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방에게서
요즘 독립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독립하고 싶어, 라는 말을 습관처럼 내뱉게 되었다. 왜 나는 독립하고 싶은 걸까? 이유는 크게 두 가지.
하나. 샤워하고 그냥 맨몸으로 나와 눕고 싶다.
두울. 이 집은, 이 방은 내가 선택하지 않았다.
하나, 샤워하고 그냥 맨몸으로 나와 눕고 싶다.
이것은 '샤워가운' 이 어느 정도 해결해주었다. 덕분에 물기가 어린 채로 입었던 축축한 속옷과 옷들은 안녕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방 문을 열고 샤워가운을 벗은 채로 침대에 눕기란 여전히 불가능하다. 샤워가운을 입고, 방에 들어와 벗고, 방 문을 활짝 열고 환기가 된 곳에서, 침대에 누워있고 싶어 독립이 하고 싶다.
두울, 이 집은, 이 방은 내가 선택하지 않았다.
이 집은 교통도, 치안도, 주변 상가들도 너무 좋지만 내가 선택한 게 아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방 또한 내가 선택한 게 아니다. 내가 선택할 수 있었다면 조금 더 외관이 예쁜 아파트를 선택했겠지, 창문이 있는 오빠 방을 선택했겠지. 이 방은 보일러실과 연결되어 있는 구조라 나에게 허락된 창문은 보일러실 창문이며, 그 마저도 아주 비좁고 깨끗하지 않다. 게다가 엄마는 보일러실을 음식물 쓰레기 보관 장소로 지정해놓았기 때문에 여름 이 방에는 초파리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내 시야에 초파리 한 마리가 인사를 건네는 중이다. 그들의 인사가 너무 달갑지 않아, 나는 답지 않게, 이 집 음식물 쓰레기 관리자가 되었다.
나의 엄마는 언제나 정직하다. 국가에서 정해준 노란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사서 그 안에 음식물 찌꺼기를 버린다. 그 노란 봉투 안에 담긴 음식물 찌꺼기들을 좋아하는 초파리들이, 하수구를 타고 창문을 타고 들어와 가족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보일러실과 연결된 내 방으로 들어오고, 나로 인해 초파리 가족은 처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주로 초파리의 안녕은 저녁에 자주 일어나는데 어둠 속에서 낄낄대며 핸드폰으로 유튜브를 보면, 핸드폰 불빛에 이끌린 그들이 내 핸드폰 액정 위에 앉는다. 그러면 나는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충동에 이끌려 엄지 손가락으로 안녕을 고한다.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고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보일러실로 달려간다. 엄마가 지정해놓은 음식물 쓰레기 보관 장소에 찾아가 에프킬라를 미친 듯이 뿌린다. 나의 웃음을 방해한 죄, 이 집을, 이 방을 나에게 준 엄마가 괜히 미운 죄. 그러한 죄들을 탓하며 미친 듯이 뿌린다. 그리고 제대로 묶지 않은 음식물 쓰레기봉투의 매듭을 꽉꽉 묶는다. 손에 음식물 쓰레기 쉰내가 베일만큼. 새 나오지 못하도록 아주 꽉꽉.
이 집이 아니었다면, 이 방이 아니었다면, 음식물 쓰레기 관리자가 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이렇게 고약한 것도 몰랐을 텐데. 손에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베여 비누로 몇 번이나 씻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특히 여름, 초파리와 같이 살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초파리 가족을 죽이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엄마를 괜히 미워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그래서 나는 내가 선택하지 않은 이 집, 이 방이 미움으로 가득해서 독립이 하고 싶다.
시답잖은 이유로 독립을 원하고 있는 내가 참 한심하지만, 꼭 이루고 싶은 것이므로. 내 집을, 내 방을 갖게 된다면. 맨몸으로 있어도 불법 카메라가 닿을 수 없는 곳, 에프킬라는 초파리가 아닌 모기에게, 커버 사진처럼 해가 참 잘 들고 환기가 잘 되는 곳이기를 바란다. 그때가 언제쯤일까. 29살부터 잘 풀린다 했는데, 그쯤이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