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녀리고 가녀린 심성이여
살아가면서 많은 일이 일어난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인간관계에서도 일에서도 마찬가지다. 최근 2년 사이에 정말 가까웠던 두 사람에 대한 관계를 정리했다. 나는 보통 상대방에게 맞춰주는 편이다. 그리고 사람을 쉽게 미워하지 않는데 -내 착각일 수도 있지만- 이렇다 보니 친해지거나 가까워지면 편해서인지 함부로 해도 된다는 생각에서인지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 꼭 생긴다. 보통은 그냥 몇 번 까스러워도 넘어간다.
그런데 이게 쌓이고 반복되고 점점 굳은살처럼 단단해지기 시작하면 나도 그 사람을 만나기가 싫어지는데 처음엔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의 부피에 눌려서 고달파지기 시작한다. 가령 통화만 해도 너무나 피곤해지거나 만나기로 해놓고 마음의 짐으로 느껴진다거나. 그리고 곱씹어 생각한다. 그 사람의 말과 행동들. 그래서 내가 받은 영향과 결과까지. 점점 부정적인 쪽으로 생각의 저울이 기울기 시작해서 바닥에 닿는 순간, 그리고 감정의 부피가 풍선처럼 점점 커져서 빵!! 터지는 순간. 난 그 관계를 끝내기로 결정한다.
이런 내 결론은 순간적인 충동이나 변덕스러운 마음으로 인한 것이 아니며 꽤 많은 자극으로 인해 너덜너덜해져 버린 내면의 호소이다. 이제 제발 이 관계를 끝내. 너만 다치고 있어. 정이 떨어진다고 하나. 그 관계를 개선하고 싶지 않다. 그 사람은 그런 사람이고 나는 나를 보호하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이러이러한 점에 상처받고 힘들다고 하면 그 사람은 그랬구나, 미안해. 난 정말 그런 마음이 아니었어. 이런 다음 조심하는 척하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거나 어색하고 껄끄러워지거나. 아니면 너 왜 그렇게 예민하니?라고 반문할게 뻔하다. 그 사람은 그렇게 생긴 사람이고 난 이렇게 생긴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정말 고심하다 두 사람을 정리했다. 정말 친했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내 삶은 그만큼 외로워졌다. 그러나 그전처럼 상처로 얼룩지거나 그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소모되는 에너지가 없어졌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이런 것은 각오하고 있었으니 익숙해지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며칠 전 관계를 끊은 a 씨가 원수같이 생각하던 b 씨와 굉장히 친하게 지낸다는 소식을 들었다. 같은 업종의 일을 하니 원하지 않아도 이렇게 들려오는 소식은 어쩔 수 없는데 그 소식에 난 잠시 화도 났다가 사람의 감정과 생각의 가벼움에 씁쓸해지고 말았다. b 씨는 a 씨가 정말로 너무나 싫어하던 인물이었다. 나와 같이 이를 갈며 b 씨를 저주하고 미워하던 a 씨였는데 어떻게 둘이 친해질 수가 있는지. 정말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되는 상황이 눈앞에서 펼쳐지니 기분이 영 찝찝했다.
나에게 이야기했던 a 씨의 b 씨에 대한 감정은 어느 정도였을까? 자신을 무시하고 하대하는 b 씨를 경멸하며 미워하던 a 씨의 생각의 결론은 무엇이었을까. 너무나 가볍고 가볍구나. 관계의 연속성이여. 거미줄처럼 얇고 가벼운 인간관계와 감정의 소비와 생각의 낭비여. 내가 너무 무겁게 생각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가볍게 넘길 수 있는 문턱도 하나하나 다 걸리며 넘어가는 건지도 모른다. 사람에 대한 회의가 늘어가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