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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a Jul 10. 2019

메가네로 날카롭게 목도한 자신들에 관하여

치마만다 응고치 아다치에 <숨통>

<숨통> 치마만다 응고치 아다치에, 민음사, 2011


 심지가 뾰족한 펜촉으로 가느다란 곡선을 그린다. 선은 부러질 듯 세밀하여 때로는 튕겨나가고, 원을 잇지 못한다. 그럼에도 작가는 접선을 찾으려 애를 쓴다. 12편의 이야기가 다르고 유기적이다. 낯설 새도 없이 흘러들어온 이국 문명의 밀물, 존속하던 가치와 도입된 가치의 충돌, 우월함을 가르는 잣대의 혼동이 낱낱하고 세밀하다.
 


메가네*로 보는 나이지리아, 나이지리아인

*볼록렌즈를 통해 그림을 확대해 보는 장치


“그렇게 하지 않았다.” 문장의 어미에는 부정형이 즐비하다. 하지 않은 행동들의 나열만으로 이야기는 전진한다. 작가는 소설의 인물이 하려는 행위를 삼키고 절제하면서, 새 문명의 잠입이 그들의 일상의 근간을 쥐고 흔드는 지각변동을 친절하고 고상하게 시각화한다. 소설의 무대는 내전에 상처하고 외부 문명에 죄이는 아비규환의 아프리카일 테지만 화상을 담아내는 작가의 글은 담대하고 우아하다. 고상함을 유지한 채 한 걸음 줌-아웃한, 하지만 화질만은 생생한 최첨단의 카메라다. 그리하여 작은 치부도 숨기지 않는다. 다양한 채색으로 시각화된 문장들이 모여 감정의 응집이 되고, 급기야 점화된다. 메가네 장치로 일본 목판화를 감상하는 기분이다.


어떤 편은 제목만으로 씁쓸한 취(臭)를 자아내고 <미국 대사관>, 어떤 편은 여인의 시선을 따라가는 전개 하나로 심장이 말캉말캉해지며 오픈 결말의 여운과 신비가 남는다 <지난주 월요일에>. 어떤 편은 사랑의 대상과 미움의 대상이 차례로 교차하며 스프링클러처럼 한 순간에 조용하고 거대한 비극을 분출해낸다. <내일은 너무 멀다>
 


멀고도, 놀랍도록 가까운
 


이야기는 멀고도 가깝다. 존속하는 것보다 우월해 보이는 문명의 전염, 흔들리는 사람들 흔들리고 싶은 사람들, 재빨리 새 문명에 편승하는 사람들, 서로 총부리를 겨누는 전통의 가치들, 안팎으로 도저히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사람들.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그 화상은 조금 더 옳고, 더 나아보이는 현란한 이국의 이미지즘에 현혹되어 맹목적으로 동기화하고, 때로는 대항하고 갈등하며 실재하는 우리들이다. 이는 세계화의 보편적인 흐름이자, 종속이론(문화적 제국주의)이 현실로 체화된 야만이다.


작가는 어떤 흐름이 옳다는 방향성을 제시하기보다 자신이 목도한 그것을 그려낸다. 이국문명을 맹목적으로 수용하고 욕망하였다가 본질의 허상을 목도하는 모습, 어떤 문명에의 종속과는 상관없이 묵묵하고 강렬하게 살아내는, 삶이 우선인 사람들. 작가는 이러한 사이에서 날카롭게 촉을 유지하고, 또 살고 싶었으며, 그런 이들을 담아내고 싶었을 것이다.
나는 인터뷰어가 되어 작가에게 왜 글을 쓰는지 질문하였고, 숨통의 한 구절을 인용하여, 그녀의 대답을 이렇게 유추하였다. 숨통의 원동력에 관해서다.



그 후 몇 년 동안 당신은 소설을 쓰고 싶었다. 할 얘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신은 갑작스레 들이닥쳐진 방향성에 관하여, 이에 종속되어 실물보다 커진 어떤 물줄기에 관하여 쓰고 싶었다. 소위 머리카락은 직모로, 스킨톤은 옅게 만들고 싶은 미국 문명의 모방자들이 우러렀던 문명의 실체와 대면했을 때의 헛헛함을, 주류문명의 중심지에 서 있어도 주류와 주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아이러니를, 어떤 이데올로기와도 상관없으나 내전과 가난을 통째로 감내해야 하는 시민들, 그럼에도 숨통을 유지하여 색색거리는 그들의 숨소리와 날카로운 신경으로 스스로 투쟁하는 그 자신에 관하여 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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