을 기대한 건지 나는 스트레스를 받았다. 


고흐는 어떻게 그렸는지 들여다봤다. 그는 날이 밝으면 해질 때까지 들판에 나가서 그림을 그렸다. 하늘과 별, 들녘과 나무와 꽃과 사람은 그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던 고흐의 전부였다. 그의 전부였던 세상에 헌신했다. 하늘과 땅은 그에게만 은밀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이 삼나무와 길이고, 밤하늘과 별이며, 해바라기와 과수원과 꽃밭과 사람이었다. 


고흐는 수많은 스케치를 남겼다. 물감 살 돈이 없어서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리다 만 스케치 한 장도 게으른 그림이 없었다. 선 하나에 그의 우직한 충성심이 스며있고, 표정 하나하나가 정직하고 성실했다. 그는 교만하지 않았고, 욕심부리지 않았고, 허세도 없었다. 


나의 스트레스는 노력하지 않고 바라기만 하는 욕심 때문이었다. 평생을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살지 않았겠는가. 스케치 한 장도 귀찮아하고, 대충 쉽게 끝내려는 나 같은 사람을 얌체, 혹은 속물이라 한다. 노력 없이 좋은 성적을 기대하고, 좋은 사람 만나기를 바라고, 무사태평한 인생을 기대했다. 이 허황함의 끝이 지금 현재의 내 삶이다. 한 게 없으니 결과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누구나 아는 당연한 사실이지만 나는 모르고 있었다. 삶의 법칙을 모르거나 우습게 알았기에 항상 요행을 바라고 꼼수를 부렸다.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는 말과 글, 결심과 언약은 간 밤의 꿈과 같은 허깨비 놀음이다.


2023.1.3  미완의 첫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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