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말했듯이 이혼하고 가장 좋은 것은 명절이 되었다. 이번에는 호박전이랑 동태전이 먹고 싶다 하니 언니가 “네가 직접해.”라고 해서 그러마하고는 엄마네로 갔다. 예정보다 조금 늦게 도착하니 엄마네는 이미 고소한 전 냄새로 가득했다. 주방에는 셋째 언니와 엄마가 이미 호박전을 꽤 부쳐놓았다.
언니는 저거 저거 하기 싫어서 일부러 늦게 왔다고 타박을 하고 엄마는 내가 말하지 않았냐 얄밉게 편을 들었지만 하나도 밉지도 서글프지도 않았다. 내가 할게 언니 손에 든 뒤집개를 건네받으니 언니는 이내 허리를 두들기며 그래 이제 네가 좀 해라 하곤 소파로 갔다.
엄마는 방금 구운 호박전을 욕심부려 입에 넣다 뜨겁다고 다시 뱉었다. 깔깔깔. 무슨 호박을 이렇게 많이 썰었는지 구시렁거리다가 호박들이 익기를 기다린다. 그 사이 엄마는 내 옆에 와서 설거지를 하기 시작하고 난 좀 깨끗하게 하라고 잔소리를 한다. 찰박찰박. 젓가락 씻는 소리가 정겹다.
겨우 호박을 끝내니 동태가 기다리고 있다. 슬그머니 소파로 가서 눕는다. 언니가 교체해 준다고 하곤 안 와서 나대로 부리는 술법이다. 할 수 없이 엄마가 뒤집개를 잡고 엄마가 하는 걸 못 보는 셋째 언니가 가서 다시 뒤집개를 잡는다.
나도 양심이 있어서 계속 소파에서 있진 못한다. 잠시 쉰 다리를 일으켜 세우며 “아니, 내가 한다니깐 왜 언니가 하고 있어~”라며 쉰소리를 한다. 언니는 다 안다는 듯 “엄마가 하고 있잖아.”라고 눈을 흘긴다. 다시 뒤집개는 내 손에 왔고 이제 난 모든 전을 끝내야 한다.
그러던 중에 형부와 조카가 왔다. 명절에만 보는 반가운 얼굴. 형부는 대천에서 소라와 대하를 엄청 많이 사 왔다. 반가움도 채워지고 배도 채워지고.
이런 명절이 좋다. 먹고 싶은 거 해서 그립던 사람들과 나눠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하며 한 잔 하는. 의무감이나 쫓기는 기분 없이 여유 있고 풍족한 기분. 이렇게 흐뭇한 명절이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