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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서 Dec 06. 2019

1. 친구의 대박

< 제 5 장 > 투 잡 한번 해 볼까?

은주는 초등학교 6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 어떻게 친해졌냐고 물어보면 사실 잘 모르겠다. 우린 6명의 그룹을 만들어 몰려 다녔고 가무(歌舞)를 좋아했다. 학교 끝나면 노래방에 가는게 일상이었으니까. 장기자랑도 나갔다. 은주네 집에서 춤을 연습하곤 했다. 친해진 계기는 생각나지 않지만, 그녀에 관해 한 가지는 생생하게 기억한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노래를 가장 잘 불렀다는 것.


어린 나이에도 친구가 음악에 소질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박지윤의 성인식부터 땡벌까지 가수 뺨치게 불러냈기 때문이다. 그 애의 노래를 듣고 싶어서 내가 예약한 노래도 대신 불러 달라고 마이크를 넘기곤 했다. 


서로 다른 중학교에 가면서 고등학교 때까지는 자주 만나지 못했다. 프리첼과 싸이월드로 가끔 안부만 물었을 뿐이다. 20살이 되자 무리를 지어 다녔던 6명 중 2명이 동네를 떠났다. 남은 4명은 가끔 모여 술 한 잔씩 하게 됐다. ‘뭐 해, 술 한잔하자.'라는 문자 하나면 밤 10시에도 슬리퍼를 신고 쌩얼로 약속장소에 모였다.


"나 음악 하려고."

"뭐? 잘 됐다! 그럴 줄 알았다니까, 잘했네!"

"근데 노래로 안 하고 랩으로 할 거야."

"응???"


신문방송학과였던 은주는 대학 졸업 전, 자신의 진로를 음악으로 정했다고 했다. 진심으로 축하했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더라고, 네가 그랬다면서 그날 밤새도록 막걸리를 마셨다. 같이 있던 친구도 잘 됐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런데 노래가 아니라 랩이라고? 조금 의아하긴 했다.


은주는 몇 년이 더 지나자 래퍼로 디지털 앨범을 냈고, 다른 가수의 피처링도 참여했다. 하지만 정규 앨범이 나온 것은 아니었다. 소속사가 있어야 하는데 소속사를 찾기 어렵다고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는 초초해 했다. 자신감이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본인이 남들보다 예쁘지 않아서, 키가 작아서 소속사에서 받아주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목소리가 튀는 스타일에 아니라서 기억에 남지도 않는다고 했다. 안되는 이유에 관해 얘기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은주랑 크게 싸웠던 적이 있다. 세 명이 막걸리를 7병쯤 마셨던 날이었다. 그녀는 세 시간 내내 자기가 못생겼다고, 이제 어떡하냐고, 되는 일이 없다며 끊임없이 부정적인 얘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런 친구를 위로하다가 갑자기 화가 났다. 너만 힘드냐고, 여기 힘든 사람 없냐고 언성을 높였다. 같이 있던 나은이는 인테리어 일을 하느라 매일 새벽에 집에 오기 일쑤였다. 주말도 없었다. 나는 나대로 취업에 실패하고 겨우 일자리를 구해 정신없이 일을 배우고 있는데 혼자만 힘들다고 하니까 화가 났다. 안되면 다른 방법을 찾아보라고, 이렇게 위로하는 것도 몇 년째인지 모르겠다고 술에 취해 큰소리를 냈다. 그렇게 싸운 건 15년 만에 처음이었다. 속마음을 다 말해버렸다. 그리고 미안한 마음에 셋 다 펑펑 울었다.


한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다. 페이스북으로 근황만 살피고 있었다. 어느 날부터 은주의 피드에는 카페 사진들이 올라왔다. 그것도 매일 다른 카페 사진이. 은주는 엔젤리너스에서 아르바이트하며 매일 주변의 다른 카페들을 갔던 것이다. 


‘합정에 예쁜 카페 진짜 많이 생겼어.'

‘합정? 너 일하는 곳이 합정이었나?’

‘응, 놀러와.’ 


은주가 2년을 일하는 동안 한 번도 가지는 못했다. 집 근처의 이디야로 아르바이트를 옮기고 나서야 얼굴을 보러 갔다. 처음에는 앞치마를 두르고 커피를 내리는 친구가 영 어색했다. 오랜만에 모여 못다한 얘기들을 하고 있는데 친구가 불쑥 얘기를 꺼냈다.


“나, 음악 그만둘까.”

“어? 뭐라고?"


은주는 정말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10년을 투자했는데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편의점 앞에서 맥주 두 캔을 놓고 밤이 새도록 얘기했다. 무슨 선택을 해도 응원할 생각이었다. 은주도 오랜 시간을 고민해 온 것 같았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30살이 된 나이에 이제와서 취업 준비를 할 수도 없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얼마 후, 인테리어 회사에 다니는 나은이가 은주랑 자주 만나기 시작했다. 둘이 수다를 떠는 것이 아니었다. 인테리어 얘기를 했다. 그리고 그 해 은주는 카페를 오픈했다. 


나는 카페에 대해선 문외한이었다. 사실 카페를 왜 가는지도 몰랐다. 개인 카페에서는 둘이서 커피를 한 잔씩 시키고 추가로 디저트를 하나만 먹어도 밥값과 비슷한 금액이 나왔으니까. 소비를 줄이고 있었기 때문에 개인 카페는 금지구역이기도 했다. 친구들이 “밥 먹고 카페 가자~ 여기 새로 생긴 데 있어~”라고 하면 “그냥 스타벅스 가자.”라고 말하는 사람이 나였다.


트렌드도 몰랐다. 요즘은 망원동이 핫하다던데, 지금은 성수동이, 또 어디가… 아인슈패너나 플랫화이트가 무엇인지, 각 카페별로 어떤 메인 디저트가 있는지 모두 관심 밖이었다. 하지만 어김없이 친구들을 만나서 밥을 먹으면 자연스럽게 카페를 찾게 됐다. 이야기를 나눌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테일러커피의 크림모카, 달달하면서도 부드러운 목넘김이 일품이다. (테일러커피 공식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p/Bvu_TBvBGul/)





처음으로 관심을 갖게된 카페는 홍대의 '테일러 커피'였다. 크림이 올라간 달달한 커피가 이렇게 맛있는 메뉴였는지 그동안 몰랐다는 게 후회가 됐을 정도였다. 크림의 단맛과 커피의 쌉쌀한 맛이 절묘하게 어울렸다. 모임 장소가 홍대일 때, 사람들을 데려가면 그 카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너 이런데도 알아?’라는 말을 듣는 것도 좋았다. 주말 오후에 맛있는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힐링이 된다는 걸 처음 알게됐다.


친한 친구가 카페 사장이라는 것도 믿어지지 않는데, 3개월이 지나지 않아 카페가 대박이 났다. 입지가 좋았다. 구청 앞에 자리 잡고 있어서 점심에는 구청 직원들의 커피 수요를 맞추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테이크아웃이 10잔씩 나갈 때도 있다고 했다. 저녁 시간과 주말에는 젊은이들로 가득 찼다. 음악을 좋아하던 친구여서 배경음악도 신경을 많이 썼다. 젊은 손님들은 그런 점을 좋아했다. 낯가림이 심해 모르는 사람에게는 말도 못 붙이던 친구였다. 사장이 되어 손님들한테 말도 걸고 단체 손님을 잡기 위해 적극적으로 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을 보며, '얘가 이렇게 사업 수완이 좋았었나.'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손님응대 스킬을 배우고, 새로운 카페들을 방문하고 메뉴를 개발하면서 노력해 온 결과였을 것이다.


오랜만에 은주의 연락을 받고 인테리어를 도와준 나은이와 함께 술집에 모였다. 이자카야에서 사케 대신 한라산을 한 잔 들이켜며, 은주의 성공담을 들었다. 지금 한 달 총매출이 얼마고, 비용이 얼마가 나가고… 그러면 남는 금액이…. ‘남는 금액이…? 진짜? 그만큼 남는다고?’


“얘들아, 이 동네가 심상치가 않아. 한 1년 전에 처음 가게를 알아보러 다닐 때보다 훨씬 사람이 많아졌어. 괜찮은 음식점도 생기고, 더 유명해질 것 같아.”

“그러게, 나도 올 때마다 분위기가 변하는 게 느껴져. 동네에 사람이 이렇게 많았나 싶고. 신기하다.”

“그래서 말인데, 카페가 아직 많이 없더라고, 너희 카페 해 볼 생각 있니?”

“응, 할래.”

“근데 돈은 얼마나 있냐?”

“돈, 없지…”

“나도 없어. 그게 문제야."

"일단 대략 얼마 정도 필요한지 보고, 각자 돈을 만들어보자. 방법이 있을거야.”



그게 시작이었다. 매일 카페로 출근하던 친구는 유동인구가 늘어난 것을 체감했다. 나도 덩달아 친구의 가게를 자주 들락날락하며 동네 분위기를 알게됐다. 주변에 공사 중인 가게들이 늘고,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 네이버 검색어에도 이 동네의 이름이 많이 언급된다는 것을 느꼈다. 타지에 사는 지인들도 우리 동네 이름을 들어봤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하자, 우리 세 명은 공동투자로 카페를 차리기로 했다. 



바로 나의 유년시절이 깃든 동네, 관악구 샤로수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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