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곁의 페미니즘] 대선후보들이 잡은 손과 놓은 손
(※이 편지는 오마이뉴스 연재기사입니다. 홈페이지에서 직접 보시면 http://omn.kr/1x68c 오마이뉴스 페이지에서 작가의 편지낭독 음성을 바로 들으실 수 있습니다. :) 재회의 고리가 되어준 편집자 고 이환희님께도 감사를 전합니다.)
'페미니즘을 뭐라고 번역하시나요? 우린 '성평등주의'로 읽습니다. 성별로 인한 차별을 없애자는 얘기죠(오바마도 페미니스트라네요!). 페미니즘이 오해받는 한국, 그 안에서 페미니스트로 사는 두 여성의 이야기. 2주마다 한번씩 편지를 주고받으며, 연대와 성장을 꾀해봅니다.[기자말]
설 연휴는 잘 보내셨나요? 2022년 첫 달이 훌쩍 지났네요. 성애님이 지난 편지에서 쓴 '부끄러운 고백' 부분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부끄러워 해야 할 건 오히려 법을 어기는 정치인들 아닌가' 하는 생각요. 유권자라면 누구나 더 나은 정치, 더 좋은 민주주의를 바라게 마련이고, 지지하는 정치인·정당이 있다는 건 자연스러운 일일 테니까요.
최근 저를 동요하게 만든 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오마이뉴스> 인터뷰였어요. 이 대표는 "20대 여성이 어젠다를 형성하는 데 뒤처지고 있다"며 "담론이 추상적이라 정치권이 대응하기 어렵다"고 했더라고요. 문제를 해결해야 할 정치인이 해결은 않고 평가만 내리는 건데, 이건 '직업 정치인'으로서 직무유기 아닌가요. 20대 여성을 정치적 권리가 없는 '무권자'로 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그에게 되묻고 싶어집니다. 여성·청소년 성 착취로 논란이 된 'n번방'을 막기 위해 여자들이 거리 시위에 나서고, 국회에 입법청원을 하는 동안 당신은 뭘 했느냐고요. 강력범죄 피해자 2만5000여 명 중 약 90%가 '여성'인 사회(*2011~2020년 10년간 통계·출처 뉴스톱), 꾸준히 생기는 교제살인 현실을 왜 한 치도 변화시키지 못 했냐고요.
성범죄를 줄이려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 어떤 노력을 했느냐는 거죠. 오히려 'n번방 방지법은 사전검열법'이라는 근거없는 주장만 했었잖아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준석 대표만 저런 건 아닌 듯해요. 정치권의 '이대남 눈치보기'는 여야 할 것 없이 현재진행형이니까요. 정치인들이 시민 의견을 듣는 건 당연하겠지만,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가타부타 설명도 없이 '여성가족부 폐지'란 일곱 글자만을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건 '선동'에 가까운 것 아닌가요.
백 번 양보해 그런 주장을 한다 치더라도, 내용도 없이 유권자를 '낚시질' 하는 모습은 지켜보기 괴롭습니다. 저는 그런 대통령 후보가 있는 사회에 절망을 느껴요.
얼마 전엔 이재명 민주당 후보가 한 온라인 커뮤니티 반발을 시작으로 특정매체들 출연을 취소하는 일도 있었죠. 해당 방송사 노조는 "예정됐던 출연을 보류한 이 후보에게 유감을 표명한다. (후보 측은) 오해에 휘둘리기 전에 씨리얼 콘텐츠부터 정주행해달라"고 알리기도 했습니다. 이 후보는 반면 '닷페이스'와는 취소를 번복한 뒤 인터뷰했다지만, 다행인지는 모르겠어요. 해당 매체 노동자들에게 쏟아진 악플 등 사이버 불링은 이미 심각했거든요.
관련 보도에 따르면 같은 당 김남국 의원이 단체대화방에서 '닷페이스에 출연하면 2030 여성표가 나오느냐'고 물었다죠? 갈팡질팡, '갈 지(之) 자'로 걸으면서도 여성들 표는 챙기려는 의도도 웃기지만, 5000만 국민을 대표하게 될 대통령 후보에게 '거긴 표가 안 되니까' 출연하지 말라고 하는 것도 좀 안타깝습니다. 그런 사람을 측근으로 둔 이재명 후보도요.
정치권 일각에선 '여성 청년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도 들려요. 하지만 아시나요? 직전 선거인 19대 대선에서 20대 여성 투표율이 20대 남성보다 높았다는 걸요. 25세~29세 여성의 투표율은 79.0%로 같은 나이 남성보다 확연히 높았습니다(25~29세 남성은 71.1%). 이쯤 되면 2030 여성이 안 보이는 게 아니라, 그냥 안 보는 게 아닐까요. 제 주변의 여성들은 말합니다, 우리를 대변할 정치인과 정당이 보이지 않는다고요.
이런 마음이 드러난 게 지난 서울시장 선거였다고 생각해요. 당시 지상파3사 출구조사 결과에서 18·19세 포함 20대 여성의 15.1%가 거대 양당이 아닌 제3 후보에 투표했다고 답했거든요(전체 평균에 비해 5%P가량, 같은 연령대보단 3배 높은 비율이었습니다).
20대 여성 유권자들은 오히려 더 선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정치권이 누구의 손을 잡았고, 누구 손을 놓치고 있는지를요.
저는 지난해 동안 정치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의 책 읽기 모임을 친구들과 했었는데, 책 <타인에 대한 연민>에는 이런 문장이 등장해요.
"대중의 분노는 부당함에 대한 정당한 반응일 경우 민주주의에 도움이 되지만, 타인의 고통이 집단 혹은 국가적 문제의 해결책이라도 되는 듯 불타는 보복 욕구를 포함하기도 한다." (97쪽)
누스바움은 운동과 정치의 영역에서 '분노'가 전부가 돼선 안 된다고 강조하지만, 저는 최근 여성들의 분노가 부당함에 대한 정당한 반응이라고 생각해요. 이들의 연대는 여성에서만 끝나지 않고 다른 소수자들과도 함께 가고 있는데, 오히려 이런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하는 정치가 안타깝고요.
누스바움은 또 말합니다. "희망은 무기력해선 안 되고, 무기력할 수도 없다."(251쪽) 마치 우리가 더 나은 정치와 민주주의를 바란다면 무기력해선 안 되고, 변화를 실천하려면 무기력할 수도 없을 거라고 말하는 것 같아요.
저희 모임에선 2021년 마무리겸 누스바움에게 메일을 보냈었는데요. 답장에서 누스바움은 썼습니다. 얼마 전 자신의 딸이 세상을 떠났는데, 그 딸의 관심사였던 '동물권'에 대한 책을 자신이 최근 펴냈다고요(누스바움의 딸은 사망 전 국제비영리단체인 '동물의 친구들 Friends of Animals' 변호사였다고 해요). 개인적 아픔을 딛고 계속 희망하는 사람들, 그 덕에 이 땅이 더 살기 좋아진다는 걸 느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뚜벅뚜벅 가야 하지 않을까요. 30여 일 앞으로 다가온 대선, 현실은 암울하더라도... 손잡고 함께 걷기로 해요.
▲ 당신에게 추천합니다: 더 나은 내일을 바라는 당신께, 마사 누스바움 <타인에 대한 연민> "희망은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 늘 선택의 문제다".
2022년 2월 2일
희망을 택하는 당신 곁에 서며, 혜미 드림.
[관련 기사]
"우린 유권자로 보이지 않나요?" 20대 여성들의 반문 http://omn.kr/1wyz3
<추적단 불꽃>의 '불', 민주당 선대위 합류 http://omn.kr/1x27z
'당신곁의 페미니즘'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첫번째 편지☞ 같이 걷게 될 당신, 멀고도 가까운 당신
두번째 편지☞ 이런 시대... 여자로 태어난 건 축복일까요
세번째 편지☞ 청년 부르짖는 정치인은 모르는 청년의 심각한 현실
네번째 편지☞ 길바닥 나앉은 목사, 청년 예수가 봤다면
다섯번째 편지☞ 노동자 과로사하는데... 윤석열 말에 한숨부터 나왔다
여섯번째 편지☞ '숏컷 괴롭힘' 사회... 아이를 낳고 싶다, 낳고 싶지 않다
일곱번째 편지☞ 늘어나는 비혼·비출산, 윤석열만 못 보는 현실
여덟번째 편지☞ 아프간 '난민'을 왜 내가 신경 써야 하냐고요?
아홉번째 편지☞ 여성 안 보이는 선거, 2022년에도 봐야 한다니
열번째 편지☞ 가족, 짐일까 힘일까... '정상' 너머 대안이 필요하다
열한번째 편지☞ 아파보니 알겠어요, 한국에 '돌봄'이 있나요?
열두번째 편지☞ 성범죄 무고 처벌 강화? 윤석열의 참 '후진' 약속
열세번째 편지☞ 뺏기고 내몰리는... '코시국' 여성 홈리스들의 삶
열네번째 편지☞ 다 괜찮으니까, 죽이지만 말라고요
열다섯번째 편지☞ 출마했어도 "아가씨"... 정치권의 역겨운 성차별
열여섯번째 편지☞ 대통령, 가장 크게 아파하는 사람을 뽑겠다
열일곱번째 편지☞ "잘 봐 언니들 싸움이다"... 이런 말을 듣고싶다
열여덟번째 편지☞ 김건희는 모른다, 미투 뒤 피해자가 겪어낸 일을
열아홉번째 편지☞ '여성 청년들은 어디 있느냐'라는, 게으른 질문
* 혜미와 성애가 2주에 한 번씩 총 20회 주고받으며, 격주 금요일 게재될 예정입니다. 이 편지는 문학동네 이슬아x남궁인의 연재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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