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를 업으로 삼는 마케터가 되기까지
저는 어느덧 3년 차 콘텐츠 마케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 기간 동안 4개의 회사를 거치며, 스타트업의 탄생과 폐업을 두 번씩 경험했는데요. 이 과정에서 마케팅뿐만 아니라 생존을 위해 여러 일을 했습니다. 지금은 마케팅 에이전시에서 근무하며, 고객 분들의 비즈니스 성장을 돕는 일을 주로 하고 있어요.
제가 마케터로 일하면서, 항상 중요하게 생각한 건 ‘콘텐츠’였습니다. 콘텐츠는 말 그대로 문제를 풀어주는 열쇠라고 믿고 있거든요. 인지도가 낮은 스타트업에게는 소비자와 만나는 첫걸음이 되고, 우리의 서비스나 제품을 알리는 중요한 수단이 되죠. 소비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고민을 해결할 답을 콘텐츠를 통해 발견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콘텐츠가 기업이든, 소비자든 누군가의 문제를 푸는 데에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처음부터 이러한 생각을 했던 건 아니었습니다. 저 또한 청년문화기획단체와 초기 스타트업에서 경험해 보면서 이러한 생각이 점차 커지고 뾰족해졌다고 생각해요.
청년문화기획단체에서 일할 때는 단순히 누군가의 이야기를 유튜브나 인스타에 콘텐츠로 가공하는 일 자체가 즐거웠습니다. 저희도,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아 세상에 알린다!라는 측면에서 큰 기쁨을 누렸죠. 근데 문제는 콘텐츠를 만든다고 해서 사람들이 우리를 알아주거나 이 사람의 이야기를 듣지 못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점차 콘텐츠를 업로드하는 게 끝이 아니라, 우리가 지향하는 비전 ‘광주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아 세상에 알린다'라는 걸 이루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인지도가 낮거나 없는 평범한 청년들의 이야기를 사람들이 보게끔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걸 느꼈습니다.
초기 스타트업에 있을 때는 다른 서비스가 우리가 목표하는 시장을 선점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서비스가 있는 상황에서 우리 서비스를 쓰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생각과 고민들이 늘 존재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콘텐츠’가 필요하다 생각했죠. 광고의 힘을 빌릴 수 있지만, 자본이 턱없이 부족한 스타트업에게는 쉽지 않은 결정이거든요. 그래서 꼭 사라지지 않는, 축적되어 민들레 홀씨처럼 우리를 널리 알리는 ‘콘텐츠’의 힘이 필요했습니다.
이러한 생각 덕분에 콘텐츠의 범위를 아주 넓게 보고 있습니다. 콘텐츠를 별도로 보는 게 아니라, 저희가 제공하는 모든 서비스나 제품, 그리고 마케팅 채널까지 모두 콘텐츠의 일부라 여겨요. 소비자가 경험하는 모든 서비스 경험은 모든 마케팅 채널과 서비스, 콘텐츠로 접하는 경험의 합이라 생각합니다.
정말 눈에 띄는 콘텐츠,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콘텐츠를 만드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경력이 쌓일수록 콘텐츠를 어떻게 기획하고 만들어야 할지에 대한 감은 쌓이지만, 경험이 곧 성과를 보장해주지는 않습니다. 영화 신에서도 보면, 이미 성공 경험이 있는 천만 배우, 천만 감독이 모여서 영화를 새로 제작한다고 해도, 다시 천만 관객을 모으는 건 또 다른 영역입니다. 대중의 반응은 항상 예측할 수 없으니까요.
그렇기에 저는 콘텐츠가 언제나 새로운 가능성으로 가득 찬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건 내가 쌓은 경력이나 자본보다도 사람들이 정말로 원하고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일이죠.
물론, 때로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자극적인 내용을 담는 콘텐츠도 많이 보게 됩니다. 단기적으로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조회수를 끌어모아 성공할 수도 있다 생각해요. 하지만 저는 이런 방식이 장기적으로 볼 때는 진정으로 가치 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방법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콘텐츠는 꾸준히 노력하고 시도하면서, 때로는 안타를 치고, 때로는 홈런을 치고, 때로는 아웃도 당하면서 타율을 높여가는 장기적인 게임이라 생각합니다.
문학이 좋아, 문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에 ‘국문학’을 전공으로 선택한 저는 처음부터 마케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습니다. 마케터가 될지도 몰랐죠. 그때와 지금의 공통점이라면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정도겠네요.
전공 특성 때문에 이야기를 접하고, 글을 쓰는 일이 많았습니다. 과제라는 이유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적는 일들도 많았지만 좋은 이야기가 사람들의 생각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 지를 많이 느꼈던 시기가 대학 4년이라고 생각해요. 이 시기에는 문학이 주는 효용성 즉, 콘텐츠가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본 시기였습니다.
제가 대학을 다닐 때는 한창 이미지나 텍스트로 전달되던 콘텐츠의 포맷이 ‘영상’으로 넘어오던 시기였습니다. 유튜버라는 말, 크리에이터라는 말이 많이 나올 때였죠. 이때 저는 자연스럽게 글 외에도 다양하게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을 전달할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글 외에 다른 방식으로 전달하는 게 멋있어 보였거든요. 디자인도 좋았고, 영상도 좋았습니다. 한눈에 볼 수 있거나, 틀어만 놓으면 내가 다른 행동을 하지 않아도 쭉 볼 수 있는 콘텐츠 형식이 매력적이었어요.
그렇게 소설을 공부하고, 비평하던 저는 디자인을 배우기로 결심했습니다. 일러스트를 배우기 시작했고, 프리미어 프로를 배우기 시작했죠. 기본적인 글쓰기 능력에 디자인 실력을 갖추니 세상에 보여줄 수 있는 콘텐츠의 형태가 다양해졌습니다. 한 장 짜리 기획서에서 포스터 디자인이 나오고, 리플릿이 나오고, 영상이 나오는 과정이 즐거웠죠. 이 전 과정을 제 손으로 직접 만들고 결과물을 보는 게 좋았습니다.
처음에는 딱 결과물을 만들었다! 수준에서 만족했었습니다. 포스터를 통해 누군가 행사를 인지하고 참여하는 과정은 신경 쓰지 않았어요. 제 역할은 딱 포스터를 만드는 일이 전부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힘들게 만든 포스터가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는 걸 느낀 순간이 있었습니다. 대학생들을 한데 모아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고자 별도로 행사를 기획했는데, 모집 마감날까지 인원을 채우지 못한 거였죠. 스스로는 할 수 있는 일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왜? 사람들이 지원하지 않았을까?’ 궁금했습니다. 행사 자체에 매력이 없었거나, 포스터가 행사를 매력적으로 담지 못했거나, 행사를 신청할 수 있었던 사람들에게 우리 행사가 제대로 인지되지 못했거나 이 세 가지가 복합적으로 이뤄졌다고 생각했죠.
이때부터, 콘텐츠를 만드는 게 전부가 아니라 콘텐츠를 만들기 전과 후에 어떻게 사람들에게 우리를 알릴 것인가?를 고민하고 들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를 통해 제일 먼저 한 일이 경영학원론 수업을 들었다는 게 제일 아이러니지만요.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에서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에서 이야기를 전파하는 사람이 되야겠다고 다짐한 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