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오 이시구로 <나를 보내지마>
네버 렛 미고의 제목을 보았을 때 나는 그 간결하게 마음을 사로잡는 제목에 묘하게 끌렸던 것 같다. 가즈오 이시구로라는 문학가는 낯설었지만 소설을 다 읽고 나서야 그 해 최고의 영미 소설에 뽑힐 만큼, 명성이 자자한 작가였음을 알게 되었다.
(이 글은 2011년에 쓰였습니다. 재작년에 이 작가는 노벨문학상을 거머쥡니다)
복제인간이라는 누구에게나 구미가 당기는 소재를 붙잡고 작가는 매우 잔잔하고 섬세한 수채화를 그린다. 어린 시절 사소한 추억의 단서들은 예정되어 있던 거대한 나선형의 퍼즐을 꿰어 맞추면서 소설을 이끄는 원동력이 된다. 이 매력적인 소재로 더욱 다이내믹한 스토리텔링을 해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난 호수의 물결처럼 잔잔한 쇼크 감과 기적을 보여주지 않는 현실감각, 그리고 본질에 관한 근원적인 사색을 좋아한다.
소설은 인간과 똑같고도 다른 클론들이 모래알처럼 흩어지는 추억을 온몸으로 붙잡고, 사랑과 정체성을 찾아가는 시간을 통해 ‘인간’은 어떤 존재인지를 역방향으로 재조명한다. 인간으로 분류되지 않는 클론들이 가진 재능과 각각의 고유한 개성이 역설적으로 느껴지며. 인간의 존엄이라는 대명제가 불쑥 튀어나온다. 클론과 인간 중 누가 더욱더 진정한 휴먼에 가까운지 아리송해진다. 그런 측면에서 이 소설은 매우 가학적이다.
곳곳에 아리송함들이 숨겨져 있음에도 모든 것을 다 말하지 않는 서술방식이 좋았다. 작가는 헤일셤의 따사로운 정경을 배경으로 어린 시절을 회고하며 기증, 근원자라는 딱딱하고 무시무시한 용어를 간간이 던진다. 당시 주인공들이 감히 자각하지 못했던 것처럼 작가도 모두 말하지 않는다. 뿌리를 알지 못하는 본질적 공백감이 쌓이며, 진실을 알기를 회피하고 두려워했음에도 주체적으로 끈질기게 자신들의 아이덴티티를 고민했던 노력, 또래들이 겪는 유대감과 그 반대급부인 상실, 질투, 배신 같은 복잡 다단하게 얽힌 감정의 핵심 사건은 작가가 제시한다. 그러나 잔여물로 던져지는 무수한 회한, 절망, 그럼에도 앞으로 나가게 하는 희망들이 얽힌 실타래는 독자가 풀어서 느끼도록 남겨놓았다.
작법이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고집스럽게 롱테이크만을 고수하는 감독처럼 의도적으로 지나친 독자의 감정 이입을 멀리 했다는 것. 주인공들 사이에 엇갈림과 오해, 오랫동안 품어왔던 어렴풋한 희망이 조각나는 순간에도 작가는 제 3자의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길 재촉하며, 다음 행위를 담담히 서술한다. 절절하게 흐느껴 울 수 있는 절정으로 향할 수 있었는데 과한 감정의 몰입을 강요하지 않는다. 덕분에 평온히 읽고 있지만 그들의 여정이 마음 속에서 깊숙이 남아 쉽사리 휘발되지 않는다.
그들이 필요 이상으로 진지하고 섬세하여 읽는 내내 조금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또래와의 결속감, 사소한 배신행위와 무심코 던진 선생님의 조언에도 아이가 품을 수 있는 감정의 선은 무한대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됐다. 이는 어른이 되어 가지게 될 인생관과 생각의 척도에도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 인간과 클론의 경계, 우정과 사랑의 미묘한 감정 솎아내기 사이에서, 토미의 그림 속에 창의성에 대한 성찰, 성인의 지금을 지탱하게 하는 어린 날의 헤일셤, 노퍼크의 의미 속에서- 무엇보다 인간과 비슷하지만 더욱더 인간다운 그들이 환기시켜 준 삶과 존엄에 대한 성찰도 조금 더 오랫동안 내게 자리 잡게 될 것 같다.
PS. 영화는 첫 장면부터 차분하게 직구를 던진다. 막연하게 단서를 던지며 해답을 추론하게 되는 책의 서술방식과는 다르다. 방대한 소설을 2시간 내로 집약하려면, 취사선택하여 집중할 필요가 있었을 테지만 그들의 로맨스에 포커스를 맞춰 루스를 변방의 인물로 만들어놓았던 게 아쉽다. 토미의 그림과 창의성에 대한 성찰, 유대감을 지탱하게 하는 헤일셤, 상실의 장소 노퍼크의 의미를 생략해 버린 것은 큰 실수였던 것 같다. 인간과 클론의 경계, 우정과 사랑의 미묘한 줄다리기, 원 밖의 아웃사이더라는 감정의 연대기들을 선적으로 모두 표현해내긴 탁월하지 못했어도, 와이드 화면 안에서 영국 특유의 뿌연 날씨와 공간적 먹먹함으로 내정된 미래가 있기에 과거에 매달리며 살 수 밖에 없는 그들 전체의 분위기는 잘 살려냈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