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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정 Jan 22. 2020

제자리가 있는 건 좋은 거 같아

운동, 샤워가운에서

제-자리
 [명사] 본디 있던 자리. 또는, 거기에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

[예문] 두 달간 운동을 하니 모든 뼈들이 제자리로 가는 느낌이다.

운동을 한지 어언 두 달 하고도 반이 지났다. 6월 1일부터 시작했으니 두 달 반하고도 3일 정도 지난 셈이다. 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서른이 되기 전에 한 번쯤은 멋진 몸매를 가지고 싶어서였다. 모델 한혜진의 말도 한몫 톡톡하게 했다.

그레이도 하기나 해 노래에서 어차피 생각대로 안된다 그랬다.

제 의지로 바꿀 수 있는 게 몸밖에 없더라고요. 그렇다. 마음도, 성격도, 취향도 바꾸기 정말 어려운데 의지로 바꿀 수 있는 게 몸이었다. 조금 덜 먹고, 조금 더 움직이면 몸은 바뀐다. 밥보다 고구마와 닭가슴살을 먹게 되고, 운동을 일주일에 못해도 3-4번 한 결과에 몸은 절대 배신하지 않았다. 배신은 술 먹은 내가 했다.


월급의 꽤 큰 부분을 운동하는데 쓴다. 그런데도 아깝지 않은 이유는 건강해져 가는 내 몸을 보는 재미가 쏠쏠해서다. 무엇보다, 제자리로 찾아가는 내 뼈들이 환호를 지르는 느낌이 참 좋다. 특히 어깨뼈가 환호를 크게 지른다.

나는 어깨가 참 많이 굽었다. 어머니의 유전자를 물려받아 어렸을 적부터 가슴이 발달했다. 나는 그때 내 가슴이 싫었다. 다른 아이들과 다른 것도 싫고 피구와 달리기를 좋아하는데 할 때마다 거슬리고 아픈 가슴이 참 싫었다. (잠시나마 원망했던 어머니의 유전자에게 늦게서야 감사를 표한다.) 그래서 자꾸 숨었고 움츠렸다. 그러다 보니 어깨가 굽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굽히고 산 어깨뼈는 쉽사리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았다. 몇십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많이 늦었지만 어깨뼈는 운동을 통해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본디 있던 자리에, 마땅히 있어야 할 곳에.


[예문] 샤워를 마치고 샤워가운을 제자리에 걸어놓았다.

송월 샤워가운, 체험 삶의 질 상승 현장

어디에서 봤더라. 샤워가운을 샀더니 삶의 질이 높아졌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씻고 그냥 입기만 하면 몸이 뽀송하게 말라있다, 는 리뷰 글을 읽자마자 덜컥 사버렸다. 이 가운 하나가 삶의 질을 높여준다고? 그럴 리가 했는데 이럴 수가 그럴 수가였다. 습한 여름, 짠맛에 스며든 몸을 물로 적시고 난 후, 샤워가운을 입고 샤워실을 나서 에어컨 앞에 서있는 쾌감! 경험해 본 사람만 알 수 있다. 정말 지린다. 서울 사이버 대학을 다니고 나의 성공시대 시작된 것처럼, 샤워가운을 사고 나의 삶의 질 상승이 시작됐다. 오버 아니고 진짜다.


여하튼 샤워가운은 해가 드는 곳에 항상 걸어놓는다. 해가 드는 곳, 그곳이 샤워가운의 제자리이다. 머금었던 습기를 샤워가운도 제거해야 하니까. 이왕 빠르게, 햇빛 살균을 받아 깨끗하게 머금었던 물기를 제거했으면 좋겠어서. 항상 샤워가운을 벗고 제자리에 놓는 게 일종의 습관이 되었다. 세탁기에 돌아 건조대에 널려있는 그 시간에 비어있는 자리가 휑해서 하나 더 샀다.


제자리가 있는 나의 어깨뼈와 샤워가운. 학창 시절 선생님께 혼나고 '제자리로 돌아가'라는 말이 괜히 서럽게 느껴졌었는데. 제자리가 있는 건 좋은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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