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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 쇳소리

by Jude

그 상황에서 뭐가 정답이었을까?

흔히들 사람들은 인생에 정답은 없다고 하지만 난 분명 그 상황에서의 정답은 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본인과 상대방이 있는 상황에서 각자의 입장에서 원하는 정답이 있기 마련이다.


언니의 경제적 도움을 요청하는 그 순간 언니의 도움을 받지 않겠다고 말했어야 정답인 걸까? 받는다고 말한 게 정답인 걸까. 날이 지날수록 정답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못난 자존심이 자꾸 고개를 든다. 하지만 내가 뭐라고. 내 까짓게 뭐라고. 다시 한번 자존심을 향해 강하게 정의 내려본다. 너는 나에게 어떤 것도 해줄 수 없고 나의 문제도 해결해주지 못한다고. 그러면서 대단한 뭔가의 존재성을 부여해 주는 척하지 말라고. 그럴 가치도 여유도 없는 나니까 제발 끼어들지 말라고.


지금까지 주위 사람들의 무수한 도움을 받아서 여기까지 왔고 그 도움을 준 사람 또한 나에게 그럴 권리가 있는 것임을. 내가 강하지 못하니까 내가 부족하니까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임을.


나는 언제 강해질까. 언제 도움을 받는 것에서 벗어나 도움을 주는 존재로 바뀔 수 있을까. 자라지 못하는 병에 걸린 것은 아닐까. 계속 도움을 줘야만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지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그것을 이해해주지 못한다면 나는 지독하게도 이기적인 인간인 것이다. 다들 그래서 그렇게 말한다. 그 사람 입장에서 그럴 수 있다. 그리고 너는 도움을 받는 입장에서 알아서 기는 게 맞는 것이다.


힘을 원한다. 언제까지 사람 좋은 척 웃음으로 뒷걸음질 쳐야 하는 것인지. 화가 나서 참을 수 없으면서도 소리 없이 물러나야 하는 것을. 그래. 내가 뭐라고. 내 까짓게 뭐라고. 자기 비하조차 사치로 취급되는 내게 남겨놓을 자존심이 뭐가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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