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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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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Lee Sep 07. 2019

군고구마

남편 육아일기

"니니! 니니!"

나를 급하게 찾는 남편의 목소리를 따라 주방으로 나와보니

오븐 앞에 서있는 그의 얼굴이 상기되어 있습니다.


"고구마들이 오븐에서 땀을 흘리고 있어! 사우나하는 것 같아!"


요 며칠 군고구마에 빠진 남편이 오븐 속을 찬찬히 들여다보더니 

고구마가 익으며 즙이 흘러나오는 장면이 재밌었나 봅니다.

나는 그것을 재미있어하는 그가 꽤나 재밌었습니다.


요즘 유행이 한참 지나가버린 '응답하라 1988'을 1화부터 챙겨봅니다.

'먹고 싶은 거 없어?' 물었을 때 뭐든 시큰둥하던 그가

군고구마, 비빔밥, 라면 등등 이것저것 먹고 싶다고 합니다.

내가 아팠던 날에는 일하는 중간에 전화해 안부를 물었습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그는 

그는 로봇 인간처럼 감정을 배제한 채 

버티는 게 답인 사람인 마냥 회색 인간으로 지내왔습니다.

유일한 친구는 담배였고요.


예민하고 아슬아슬한 그의 감정선을 지켜내느라

나 또한 많이 힘들었던 게 사실입니다.

종종 다투기도 하고요.


이것저것 먹고 싶다고 이야기해오는 그의 말이

그렇게 반갑고 귀엽고 감사하게 느껴집니다.

드라마에 빠질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됩니다.


회복이라는 단어보다

흘러간다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아무 일 없었던 듯

우리는 그렇게 또 고구마의 사우나 장면을 보며

깔깔거리고 웃을 수 있었습니다.


고마운 일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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