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다 해보지 않아서 할 수 있었던 질문에게서
직장 동료들과 '윤희에게'를 보러 갔다. 영화 보기 전, 배가 고파 대한극장 맛집을 인스타에 쳤는데 다행히 5분 거리에 아주 유명한 맛집이 있어 서둘러 달려갔다. 황평집. 닭 관련 음식점이었다. 닭 찜과 닭 무침을 시켰는데 서비스로 닭 국물이 나왔다. 40년 전통의 자부심이 맛에서 느껴졌다. 먹어도 안 질리고 건강해지는 맛을 아주 오랜만에 느꼈다.
직장 동료니까, 밥을 먹으면서도 빠질 수 없는 건 직장에 관한 이야기. 나의 직장은 파견 계약직과 프리랜서로 이루어진 집단이다. 그러니까 달리 말하면 우리는 나가는 게 참으로 자유롭다는 이야기다. 들어오는 건 조금 어렵지만 나가기에는 아주 쉽다, 그 말이다. 그래서 얼마 전 직장 동료 한 명이 새 길을 찾아 나섰고 우리는 헤어짐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다 문득, 중학교 때 선생님과 나눴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때 당시 책을 읽고 있었는데 준비된 이별이 슬플까, 준비되지 않은 이별이 슬플까, 라는 구절이 나왔다. 나는 당시 이별이란 걸 경험하지 못했으므로 갑작스러운 이별이 슬플 거라 생각했었다.
'선생님, 둘 중 뭐가 더 슬퍼요?'
'그거야 둘 다 슬프지.'
생각도 고민도 없는 얼굴로 선생님은 당연한 듯이 둘 다 슬프다고 얘기했다. 내 얘기가 끝나자마자 한 분이 말했다. 비슷한 경험이 있다면서 말이다. 아빠한테 친할머니가 좋아, 외할머니가 좋아? 하고 물어봤는데 당연히 아빠는 친할머니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돌아온 답변은 '둘 다 좋지'라는 말이었다는 것. 나와 동료 분이 준 선택지는 두 가지였는데 전혀 다른 답변을 내놓은 선생님과 아빠. 맞은편에 앉은 다른 동료 분이 말했다.
'그렇게 답할 수 있었던 건 두 선택지 모두 겪어봐서야.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뭐가 더 슬픈지, 뭐가 더 좋은지 모르니까.'
정말 그 말이 맞다. 어린 나는 준비된 이별도, 준비되지 않은 이별도 겪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단지 나의 생각만으로 판단해버린 답이었다. 선생님은 준비된 이별도, 준비되지 않은 이별도 겪어보았으니 그렇게 답할 수 있었던 거겠지. 동료 분의 아빠도 그렇고. 앞으로 경험하지 못한 것에서 나는 입을 함부로 나불거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입 닥치고 사는 게 어쩌면 가장 현명하게 살아가는 방법이지 않을까.
밥을 먹고 본 윤희에게는 아주 좋았다. 투박했고 진솔했다. 만남을 준비하는 새봄과 준비되지 않은 만남을 하게 된 윤희를 보면서 나의 삶을 떠올렸다. 준비된 경험과 준비되지 않은 경험들. 숱하게 많을 텐데. 난 어떻게 살아가려나.
추신. 나도 네 꿈을 꿔. 그런데 오늘은 황평집 꿈을 꿀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