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급과 주급

시간과 돈, 그리고 직업(2)

by Anna Lee

PC로 읽으신다면 더 편안하실 거예요. :-)




나의 아버지는 월급쟁이였습니다.

나의 언니도 월급쟁이였고,

나도 월급쟁이였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지난 일 개월 동안의 업무에 대한 대가를 지급받는 형태이지요.

그래서인지 큰 경조사나 지출은 월 단위로 계획하는 것이 너무 당연했습니다.


만으로 5년 정도, 약 60번의 월급을 받은 시절을 돌아보면

힘들게 한 달 동안 일을 해도 정해진 금액의 월급이 들어왔고

좀 느슨하게 대강 일을 해도 그 금액은 다르지 않았습니다.


아주 가끔은 나태해져도 괜찮은 안정적인 생활을 가능하게 했고,

또 어쩔 때에는 내가 쏟아부은 노력에 대한 보상이 없는 것만 같아 허무한 적도 있었습니다.

어찌 됐건 매월 25일은 돌아왔고 또 다음 달 25일을 기다리며 생활했었지요.


인센티브의 개념이 거의 없던 나의 직장에서 그 월급이란 아이는 나의 연봉을 12개월로 쪼개 지급하는 것이란 것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기본급에 점심식대. 이런저런 항목이 세부적으로 나누어져 있었지만 자세히 들여다본 적은 기억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호주에 와보니 이 곳은 주급을 받는다고 합니다.

지난 한 주 동안 나의 업무에 대한 대가를 그다음 주에 지급합니다.

나의 업무에 대한 시간당 rates가 직업과 경력에 따라 정해져 있습니다.

Rates에 내가 근무한 시간을 곱해 주급을 지급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처음엔 많이 불안했습니다.

물가와 임금의 정도가 다르긴 하지만

월급을 주급으로 쪼개 받으니 상대적으로 손에 쥐는 금액이 적은 듯 느껴졌습니다.

일을 더 많이 해서 주급을 늘리고 싶었습니다.

내가 일을 더하는 만큼만 돈을 더 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르게 생각하면,

내가 일을 더 한다면 그 만큼 돈을 더 벌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rates를 높이는 게 좋은 방법이었지만

낮은 영어실력과 나의 비자 상태는 그 가능성이 높지 않았습니다.


주급의 생활에 익숙해지자 어느 날 문득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가 카페에서 시급 20불을 받고 아르바이트를 했을 당시

스타벅스에서 5불짜리 커피를 사 마시게 되면

나의 소중한 15분을 사용하게 되는 것이고,

30불짜리 저녁을 사 먹으면 1시간 반 동안 일한 것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월급쟁이로 살 때에는 전혀 생각해본 적 없는 부분이었습니다.

돈을 나의 시간으로 환산하는 것

난 그때부터 시간도 돈도 아끼기 시작했습니다.


1년이 52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도 호주에 와서 알았습니다.

나보다 셈에 밝은 남편은 큰 지출의 경우 보통 1, 2년의 계획을 미리 세워둡니다.

필요한 목표의 금액을 정하고 그것이 1년 뒤 필요한 일이라면

52주씩 나누어 조금씩 미리 준비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취업비자로 2년 근무 후에 영주비자를 신청할 수 있는 상황이었고, 영주비자의 예상 신청비가 그 당시 만 불 정도였습니다. 취업비자가 나온 그 주부터 만불을 104주로 나누어 매주 약 100불씩 영주비자 신청비용으로 따로 세이빙을 시작했습니다. 작지 않은 돈이지만 우리는 꾸준히 모아놓은 돈으로 큰 어려움 없이 영주비자를 신청할 수 있었습니다.


세이빙도 마찬가지입니다.

월급을 받을 때에는 1년에 12번의 저축 기회가 있지만

주급을 받을 때에는 1년에 52번의 저축 기회가 있습니다.

저축액은 작지만 매주 매주 자주 하다 보니 쌓이는 재미가 있습니다.




월급의 장단점과 주급의 장단점이 각각 분명히 있습니다.

나는 지금 월급을 받고 싶어도 받을 수 없는 곳에 살고 있기에

주급의 장점만을 생각하며 사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그 주급 안에는 객관적으로 평가되어있는

나의 현재 시간에 대한 세상의 가치가 녹아있습니다.

시간의 소중함을 알게 해 주어 고마운 주급입니다.




+ 호주에서는,


직업과 경력에 따라 rates가 결정되지만

weekend penalty rates와 night shift penalty rates도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전에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하기에

돈을 더 번다는 것이 'fair'하다고 생각한 부분과 동일한 맥락입니다.

밤 시간과 주말에 일하고 싶은 사람은 드물겠지요.

하지만 꼭 그 일자리에 사람이 필요하다면

그 사람들에게 더 많은 돈을 지급하는 것이 'fair' 합니다.




일 하는 시간의 양에 대한 'fair'를 위해 노력한 흔적도 보입니다.

결국 우리 모두는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합니다.

그렇지만 상황에 따라 고용주는 고용인이 원하는 만큼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고용주는 그에 해당하는 rates를 고용인에게 지급해야 합니다.


casual job의 경우 고용주의 요청 시에만 일을 하러 갑니다. 노티스 없이 해고가 가능합니다.

고용인의 리스크가 크기에 퀸즐랜드 주의 경우 일반적으로 25% 높은 임금을 지불해야 합니다.

Part-time의 경우 보통 일주일에 38시간 미만의 근무 시간을 보장받습니다. 연차가 생깁니다.

Full-time의 경우 통상적으로 일주일에 38시간 이상 근무하게 됩니다. 연차가 물론 있습니다.


casual - part-time - full-time으로 갈수록 시급 자체는 낮아집니다.

일할 수 있는 시간이 보장되고 연차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거의 대부분의 직장생활은 casual job부터 시작하게 됩니다.


part-time/full-time 이 한국에서의 정규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에서 말하는 비정규직(계약직) 근로자로 시작합니다.

fixed term worker(계약직)로 4년 이상 근무 시 법적으로 permanant worker(정규직)으로 전환됩니다.

한 곳에서 4년 이상 근무하기 위해서는

내가 그곳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한다는 것도 함께 생각해볼 중요한 문제입니다,


주당 근무시간과 근무 형태에 상관없이 모두 계약서를 씁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계약직입니다.

영원히 함께 일하는 관계가 세상에 존재할까요.




나는 이곳의 모든 사람이 법을 준수하고

법의 테두리 안에서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고민하고

최소한 이러한 장치들을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 매우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잘나서 또 누군가는 못나서 정규직이고 비정규직인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각자 다른 상황에서 각기 다른 삶을 살고있는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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