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Something Keeps Calling
오늘은 이 음악 어때요?
저는 오프라인 쇼핑을 좋아하지 않아요. 살 물건을 정해두고 움직이는 스타일이라, 아이쇼핑도 사실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죠. 어차피 사지도 않을 물건, 에너지 써가면서 마음마저 어지럽게 왜 구경을 해야 하지? 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렇기에 상대적으로 에너지가 덜 드는 온라인 쇼핑을 굉장히 선호하는 편이랍니다.
(구경하다가 마음에 들면 사면 되는 것 아니냐고 물으신다면..계획에 없던 소비가 제 마음을 또 어지럽게 합니다..)
하지만 모순적이 되게도, 편집숍은 또 엄청나게 좋아해요. 특히 외국을 여행 갈 때면, 그 지역의 유명 편집숍을 먼저 검색해보고 여행 일정에 꼭 넣습니다. 거리가 꽤 되더라도, 살 물건이 없더라도 웬만하면 찾아가곤 했습니다.
편집숍, 이제는 발에 치인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많아진 편집숍을 왜 그렇게 좋아하게 된 걸까요?
그 이유는 아마 누군가의 취향이 온전히 깃들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너는 어떤 스타일의 옷을 좋아해? 어떤 스타일의 머리가 잘 어울려? 어떤 음악을 좋아해? 라는 물음을 갑자기 던졌을 때, 단번에 나오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거에요. '나의 취향'이란 사실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뀔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질문과 동시에 대답하는 것이 절대 쉬운 일은 아니죠.
아무튼, 저는 그래서 편집숍을 좋아해요. 백화점이나 특정 브랜드의 스토어처럼 해당 분기나 시즌의 모든 옷이 진열되어 있는 것이 아닌, 특정인의 취향을 파악할 수 있는 갖은 옷가지들과 소품들을 보다 보면, 꼭 제 맘에 들지는 않더라도 그 사람이 평소에 어떤 옷을 입고 다니는지, 지금은 어떤 옷과 액세서리를 하고 있을지 상상해볼 수 있는 게 재밌거든요. 나름 패션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서, 영감을 얻기도 하고 누군가의 옷장을 훔쳐보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뭐 그렇습니다.
그런데 사실, 편집숍의 진열되어 있는 옷들보다 더 그 사람의 취향을 알 수 있는 요소이자, 제가 편집숍을 특히 더 좋아하는 이유가 있어요. 제게 있어 인테리어나 진열된 옷들보다 더 강렬하게 다가오는 것, 바로 음악입니다. 모든 편집숍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편집숍에는 그 무드에 맞는 음악들이 흘러나오곤 합니다. 오죽하면 유튜브에 편집숍(편집샵)이라고 쳤을 때, '그루비한 편집샵 음악', '편집샵에 흘러 나올 음악' 이러한 타이틀로 꾸려진 플레이리스트가 나오기도 하죠.
편집숍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들은 진열된 옷과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취향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 사람의 평소 좋아하는 패션이나 가구, 색상 등의 취향이 손님의 시각을 담당한다면 그 사람의 음악 취향은 청각을 담당하는 거죠. 얼마나 고르고 고른 음악들일지, 거의 한 달에 한 번씩 글을 쓰는 저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네요. 입버릇처럼 돈을 많이 벌면 낮에는 커피를, 저녁엔 칵테일을 파는 재즈바를 운영해보고 싶다고 말하는데, 막상 제가 그런 재즈바를 운영하게 되었을 때 플레이리스트를 꾸릴 생각을 한다면, 한달이 걸려도 그 고민은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다 보니, 거의 편집숍 예찬론마냥 글을 쓰게 되었네요.
오늘 추천곡으로 가져온 음악은 Raphael Saadiq의 Something Keeps Calling이라는 곡입니다.
제가 언젠가 재즈바를 차리게 된다면, 재즈곡이 나오지 않는 타임에는 이 곡이 꼭 나오게 될 것 같아요.
그만큼 제 취향을 대변하는 곡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라파엘 사딕, 래피얼 서디크, 이름이 어려운 이 아티스트는 1966년생의 미국의 R&B 싱어송라이터이자 베이시스트입니다. 8~90년대에 큰 인기를 얻었던 토니!토니!토니!(Tony! Toni! Toné!) 멤버로 경력을 쌓았고, 네오소울, 모타운 사운드 등 블랙 뮤직의 대가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유명한 아티스트죠.
라파엘 사딕의 진가는 본인의 음악뿐만 아니라, 프로듀싱 능력에도 있습니다. 조스 스톤, 디안젤로, TLC, 존 레전드 등 유명 아티스트들의 프로듀서로도 활동했고, 그중에서도 제가 정말 좋아하는 디안젤로의, 정말 좋아하는 음악인 Untitled의 프로듀서로도 참여해 그래미 어워드 베스트 듀오 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활동 기간이 정말 긴 아티스트인 만큼, 좋은 노래들이 많지만, 그중에서 저는 2019년에 발표한 Jimmy Lee 앨범의 4번째 곡이자, 타이틀 곡 중 하나인 Something Keeps Calling을 가장 좋아합니다. 라파엘 사딕의 노래들을 쭉 듣다 보면, 취향에 맞지 않는 곡들도 꽤 많은데 이 곡만큼은 처음 듣자마자 완전히 반해버렸죠.
Jimmy Lee 앨범은 약물 중독으로 사망한 그의 형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만든 앨범이라고 하는데, 이 때문에 수록곡 대부분이 약물, 흑인, 범죄 등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고 합니다. 첫 소절부터 강하게 치고 들어오는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라파엘 사딕의 깔끔한 가성으로 자칫 넘어갈 뻔한 가사들을 되돌아보면, 약물 중독에 빠져 불안해하는 심리와, 또 반대로 이를 지켜보는 라파엘 사딕의 슬픔을 느낄 수 있습니다.
편집숍 얘기로 시작한 것과는 다르게, 음악 얘기를 하다 보니 주제가 무언가 많이 무거워진 것 같지만, 아무튼 영알못인 제게 가사는 잘 안 들리고, 멜로디로 첫 소절부터 빠져버린 라파엘 사딕의 Something Keeps Calling 추천해 드리면서, 저는 오늘도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