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을 저버리지 않는다는 것
가만히 있어도 시간은 흐른다. 주변 모든 물건의 운동에너지를 멈추게 해도 흘러가는 시간만은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줄곧 “시간은 가장 힘이 셉니다.”라고 말한다. 결단코 잊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과거의 불운도 절망적이었던 일도 오랜 시간이 흐르면 식고, 한발짝 거리를 두고 바라보게 하고, 감정의 쏟김을 바로잡고 이성으로 사리판단할 수 있게 하니까.
하지만 얼마전 우연히 본 다큐멘터리에서 나는 타임머신을 탄 것 같았다. 시간의 센 힘을 힘 찬 연어의 움직임처럼 거스르게 만드는 거대한 슬픔과 분노를 다시 느꼈다. 그 다큐는 2014년 300여명의 아이들을 잃어야 했던 그 날을 다시 파헤쳐보였다. 그 무엇으로도 허투루 정의하거나 봉인될 수 없는 비극, 하지만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살고, 같은 언어를 쓰며, 최대 세다리만 건너면 연결될 이웃들의 죽음은 이후 이 나라의 무엇이든 무엇에든 영향을 주었다. 다큐멘터리가 방영되는 동안 시간의 다른 이름인 그 선박을 다시 응시하게 됐다. 하루종일 한자리에서 옴짝달싹 못하고 목마르게 울부짖으며 블랙홀에 빠져드는 것 같은 절망감이 지나버린 시간이 무색할만큼 폭발적인 생동으로 다시 찾아왔다. 피해자의 부모와 친구들에게 어떤 위로와 후속 대책도 얕게 허물어진 종이배처럼 느껴졌다. 아직도 시간의 힘은 이 비극에게만큼은 제 위력을 다 하지 않은 것이었다.
가만히 있으라.
그 날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했던 말. 그들은 정말 가만히 있었다. 몸을 웅크리고 조용히 기도했을까. 그 기도는 조금 간절했을까. 누군가 힘 센 어른이 와주기를 기다렸을까. 그들이 믿은 것은 무엇일까. 그 와중에도 시간은 무심히도 정확하게 흘렀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다시 시간은 우리를 잠잠하게 만드려 한다. 온순하게 침잠하기를. 하지만 이 일만큼은 시간의 위력을 바라 가만해지고 싶지 않다. 바로 어제일처럼 또렷이 마주하고, 기억하는 사람들과 함께 슬퍼하고, 생명이 최우선이 아니었던 결정들에 책임을 따져 물을 것이다. 어른으로서 그 세상에 조금이라도 일조해 있었던 것에 괴로워할 것이다. 그날 그들이 보여준 믿음의 정체를 잊지 않기 위해. 그들을 가만히 있게 했던 그 공동의 믿음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날까지 시간은 힘을 발휘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