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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다정 Jan 23. 2020

엄마와 할머니는 닮았어

그릇 정리 방식과 툭툭 핏줄이 불거진 손에게서

할머니 댁을 추석 때 다녀왔다. 이제 제법 어른 행세를 해야 하는 나는 설거지를 한다. 사촌 동생들에게도 모범적인 언니, 누나가 되어야 하므로 나는 설거지를 한다. (사실 설거지 내기했는데 가위, 바위, 보 연속으로 세 번 졌다.) 외가댁은 식구가 정말 많아서 설거지할 그릇이 어마 무시하게 많다.


엄마는 다섯 남매 중 셋째다. 위로 오빠 하나, 언니 하나, 그리고 아래로 여동생 두 명이 있다. 엄마 남매들은 다 결혼했고 아이도 있다. 그 대가족이 모여 식사를 하니 설거지 양이 엄청나게 많다. 게다가 밥그릇, 국그릇까지 하면 웬만한 식당 설거지 양이되어버린다. 점심때 먹은 그릇을 제때 치워야 저녁때 쓸 그릇이 생긴다. 그러니까 설거지를 바로 해야만 한다는 거다.


넉넉하게 짠 세제는 적어도 세 번은 더 짜야 그릇을 다 닦을 수 있다. 싱크대 안에 그릇이 넘쳐나서 선반 위에도 설거지해야 할 그릇이 쌓인다. 설거지 그릇이 이것뿐인가? 하면 사촌 동생들이 줄지어 그릇을 들고 부엌으로 온다. 그러면 나는 세제를 또 짠다.


세제로 충분히 그릇들을 닦고 물로 헹구는 것까지 자연스레 해내는 나지만 그 이후가 문제다. 이 수많은 밥그릇, 국그릇, 반찬 그릇의 제자리가 어디인가. 이미 건조대는 찰 대로 찼고 이 그릇들은 제자리로 돌아가야만 한다. 그러면 나는 '엄마!' 하고 부른다. '네 엄마 똥 싸.' 하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리고 그러면 나는 '할머니!' 하고 부른다.


할머니가 성치 않은 무릎을 일으켜 부엌으로 오는 동안 나는 그릇의 물기를 탈탈 턴다. 할머니가 '왜' 하고 물으면 나는 '이 그릇 어디다 놔요?' 하고 묻는다. 그러면 할머니는 말없이 싱크대 위 선반을 가리킨다. 넙적하고 둥근 그릇은 여기, 작은 간장 종지는 여기, 하고.  그러면 나는 '오케이!' 하며 깨끗하게 닦인 그릇들을 제자리에 차곡차곡 넣다가 문득 익숙함을 느낀다. 엄마의 그릇 정리 방식과 할머니의 그릇 정리 방식이 같은 것을 발견한다. 정말 별 게 다 닮았다. 엄마 또한 둥근 그릇은 오른쪽 위 선반에, 작은 간장 종지 그릇은 왼쪽 위 선반에 놓는다. 집에 그릇들은 할머니의 그릇 정리 방식으로 정리되어 있다.


내가 깨끗하게 닦은 그릇들이 엉성하게 놓여있자 할머니는 말없이 본인만의 방식으로 다시 그릇을 정리한다. 그러면 나는 할머니의 손을 본다. 툭툭 핏줄이 불거진 할머니의 손은 엄마 손과 비슷하고, 그 손들은 분홍 고무장갑 속에 숨겨진 내 손과도 매우 비슷하다. 똥을 다 싸고 나온 엄마는 설거지를 마무리하는 내 엉덩이를 툭툭 핏줄이 불거진 손으로 툭툭 친다. 그리고 할머니의 그릇 정리를 돕는다.


'손 씻었어?' '똥 싸고 안 씻냐 그럼?' 나와 엄마의 대화에 할머니가 웃음이 터진다. 고무장갑을 벗어내고 아직 덜 정리한 그릇들을 나도 정리한다. 툭툭 핏줄이 불거진 할머니의 손, 엄마의 손, 그리고 나의 손이 분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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