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간 감독의 <지구 최후의 밤> 감상 후기
*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미친 듯이 기록하고 싶은 영화를 보았다. 리틀 왕가위 같기도 하고, 차세대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같기도 한 비범한 장면들의 조합. 영화 <지구 최후의 밤 (Long day’s journey into night)>이다.
이런 분들께 권합니다.
1. 평상시 과거의 기억과 무의식이 혼재된 꿈을 자주 꾸며 실제 같지만 실제가 아닌, 오로지 꿈에서만 보이는 장면들을 실감 나게 체험해보고 싶다면.
2. 영화 예술이 어떤 공감각을 깨우는지 일깨워보고 싶다면.
3. 꿈에서라도 보고 싶은 그리운 대상이 있다면.
4. 중화권 영화에서 마주하는 화려한 색감과 퇴폐적 공간, 느와르의 화면을 좋아한다면.
5. 우리의 탕웨이도 나옵니다.
이 영화는 근사하다. 소설에서도 그림에서도 따라 할 수 없는 오직 영화에서만 얻을 수 있는 독특한 체험을 선사한다. 찾아보니 겨우 89년생인 감독의 빛나는 재능의 실체는 뭘까.
1. 메타포의 향연과 의미의 전복
영화는 1부와 2부로 나뉜다. 현재와 과거의 교차가 1부, 가상의 꿈이 2부다. 1부는 거의 모든 시퀀스에 물이 등장한다. 비, 웅덩이, 물 잔을 통해 일렁이는 과거의 기억을 연출하고, 지속할 수 없는 둘의 아슬아슬한 만남을 표상해낸다. 물은 움켜잡고 싶지만 열 손가락으로 빠져나가는 실체가 없는 허상에 가까운 이미지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감독은 물을 통과할 때의 굴곡된 이미지를 기억하고, 뤄홍우가 그리워하는 과거의 여인 완치원을 더욱 신비하게 그려낸다. 그렇다면 불은 어떨까. 연신 뿜어내는 담배연기와 꿈속에 등장하는 횃불. 불은 물과 반대로 내가 당면한 현실을 환히 비춘다. 은폐된 부위를 정면으로 드러낸다. 아이러니한 것은 뤄홍우가 횃불로 진실을 마주하게 되는 것은 꿈이라는 가상의 무대라는 점이다.
가상에 가까운 완치원은 줄곧 초록색 원피스로 미스테리하고 신비로운 인상을 심어준 반면, 2부의 그녀를 닮은 또 다른 탕웨이 카이전은 새빨간 유광 재킷으로 비비드한 생명력과 활기를 뿜어낸다.
자몽과 사과. 영화를 많이 봐왔다면 봐왔지만 과일도 이렇게 진지한 메타포가 되어 등장하는 영화는 처음이다. 자몽은 카이전이 오락게임을 할 때도. 완치원이 뤄홍우에게 건넨 제안에도 목표지점이 되는 과일로 그들의 이상적인 미래를 의미한다. 반면 사과는 뤄홍우가 통과해온 과거를 상기시킨다. 그가 가장 슬플 때 씨까지 삼켰던 과일. 그는 다시 한번 꿈속에서 사과를 입에 문다.
감독은 통상적인 이미지들을 전복시키며 주인공에게 놓인 사실과 꿈을 재해석해주길 바란다. 자신을 버린 친어머니에게 받은 시계를 포함한 모든 시계들은 영원을 상징한다고 말하지만 멈춰있거나 영정사진으로 대체되고, 꿈속의 그녀 카이전이 지닌 폭죽은 잠깐의 시간 동안 빛을 내다 사라지는 사물로 묘사되지만, 영화라는 마법을 통해(꺼질 듯 꺼지지 않고 타오르는 절묘한 순간에 암전 되는) 영원히 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2. 실제보다 실제 같은 '꿈, 실제지만 허구 같은 현실
과거와 현실을 오가는 1부는 비선형적으로 나열되어있다. 카메라는 일정 사물에 멈춰있다가 빙글빙글 돌거나 각도를 왜곡하여 보여준다. 반면 2부의 꿈은 시간순으로 뤄홍우의 발자취를 좇으며 시계열적으로 정렬되어 있다. 무려 60분의 원테이크. 어떤 착시도 장난도 없다. 탁구채를 돌리면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건 어이없는 발상이지만 꿈에서라면 충분히 겪는 일이다. 뤄홍우와 카이전이 조용히 하늘을 나는 장면을 묘사한 샷은 꿈에서 날갯짓을 하며 둥둥 떠있을 때 가벼운 움직임과 아래를 내려다볼 때 시야를 그대로 재현했다. 인과관계는 성립되지 않지만 과거와 무의식이 연결되어 하나의 고리로 묶이는 사건들. 꿈에서는 당연한 일들이 깨고 나면 비현실이 되는 경험을 이렇게 실제적으로 그린 영화도 드물 것이다. 감독은 2부의 꿈을 더욱 실존하는 것들로 보이기 위해서 1부의 현실을 뒤죽박죽인 채로 그렸던 게 아닐까. 꿈과 현실의 이러한 전복은 우리에게 독특한 성찰을 하게 만든다. 내가 현재 보고 기억하는 것은 실체인가 주관이 섞인 무형의 감정 덩어리인가. 그렇다면 간혹 실제보다 생생했던 꿈은 무엇을 속삭여주었는가. 진실을 뒤덮는 더 중요한 전제라는 것이 있을까. 그 전제라는 것이 불쑥 튀어나와 현실을 재구성하기도 했는가.
3.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
2부 꿈의 세계는, 완치원을 만나러 간 술집의 한 포르노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이로써 영화와 꿈은 동일해진다. 그렇다면 나는 이 영화를 통해 무엇을 얻고 갈 수 있을까.
뤄홍우는 완치원과 자주 극장에서 영화를 보았다.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 뤄홍우는 극장에서 줘홍위안을 암살하고자 하는데 이때의 극장 의자를 위로 돌려 테이블에서 권총을 꺼내는 것으로 착시한 장면은 영화 안에서만 표현해낼 수 있는 페이크 효과와 유려한 영상미를 함께 드러낸다. 누군가와 데이트를 할 때, 묘하게 위로받고 싶을 때, 멍하니 있고 싶을때, 영감을 얻고 싶을 때 우리가 소비하게 되는 영화의 정체는 뭘까. 단순히 기승전결의 스토리를 재현해 의미를 심어주고 흥미를 유발해내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이는 활자로도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스토리뿐만 아니라 공감각을 자극하는 영상으로도 말을 건넨다.
모든 난해한 해석을 차치하고서라도 <지구 최후의 밤>의 모든 장면 장면이 아름답다. 어떤 장면은 침이 고일 정도로 정적이며 화려했다. 분명 모든 내용과 암시를 완벽히 이해하기 어려운 영화다. 그렇대도 인상적인 색채의 대비, 다채로운 촬영 이미지들은 우리 뇌리에 어떤 감각을 건드리고 간다. 두 남녀가 입을 맞추자 가만히 있던 벽이 회전한다. 껍데기만 화려한 미장센이라고 해도 영화니까 그래도 된다. 간혹 영상의 아름다움이 압도하면 의미를 우선해버리니까. 플롯(이야기)만이 의미를 가진다는 생각은 미래 인류에는 통하지 않는 고리타분함일지도 모른다. 정성일 평론가는 썼다.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라고. 완전히 동일한 의미로 빌려온 것은 아니나, 영상은 그 자체만의 또 다른 메커니즘으로 의미를 생산할 수 있다고 믿는다. 지금은 수천 년간 인류 곁에 있었던 활자를, 경구를, 아포리즘을 더 신뢰하는 것 같지만 세상은 바뀌고 있지 않은가. 유튜브의 폭발적인 성장만 봐도 예감할 수 있다. 인류가 좀 더 진화한다면 영상 그 자체로 감각하고 의미를 생산하는 뇌의 메커니즘을 밝혀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 영화는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태국의 감독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이 몇 백 년 후 영화를 마주한 시네필들을 상상해 영화를 찍어낸 것처럼. 비간 감독도 그 가능성을 눈치챈 것처럼 보인다. 뉴 시네아티스트의 탄생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 낯이 익은 얼굴이라 생각했는데 실비아 창(대만의 배우/감독)이 백묘의 어머니로 특별 출연했다. 그가 감독하고 주연한 영화 <상애상친>은 2017년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이었으며 운 좋게 현장에서 보아 더 각별히 기억에 남는다. 아시아의 여성 감독으로서, 역시 훌륭한 중화권의 아티스트로서 그의 행보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